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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 물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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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6-23 17:34 댓글 0건 조회 8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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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청 물장수
 

과거에 물장수들이 사용했던 용기는 나무를 이어 붙여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플라스틱이나 철제 용기가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시절에 걸 맞는 용기를 만들어 썼을 것이다.

똥지게에 올려놓는 똥장군식의 옹기도 생각해 봄즉하지만 이동시 조그마한 부주의에도 파손의 우려가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물장수가 아무 곳에서나 성행했던 것은 아니고 입에 밥풀깨나 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이루어졌으리라 본다.

못 먹고 못 입고 못살던 시절에도 깨끗한 물을 사 먹었던 부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물장수는 이미 조선 말엽 철종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기득권층이었던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던 곳은 국민의 고혈을 빨아 물을 사 마셨다는 것이다.

 

구한말을 지나면서 기득권층에서 심심찮이 물을 사 먹었다고 하는데 이 물을 팔아먹은 사람들 대부분이 북청출신이라는 것이다.

북청은 한양에서 결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양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샘물을 길러 팔아먹었다고 하면 큰 이슈가 안되었겠지만 실제로 물장수의 대부분은 북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북청은 지금 북한 땅인 함경남도 함흥에서 성진으로 가는 중간지점 정도에 있는 조그만 도시로 추정된다.

가보지 않았고 가 볼 수 도 없는 상황이니 뭐라고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손바닥만 한반도도 좁게 느껴지는데 그 손바닥만 한 땅이 두 동강 나 버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예전에 북청 출신들이 한양에 와서 물장수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장수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터를 닦아놓고 나니 물의 수요가 점점 많아지게 되었을 것이다.

해서 북청출신들이 연줄연줄 한양 땅에 와서 물을 길러 고관대작이나 기득권층에게 판매를 했으리라 본다.

당시에도 물은 흔했지만 특별히 솟아나는 맛 좋은 샘물을 아침 일찍 길러서 소비자에게 제공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먹는 페트병 생수의 원조인지도 모른다.

한때에는 물처럼 흔하다.”라는 이야기가 다반사로 쓰였다.

실제로 흔하고 흔하던 것이 물이었는데 산업화와 공업화, 그리고 도시화가 되다보니 그 물도 귀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물이 없는 것은 아니데 그냥 맹물로 마시기에는 수돗물이나 지하수가 꺼림직 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가정에서 페트병에 든 생수를 일상에 마시는 물로 정착화가 되어 가는 것 같다.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미 그 시절 전에 맑은 샘물을 사 먹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도 돈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이미 조선시대 말엽에 현실화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맨 먼저 선도적으로 도입한 사람들이 바로 함경남도 북청출신이라는 것이다.

북청물장수가 아니었더라면 북청이란 동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어떤 특징적인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 때문에 유명해 진 곳 중에 하나가 북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남북 간에 관계가 좋아져서 더 늙기 전에 성한 몸으로 북청에 가 볼 수 있는 날이 있길 학수고대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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