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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먹고 사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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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4-29 10:34 댓글 0건 조회 7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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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먹고 사는 학교

교육을 흔히 백년지대계라로 일컫는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말고 적어도 먼 곳 까지 바라보면서 교육을 하라는 선인들의 준엄한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오늘 가르쳐 내일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본다.

 

과거에는 그랬을는지 모르지만 현실의 교육은 그와는 좀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오늘에 가르쳤으면 당장에 어떤 결과가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교육의 결과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백년지대계가 될 수 도 있고 코앞의 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체계로 보았을 때 유,,,,,군을 나오자면 적어도 20여년 이상을 학교나 군사시설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시스템이다.

20여년이란 기간 만 바라봤을 때에는 제법 백년지대계가 된 듯 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배우고 익혀야지만 사회에서 써 먹을 수 있다는 상황논리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먼발치를 바라보면서 교육을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냐는 말씀이다.

오늘 공부를 하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다가온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대비함이 더 크리라 본다.

좀 더 길게 본다면 초중고의 공부는 대학입학시험을 위한 도구로 대학의 공부는 취업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짜여져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미래의 과제라 본다면 학교가 백년지대계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선인들이 생각했던 백년지대계와는 거리가 좀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년지대계를 그렇게 중요시 여겼겠는 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옛날의 교육은 지식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만드는데 주력을 했다고 본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짤막한 교육으로는 부족함을 인식한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평생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면 어상당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을 허리에 매어서 꿰맬 수 없는 법이다.

모든 일에는 절차와 과정이 있는 것이고 그 것을 거치는 동안에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팽이 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현실을 보았을 때 미래를 마냥 기다린다는 것도 우리의 정서와 동떨어진 부분이라 본다.

빨리빨리 해도 직성이 풀리지 않은데 과거의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남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교육은 기다림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육의 결과를 맛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기다림과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교육이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투자인 것이다.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는 현재에 투자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교에서도 미래의 인재양성을 위하여 밤낮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본다.

어떻게 가르쳤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지리라 본다.

 

예전에 총동문회장 이 취임식에서 모 선배님이 모교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말씀하신 적 있었다.

그 선배님의 말씀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만 새겨들어야 할 부분도 많이 있었으리라 본다.

아무리 좋은 교육의 틀이 있다하여도 그것을 후배들에게 적용시키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리라 본다.

 

미래에 어떤 인재가 필요할 것인가를 먼저 헤아려보고 거기에 맞는 교육을 펼쳐주는 것이 모교가 해야 할 일이라 본다.

과거처럼 선생님들은 악을 쓰고 가르치는 in put 교육으로 백년지대계를 실현한다는 것은 백골난망이라 본다.

제대로 된 미래를 엮어 갈 수 있는 교육이 우리 모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길 갈망할 뿐이다.

 

학교에서 알뜰살뜰 가르치는 것은 고전적인 공부의 모습인 것이다.

학교를 나와서 어떻게 세상을 잘 리드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유연성이 엄청나게 강한 시기이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냐가 그들이 미래를 사정없이 좌지우지 하리라 본다.

이렇게 준엄한 일을 하는 학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또 써야 할 것이다.

어영부영 가르친 선생 밑에서 어영부영한 제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준엄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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