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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를 못한다고 나무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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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수를 못한다고 나무라지 마라.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내용과 방법, 과정이 달라진다고 본다.
어떤 부류의 인간을 만들 것인가가 교육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과거 스파르타 같은 곳에서의 교육은 정신과 신체를 억압과 통제,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냈다.
물론 우리도 일제강점기나 유신시대, 군사문화시대에는 그런 교육이 통용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잘라내고 특정 목적에 부합되는 놈만 키우는 방식의 교육방법이었다.
그런 방식의 교육을 하다 보니 인간적인 교육보다 억압과 통제, 물리적 자극이 심하게 가해지는 교육으로 치닫게 되었다고 본다.
그 당시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키워낸다는 명목 하에 인간 본연의 능력을 키워주기보다는 특정한 틀에 맞추어 거기에 적응하는 사람만 길러내는 방식이었다.
특정 조직이나 집단에 말 잘듣고 순응하는 기계적인 인간을 만드는 데는 성공을 했으리라 본다.
훗날 그런 교육방법이 인간적인 면에서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인식된 나머지 억압과 통제를 주축으로 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교육 중에서 가장 최악의 교육을 스파르타식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어떤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지금도 그런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는 지금도 스파르타식 교육이 성행되는 곳이 분명히 있으리라 본다.
교육은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이라 본다.
어떻게 하면 그런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교육학자들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억압과 통제, 물리적 힘으로 교육을 이용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인간교육에서는 썩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 본다.
바람직한 방향의 인간을 만드는 과정을 학교라는 곳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
요는 어떤 것이 바람직한 방향의 인간교육인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견해도 다양하다고 본다.
혹자는 좋은 대학에 가기위한 발판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교육을 바라보게 된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가진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대학과 직장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나머지는 열외인간으로 내 몰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류 인문계 고등학교에 못 들어가면 인생에 1차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 서울 4대문 안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고방식에서 우리 교육이 자유스러워질 수 없다고 본다.
몽둥이만 안 들었지 스파르타교육과 무슨 차이가 나는지 모를 지경이다.
성적으로 인하여 인생을 비관하는 학생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이렇게 교육을 왜곡시키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겠는가.
한반도 이남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서 자유스러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배우는 학생들 스스로도 그런 올가미에 스스로 들어가 자신을 옥죄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일류고, 일류대를 나와야지만 인간대접을 받는 사회가 무언의 스파르타보다 더 무서운 교육인지도 모른다.
2류고, 3류고, 특성화고를 나오면 어떤가.
이런 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일류고나 일류대를 나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미래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잘 일구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국영수에 치중한 교육으로서는 미래에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워갈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국영수를 잘 하는 아이는 그 길로 가게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자신이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을 계발하여 그쪽에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교육방법이라 본다.
우리 모교는 어떤가.
중학교 때 국영수가 딸리는 학생들이 할 수 없이 밀려서 오는 학교 정도로 인식되어 지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 와 보면 여전히 국영수를 바탕으로 자기 전공과목을 가지고 공부하고 시험처서 또 서열을 매기는 형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였던 교과서적인 틀에 넣고 그 안에서 달달 볶아야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국영수를 달달 외우는 것에서 지쳐있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전문과목까지 달달 외워야하는 현실에서 배겨낼 장사가 없으리라 본다.
자연스럽게 공부에는 흥미를 잃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가르치는 도구와 방법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외우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주구장창 외우기를 강요하는데 여기서 버틸 학생이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현대판 스파르타식 교육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는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아이조차 제대로 없는 사회로 진입했다고 본다.
강원도 시골 면 단위에 가면 학교가 한 두 개씩 있는데 그곳에서 1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적게는 한 두 명 밖에 안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귀한 아이들을 국영수를 중심으로 주입식 교육방법으로 교육을 시켰을 때 과연 창의적인 미래의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교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상상해 보자.
동문들이 학교에 다닐 때와 거의 같은 패턴으로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를 가지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주입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전공실습시간에는 기계적으로 반복실습을 시키고 또 시킬 것이다.
그리고 전공자격증을 한두 개 따면 성공한 학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교육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옛날에는 그런 교육이 통했다.
산업사회가 급격히 팽창하던 시절에는 학교 냄새만 맡았어도 사회에서 환영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자보다 대학입학 정원이 더 많아진 시대로 진입했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의 공동화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뉴스도 보았을 것이다.
대학에 원서를 내기 싫어서 대학을 못가는 것이지 성적이 딸려서 못가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마땅찮은 시대에 들어 온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교육방법으로는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국영수의 이론을 잘 외우는 학생이나 그 변방에 있는 학생이나 지금 같은 방식으로 공부를 해서는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가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 능력을 신장시켜 줄 수 있는 방향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단적인 예가 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 알 것이다.
LPGA 전공 대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전 세계 유수한 선수들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 선수들을 키우는 일류학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성적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영수를 못한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 능력을 끄집어 내 주지 못하는 학교를 나무라라는 것이 제대로 된 사고방식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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