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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신 분만 읽어 보세요. -비판 환영-
전국에서 우리 모교 만큼 교명 변경이 많았던 학교도 흔치 않을 것이다.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자주 이사를 한 사람의 주민등록초본 주소란에 끝이 보이지 않듯이 우리 모교의 교명 변천사도 만만치 않다.
시대와 사회가 바뀔 때 마다 교명부터 먼저 바꿔치기 한 역사가 있었다.
특성화고등학교가 되다보니 정부의 경제정책에 따라 교명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던 시절도 있었다.
농업을 장려하면 농고로 공업을 장려하면 공고로 두 가지를 겸해서 농공고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바꾸면서 예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농고든 공고건 간에 이제는 특성화로 꼬락서니가 안되겠다는 일념으로 고친 것이 현재 이름인 중앙고등학교이다.
필자도 중앙고로 교명변경을 할 때 관심을 많이 가졌으나 어느 순간 중앙고로 결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살아 숨쉬는 허구 많은 명칭 중에 왜 중앙고를 차용해 왔는지 의아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 만들 교명이라면 뭔가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을 지었으면 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최악의 이름으로 낙점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중앙고란 이름이 왜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는가를 거의 생각하지 않은 단세포적인 생각에서 도입된 게 하닌가 하는 의구심도 진하게 들어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중앙이라 하면 일제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예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행정부처가 모여 있는 곳을 중앙청이라 했었던 적도 있었다.
강력한 통제와 억압, 중앙집중을 통하여 하부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었는데 그런 뉘앙스가 큰 것을 우리 교명에 가져다 썼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본다.
2. 독창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던 학교든 이름이라는 것은 뭔가 새로운 이미지와 독창성이 답보 되어야 하는데 ‘중앙’이란 이름은 그런 맛이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 것이다.
과거 일제 시대에는 중앙이란 말이 그럴싸하여 많이 쓰였을는지 모르지만 이 대명천지에 왜 그렇게 구시대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이름을 차명했는지 이해를 못할 일이다.
3. 하필이면 교명을 왜 남이 쓰고 있는 교명을 그대로 가져다 쓰느냐는 것이다.
작명을 하는데 남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면 그 작명가는 그 순간에 밥줄이 끊길 것이다.
서울에 가면 이미 원조 중앙고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치 프랑스에 에펠탑이 그럴싸하다고 우리나라 어느 곳에 에펠탑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모방의 극치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4. 중앙이란 단어가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연결고리가 안보인다는 것이다.
시골에 살면서 중앙무대에 올라가고픈 욕망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선호했는지 모르지만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결지을 고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 뉘앙스로 중앙이라는 이름을 차용했다면 결국 우리 스스로가 촌놈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린 결과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우리 모교가 주변 아파트 중앙에 처해 있는 것에서 위안을 찾는다면 모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5. 중앙이란 단어가 들어간 학교들이 너무 흔해빠졌다는 것이다.
지역 마다 하나씩은 다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교 이름이다.
어디 가서 중앙고 나왔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싶기도 하다.
과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이름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라 본다.
실제로 어디 가서 강릉중앙고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운영이 잘 안 되는 시골에 듣보잡 학교가 개명한 정도로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해 본다.
6. 중앙고로 개명한 뒤 과연 그 이름이 우리의 정서와 얼마나 맞는지 뒤돌아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남의 이름을 뒤집어 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중앙고가 잘 하면 서울에 있는 중앙고가 빛나는 듯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기껏 벌어서 원조 중앙고를 빚내 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버둥버둥 해야 결국은 서울에 원조 중앙고등학교에 자회사로 전락할 수 있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7. 중앙이 대대손손 써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이름인지도 봐야 한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처럼 영혼 없이 남의 이름을 차용한 학교가 전국에 한 두 군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영동지방에 고등학교 교육의 효시로서 출발을 했으면 이름도 우리가 리드를 해야 할 판인데 남의 이름이나 차용해서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8. 각종 행사 때 교가나 응원가를 부르면 원래 작사한 내용과 교명 자체의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하기사 남의 바지를 입고 있는데 그게 맞다면 이상할 것이다.
이런 불합치한 일이 발생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원래 가사에 생뚱맞은 중앙이란 단어만 넣어서 부르는데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농고식으로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뭔 말이 많냐” 라고 접근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농고식에서 벗어나려고 중앙식을 도입했다.
그렇다면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물꼬가 트여야 하는데 지금 교명을 놓고 보면 과거 농고시절이나 현재의 중앙고 시절이나 달라진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교가나 응원가에 중앙이란 단어를 넣어서 불러 보니 네 맛도 내 맛도 잘 나지 않았다.
9. 교명에도 애정과 자긍심이 붙어야 할 것이다.
남의 이름을 가져다 쓰면서 애정과 자긍심이 붙기를 바란다면 그 또한 연목구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정서에 맞으면서도 참신하고 애증을 가질 수 있는 이름이 널려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중앙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차용하자고 한 사람은 물론 우리 스스로도 반성을 좀 더 해 봐야 할 문제라 본다.
10. 중앙이란 이름에 붙은 철학은 무엇인지?
개명을 하고 난 뒤 왜 그런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인가에 대한 배경이나 내력, 철학과 소신이 있었는지도 감감하다.
한 사람의 이름을 지어도 그 집안에 항열이나 주변에 같은 이름이 있는지, 이름에 대한 뉘앙스는 어떻는지, 그 이름을 지었을 때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는지에 대해서도 다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작명을 할 것이다.
졸업생이 몇 만 명,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동문들이 나올지 모르는 학교에서 교명을 작명하는데 그 이름에 대한 철학이나 배경, 미래의 비젼이 빈약하다면 과연 좋은 이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교명 만큼은 상징 중에 상징으로 알고 있다.
남의 교명을 슬쩍 차용하여 사용하는 작금의 상황이 언제까지 가야할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고자 하는 열망에서 교명까지 바꾸어 놓았는데 그 교명이 구시대 잔재물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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