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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 - 3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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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7-04 12:11 댓글 0건 조회 1,0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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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병원 침상위에 남편과 나란히 누웠습니다.
보조 침대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누워
훌쩍이다 잠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수술대에 올라야하는 심정이기에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을 위하여 미등을 켜놓고 다른 모든 불은 꺼졌지만
4명의 환자들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이 모두가 남의 탓인 것만 같고
다시 마음을 다스리고 보면
‘다 내 탓 인거야.’ 하는 두마음이
목 줄기를 타고 서러움으로 물밀 듯 밀려와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울지 마라, 그만해.”
“내일 수술할 텐데, 계속 울면 먼저 지친다.”
곁에 있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지난날의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가기에  설움이 더해만 갔습니다.

제가 또 많이 울거나 신경이 쇠약해지면
온 몸이 마비되는 병도 갖고 있었습니다.
안면경련도 일어나면서 호흡도 곤란해지니까요.
1986년에 마취쇼크로 깨어나지 못했던 후유증때문에
아직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는 종합병동”이라고 부른답니다.

허나 웃을 일이 아닌 것이 남이 보기가 딱한 만큼
본인 스스로는  괴로움을 더 많이 겪고 산 삽니다.

손톱 밑이 곪은 사람이 다리 자른 사람의 고통을 어찌 알겠습니까?

사람이 나간 자리는 사람이 들어 와야  외로움을 달랠 수 있고
제물이 없어지면 또한 제물이 들어 와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듯이
사람이 살면서 뜻하지 않은 환경 변화가 찾아와도 자신 스스로가 짊어지고 살아 갈 뿐
결국 대신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날이 밝았습니다.
저의 병실만 4명의 환자가 수술대에 오르는데
다른 병실을 합치면 하루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생과 사를
오가는 현실을 겪고 있었겠습니까?

새벽부터 간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동 천막과 면도기를 갖고 들어오면서
“어느 분부터 미실래요?” 하더군요.
수술 중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수술 전의 절차이었겠지요.

병실 분위기가 너무 침울 하기에 제가 농담을 한 마디 던졌습니다.
“저요! 저는 겨드랑이에 털이 몇 가닥이 안 되니까 제가 먼저 할래요.”
짧은 순간이지만 병실 안에서 작은  웃음소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서대로 한 사람씩 불려지며 수술 가운을 갈아입고
밀려 나가는 환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온 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는 저는 입이 바짝 타 들어 오면서
온 몸이 은근히 마비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견디어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기에 의사선생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사의 처방대로 기존에 복용하고 있던 약을 소량의 물과 함께 복용하였습니다.

원래는 환자가 무의식중에 토하게 되면 기도가 막혀
호흡이 멈출까봐 아무것도 못 먹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마비가 되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응급처치로
어쩔 수 없이 위와 같은 처방을 내리더라고요.

새벽에 밀려간 환자가 몇 시간이 흐른 후
신음 소리를 내며 마취에서 완전하게 깨이지 못한 상태에
병실 안으로 밀려들어 왔습니다.
병실 안은 갑자기 마취약 냄새가 진동하였고
보호자들마저 술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으음, 아파~”
“ 물 좀~”
허공을 가로 저으며 신음하는 환자를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ㅇㅇㅇ님!
제 이름을 부르며 간호원이 달려 왔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이구나.’ 생각하며 끌려 간 곳은
수술실이 아닌 초음파실 이었습니다.
의심되는 부분이 있기에 수술 전에 다시 긴급 검사가 들어간답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처분만 바라고 포기했던 제 마음이 갈등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막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왜 나는 다시 검사에 들어갈까?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지만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초음파 실에서 검사를 하는데
20cm가 넘는 바늘이 제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퍽’
마취도 없이 생살을 뚫는 소리가 제 귀에 생생하게 들려 왔습니다.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검사실의 의사가 말을 건네었지만
정말 저는 아픔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흠! 이상하네.”
당신들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눈빛을 보내는
그 시간이 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또 안 보여.”
한번 생살을 찌르고 초음파로 다시 확인 한 다음
서로가 주고받는 말이었습니다.

서로가 사인을 주며 주고받는 말에 미심적은 제 마음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습니까?”
도저히 숨이 막혀와 참을 수 없기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니에요.”
“수술 전에 의심되는 부분을 정확히 체크하라고 하셔서요.”하며
20cm의 바늘을 가슴속의 살 깊이 쑤셔 넣었습니다.
‘아~’
가느다란 신음소리에 의사가 놀라며 한마디 하시더군요.

“큰 소리로 아프다고 하셔도 됩니다.”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아플 것이라 짐작하면서 계속 찔러 넣는 이 사람들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결국
세 개의 바늘이 유방의 살 속을 뚫고 난 후
다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주사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주사입니다.”
사람을 데리고 다니며 이곳저곳을 쑤셔 놓기에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래 죽기 아니면 살기야.’
‘이제는 포기하자.’
고통이 있지만 이를 악 물고 참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니 한결 편안해 졌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움직이는 대로 쫓아다니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수술 전 생살을 뚫고 있는 큰 바늘을 보며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저는 오히려 냉담해졌습니다.

“수술 잘 받고 와.”
침상 머리맡에서 소곤거리는 남편의 모습이 제 눈앞에 들어 왔습니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추려고
억지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가슴이 더욱 아파왔습니다.

“너무 걱정 하지 말거라.”
친정어머님의 목소리도 들려 왔습니다.
스르르르 밀려가는 침대를 잡으며
가족들은 마지막 몇 발자국까지도 함께 하려 했습니다.
저는 차마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통곡을 하며 쫓아오는 아들 녀석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잠깐만이요.”
수술실로 직행하는 침상을 멈추게 외쳤습니다.
군 생활로 뻣뻣해진 아들 녀석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울지 마라.”
“ㅇㅇ 아! 울지 마라.”
아들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울지 말라고 달래었지만
눈물 콧물을 범벅인 채 흐느꼈습니다.
저는 녀석의 모습을 못 본채
고개를 돌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침상이 수술실로 가까워지자 눈을 감은 제 귀에
생생하게 들려 오는 아들 녀석의 통곡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엄~마!”
목메이게  불려지는 “엄~마!” 라는 마지막 말을 들으며
수술실안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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