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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2 - 미즈뜰에서 퍼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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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7-03 08:55 댓글 0건 조회 1,1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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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결정도 없이 훌쩍 가 버리시는
의사 선생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서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커튼이 가리어진 응급실에서 마냥 통곡하고 싶었으나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너무 가까이 있기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숨죽여 울고 있자니 가슴이 너무 뻐근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괜히 가족들을 식사하라고 보냈는가?’
후회스러운 마음에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이 돌아와
“왜 그래?”
“ 더 많이 아파?” 하고 숨 죽여 울고 있는 저에게 물어 오기에
그제 서야 남이 보든 말든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응급실에서 나가 버리면 3개월의 시간이 흐르는데
한 시간이라도 피가 마르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까?
아예 몰랐다면 모르지만 알고 있는 이 순간부터 어떻게 견디라고요.
가족들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고 처분만 바랄 수밖에 없어
애가 타는 응급실에서의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았습니다.
응급처치로는 링거액만 꼽았을 뿐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오전의 시간도 흘러만 갔습니다.
오후가 될 무렵
의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아줌마! 운이 참 좋으시네요.”
“물론 아줌마의 상태로 매우 걱정스러운 상태이지만
응급실에서 바로 입원실로 옮겨지는 예가 쉽지는 않습니다.”
“교수님께서 입원실로 옮기랍니다.”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제부터 수술이라는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병실로 들어 갈 수 있는 것만도
천운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종합병원의 현실이었습니다.

입원실로 옮겨져 보니 6명이 함께 쓰는 병실인데
4명이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고
그 중 할머님 한 분과 50대 초반의 아주머님이 이미
위암 수술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동변상련이라 했나요?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서로의 아픔을 물어 오고 각자의 상태를 이야기 하며
울고 웃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저는 기초적인 상식마저 없이 입원을 하였지만
곁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암에 대한 많은 상식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인 경험담을 늘어놓는데
그 말이 마치 의사가 하시는 말씀처럼 귀에 잘 들어 왔습니다.
희망적인 말을 전해 줄때는 웃음이 맴 돌았다가
“수술하는 과정에 전이 되어서 누구는 결국 세상을 떠났노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제 자신마저 이미 실패한 것처럼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제 자신 혼자만 암에 걸린 줄 알았는데 막상 병원에 와 보니
암 전문 병원으로서 암으로 의심되는 환자들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대 부분이 암 환자였습니다.

앞에 계시는 50대 아주머니는 위암 1기 수술을 하셨는데
수술 후 방사선을 잘못 쏘여
다리가 데인 것처럼 살이 익고 움푹 패었습니다.

“피를 많이 토해 내셨다”는 말씀과
“의료진들의 실수라”고 하시며 푸념을 하시는데
갑자기 소름이 돋았습니다.

항상 만의 하나 라는
실패 확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환자 입장이며
만약 의료진들의 실수가 있어도
의료진들은 다 빠져 나갈 구멍이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병원의 실정이니까요.

수술하기도 전에 가만히 있어도 많은 것을 알아버린 제 심정은
그저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잘 될 것이야.’ 라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잘 못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전에 병원에서 검사했던 것과 응급실에서 검사한 것도 무시한 채
처음부터 다시 정밀 검사에 들어갔습니다.
검사로는
피 검사, 소변 검사, 유방 초음파, 심전도 검사, 가슴사진,
유방촬영, 당뇨 검사, 빈혈 검사 등을 거쳤습니다.
다음으로 문진이 시작 되었습니다.

의사: 언제 발견하셨나요?
환자: 2월 28일 TV 을 시청하다가요.
의사: 전에부터 자각 증상을 못 느꼈나요?
환자: 네. 전혀 통증은 없었습니다.
의사: 지금 어떤 상태로 알고 들어 오셨나요?
환자: 처음에는 유두에서 노란 골음이 나왔고요.
환자: 그 다음은 피가 나왔고 다음은 섞여서 나오더라고요.
의사: 가족 중에 혹시 암 환자가 있었나요?
환자: 저의 어머님이 자궁암 0기이셨고 그 다음은 없습니다.
의사: 자궁암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환자: 아~ 네.
의사: 몇 가지 더 검사해 보고 또 이야기 합시다.
환자: 네 고맙습니다. 꾸벅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목숨을 맡겨야 하는 의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환자 마음이지요.
보호자들도 따라서 인사를 넙죽하며 잘 봐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간호원으로부터
다음 날 수술이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발밑에 ‘금식’이라고
빨간 글씨로 큼직하게 써 놓은 푯말을 걸어 놓았습니다.

“지금부터 물도 드시지 말고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전자식 체온계를 귀에 꽂고 열을 체크하고
혈압을 재어 보더니 다른 환자에게 건너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이 병실에 3월 3일 날짜로 들어온 4명의 환자들 모두
다음 날 수술한다고 간호원이 전해 주었습니다.
급한 환자들이기에 수술을 서두르는 것이고
다음 예약 환자들이 3개월씩 기다리고 있기에 수술하고
걸을 수만 있으면 바로 퇴원을 시킨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수술이 들어가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막상 결정이 되고 보니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취에서 잘 깨어나지도 못하는 허약체질이라
수술 후에 어쩌면 영영 아들 녀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대로 전화를 하느냐 아님 그냥 조용히 군 생활을 하게 놔두느냐
의견이 분분했지만 제가 결정을 했습니다.
만약 아들 녀석의 모습을 못 보고 죽게 된다면 너무 한이 될 것 같아서........

부대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찾아 온 녀석은
저를 붙들고 엉엉 울었습니다.
“엄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하염없이 울어댔습니다.
녀석의 눈물 때문에 또 한번 가족들이 눈물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살아오시면서 남에게 잘하셨잖아요.”
녀석은 눈물을 훔치며 저를 위로하느라 안간힘을 썼습니다.

“너나 걱정하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라.”
“혹여 잘못 되더라도 네 아빠 잘 보살펴 드리고.......”
수술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유언 아닌 유언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는 조용히 남편을 불렀습니다.
“장롱 문을 열어 봐요.”
“그 곳에 통장이 있고 또 저 쪽에는 금이 있고” 하며
마치 못 깨어 나올 사람처럼
그 동안 남편 몰래 모아 두었던 비자금 및 재산 공개를 모두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움켜쥐고 자식에게 섣불리 넘겨주지 말 것도 당부하였습니다.
혹여 혼자 남게 되어 자식에게 찬밥 신세가 될까봐서요.
저 참 못난 사람이지요?
하지만 진심이었습니다.
막상 수술한다고 결정이 나니 현실적인 생각으로
차분하게 일의 순서가 정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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