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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풍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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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6-05-26 05:48 댓글 0건 조회 1,4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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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德女王의 風貌

<<어느날, 대왕은 이제 갓 백제군을 물리치고 개선한 장수들을 반겨 맞았다.
“이기고 돌아온 영웅들이시여! 그대들 머리위의 투구는 나의 황금관보다 더욱 빛나오.”
“과찬이십니다.”
장수들은 투구를 벗으면서 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 싸움은 어떠했소? 이길 줄 빤히 알고 있었소만, 그래도 궁금하구려.”
대왕의 물음에 장수 중 하나가 되 물었다.
“승리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계셨다니, 감히 여쭙사옵니다. 이찌 그리 하셨습니까?
여왕은 눈웃음을 띠고 장수들을 내려다보았다. 한 순간 입가가 벙긋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말문이 열렸다.
“장군님들 공을 치하하는 뜻으로 내 얘기하리다.”
이렇게 운을 떼고는 잠시 뜸을 들인 대왕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내 그대들을 女根谷으로 보내어 거기 몰래 잠복한 백제군을 치게 한 것은, 한겨울인데도 靈廟寺의 玉門池에 개구리들이 나타나 사나흘을 두고 울어대었기 때문이었소. 정말이지 와글와글, 버글버글, 벼락치듯 시끄럽게 울어대는 그 개구리들의 생김새가 우락부락 했었소. 나는 그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고,경주를 노리고 어느 곳에 숨어든 적의 군사들의 몰골일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요.”
“한데, 적병이 하필 여근곡에 잠복한 것을 어떻게 아셨나이까? 저희는 짐작도 안 가는 일이옵니다.”
“그야 빤하지요. 옥문은 곧 여근이 아니겠소? 이를테면 나 같은 여자들의 몸 가운데 가장 은근한 곳이 옥문이고, 여근이 아니겠소? 또한 못이나 우물은 여성의 국부를 상징한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소? 그건 그렇다 치고, 여자가 陰이라는 것은 아시죠? 음은 빛으로는 백색이고, 방위로는 서쪽을 말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실테죠. 경주에서 서쪽으로 여근에 견주어질 곳은 여근곡, 바로 그 골짝 말고 또 어디겠소?”
“하!”
어안이 벙벙해진 장수들은 탄성을 토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때 누군가 장수 하나가 간신히 탄성을 거두고는 아뢰었다.
“밝고 영명하신 통찰, 저희는 그저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한데 또 하나 궁금한게 있아옵니다. 다름 아니 옵고 저희에게 명하시어 여근곡을 치게 하셨을 때,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리라 하신 연유를 알고 싶사옵니다.”
대왕은 싱긋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그건 말이외다. 그 백제군 사내 병사들이 하필 여근에 들었기 때문이오. 사내의 물건이 여자의 여근에 들었다가 무사히 고개 들고 나가는 것을 보신 적 있소? 들어올 제는 고개 빳빳히 추켜 세우지만 나갈 때 몰골이라니, 그야말로 싸움에서 진 병사 꼴 아니겠소?”
“하! 하!”
감탄 또 감탐! 빙긋 웃으며 말하는 대왕의 한마디 한마디에 장수들은 그저 감탐사만 연발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사내 장수들은 암담했다. 어디 들어박혀 숨어 있을 데가 없는지 찾고 싶었다. 참담한 심정을 가릴수가 없었다.
“아, 사내란 본디 그런 것이던가! 참담하게 물러난 것은 백제 군사만이 아니
구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과 함께 이 위대하신 우리 선조의 빼어난 슬기를 함께 하려고 “한국인의 자서전” (김열규 지음)의 127 – 129쪽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중에 여왕은 대왕으로 내 멋대로 바꾸어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서는 “선덕女王”으로 되어 있지만 이는 후세에 三國遺事를 쓴 분(一然 스님)이나 史家들이 “大王<크신 임금>”이라는 칭호를 붙이기가 마음이 내키지 안았기 때문이거나 또는 이때에는 대왕이라는 말을 아직 사용하지 안았거나 해서 여왕이라고 불렀겠으므로 대왕으로 고쳐 불러 보았습니다. 이런 知慧와, 이런 洞察力과, 이런 德에, 이런 人品이라면 治績이야 보나 마나, 들으나 마나, 읽으나 마나가 아니겠습니까?


夏 童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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