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화림만행(花林漫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7-04-19 16:06 댓글 1건 조회 707회

본문

070330b11.jpg.

가는곳을 정하지 않은 발거름은 가볍다.

눈가에 보이는것은 정이 겹고 귓가에 들리는 것은 나긋하고 코끝에 알랑이는 것은
향기롭다.
그냥 걷는 그곳에 말 나눌 상대가 있다.
왜 왔느냐 묻지도 않고 왜 왔다고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는 내가 온 사연을 알고 있고 나는 그가 묻지않는 이유를 알고 있다.
가고 옴에 얽매임이 없으니 담긴 속내 또한 궁금할리 있겠는가.
다만 그가 있기에 내가 옴이니 이것만이 우리 둘 간의 얽힘일뿐.
푸른 하늘 한켠을 흐르는 솜털 구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 하다.

DSC_0009.jpg.

세상천지를 온통 뒤덮은 벗꽃터널을 소리죽여 걸었다.
가끔씩 윙윙대는 벌들의 웅성임 말고는 그안은 고고한 침묵이였다.
새하얀 사방꽃벽은 나의 존재를 삼키고도 목말라 신음하고 있다.
어쩌면 저리 현란하고 일사분란할수가 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다툼이 있을듯 하련만 저들은 한날 한시에 자태를 들어냈다.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싸움의 미덕을 알고 있었다.

저꽃을 일러 일본인들은 '소메이요시노사쿠라'라고 부르며 자기들이 원산지라고 우기
지만 실은 우리나라 제주도가 그 자생지임이 독일 식물학자 퀘호네가 한라산 관음사
부근에서 왕벗나무를 발견했다고 보고함으로서 유력해 졌다고 들은적이 있다.
일제가 창경궁에 벗꽃나무를 심고 '밤벗꽃(요사쿠라)축제'등을 벌려 일반에게 호응을
얻었기에 저 꽃이 일본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니 꽃에 까지 질곡된 의미를 부치는
인간의 얄팍함이 씁스레 가슴을 울린다.
지난날 모진 연(緣)이 저 꽃 어드메 웅크리고 있을까.
아무리 더듬어도 꽃은 그냥 꽃일 뿐
있음을 있는 그대로 보되, 아무것도 있는것이 없는 무하유(無何有)의 화두가 거기에 있다.

DSC00568.jpg.

작은 둔덕을 지나 얕으막한 산비탈엔 여린 풀싹 하나 얼굴을 내밀고 방긋 웃는다.
환한 그 미소에 괜스레 가슴이 쓰리다.
저는 무엇이고 나는 또 무엇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저 이름없는 들꽃이나 우리 인간이나 다를바 있으리.
한번 스러지면 종적도 없어지는 우리보다 그래도 다음해면 생명을 받아잇는 저들이 더
선택받은 존재인듯 하다.

사는것에 대한 불안은 지워질수 없는 업보인가.
혜가(慧可)가 달마(達磨)에게 물었다.
「마음이 불안 합니다 」
달마가 일렀다.
「불안한 그 마음을 내 놓아라 」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습니다 」
「네 불안한 마음이 모두 없어졌느니라 .너는 보느냐? 」
짓고 부수는 내안의 숱한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의
유명한 <안심법문(安心法文)>이다.
빈채로 차있고 찬채로 비어있는 나의 본질(本質)-그 삼라만상의 바탕을 바로보고
그속으로 자신을 들이라는 것이다.

생각을 굴릴수록 허허 하고 빈 웃음만 터진다.
도시 알듯도 하고 생판 모르겠는 공허하기만 한 말- 어느곳에 가야 답을 얻을수 있는건지.

img_7_546_25?1140765431.jpg.

길섶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어 향기로운 흙냄새가 길손을 반긴다.
팔순이 훨씬 넘어보이는 노인 하나와 내외로 보이는 젊음이들 그렇게 셋이서 팔을 걷어
붙인채 딱딱한 흙을 호미로 고르고 무엇을 뿌리고 있어 말을 걸었다.
「뭘 하세요? 」
젊은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꽃씨를 뿌리는 중입니다 」
「대단 하네요. 공원터에 이런 봉사를 하시다니...」
그가 다시 웃으며 말한다.
「사실은 이거 저희 아버님이 오래동안 해 오시던 거거든요. 아들인 제가 그 뜻을 받드는
것일 뿐이랍니다 」

효(孝)란 당연(當然)인가? 타협(他協)인가?
부모는 '네가 자식 되었으니 당연히 부모 말대로 따라함이 옳다' 하였더니 자식이 들이대기
를 '어찌 부모 말이라고 다 그대로 하라고 강요 합니까?' 하니 이 둘의 인식은 참으로 근접
하기 어렵다.
효는 맹목적이고 자식이 지켜야 될 당연적인 것이지 어찌 부모와 타협이라는 조건이 붙는
다는 것인가.

땀방울을 뻘뻘 흘리면서 꽃씨를 심는 아들 내외를 지켜보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 늙은
아버지의 노안에는 이 물음의 답을 알고 있음이 역역했다.

seung812_273667_9[452068].jpg.

홍도화 군락지를 지나 휘적휘적 내려오는 길을 재촉하는 내 발걸음이 닿는곳에 이제 한창
꽃잎을 연 조팝나무가 무리지어 수줍은 손길을 내밀었다.
흡사 메밀꽃을 빼닮은듯한 그 작디작은 소박한 꽃에서 어떻게 그런 진한 향기가 풍기는
것일까.
화려함이 곧 아름다움을 가늠하는 절대선은 아닌 모양이다.

생명의 상큼한 정기가 가득한 이 봄날-
어차피 인생이 한조각 부운(浮雲)이라면 만개한 여기 꽃숲을 걸으면서 그래도 남은 세월
제대로 꽃한번 피워보고 떠나야 하리라는 생각이 드는것이 늙은 이 길손의 욕심일까.
설사 버나드쇼 처럼 묘비 한구석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갈줄 알았지...'라고 쓰며
속절없이 떠날지라도 이렇게 화사한 꽃무리 속에서 질때는 질 망정 그래도 화끈하게
한번이나 피어보고 싶은 심정을 ....
누구 하나는 알아줄터이지.




댓글목록

profile_image

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달마대사의 안심법문이 또 하나의 번뇌로 돌아 온다네
찾으면 찾아지지 않는 번뇌의 본질이 인생의 본질안에 필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그냥 번뇌하며
그 번뇌를 즐기며 살아가면 될것을 ---
버나드쇼의 비문처럼 인생의 99%는 장난스럽게 살고 남겨진 1%만 진지하여도
제법 잘살다 가는 것.
꽃피는 시절에 꽃속에 묻치고 비오느 날 울적하며 울적거리며 그저 그렇게 사는게
선(禪)이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