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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그 100일의 기록 ⑨ -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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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포 작성일 2020-07-03 16:19 댓글 0건 조회 7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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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것이다나누고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호모 싸피엔스의 삶이다. 그런데 코로나 19는 그것을 막아서고 있다. 그것도 전 지구촌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펜데믹이다  

바이러스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슬프다 못해 아프다. 살을 부비고 살던 가족끼리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명절과 경사에 떡을 나누던 정겹던 이웃도 한결 멀어졌으며, 도시와 농어촌, 도시와 도시가 각자도생을 지향하고 국경은 막히고 풀리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 도전하여 훼방을 놓다 못해 온갖 패악질이란 패악질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진저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다. 평온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나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 중론이다. 세월따라 애틋한 정이 옅어지기는 했으나 희노애락을 함께했던 과거는 진정 소중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하게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인류가 일견 이를 감내해야 할 이유도 있다. 적자생존은 차라리 진화론적 수식어였다. 패권과 성장이라는 광기가 번듯이는 무한경쟁과 탐욕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이윤추구라는 극도의 물질지향적인 삶의 방식에 매몰되어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는 등 생태를 우습게 여긴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재앙을 부르고 문명은 언택트로 향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문명인임을 자처했던 현대인은 야만인이었고 생태학적으로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야수(野獸)였던 셈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 보면 그동안 개발되고 연습되어 온 것은 족족 비대면의 기술이고 문화였다. 두터운 벽으로 차단된 아파트, 사이버로 수행되는 일과 수업, 실시간 영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신과 집안에서 억지로 땀을 유발시키는 운동기구, 극장을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와이드 TV,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로봇과 배달문화가 그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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