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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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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량마눌 작성일 2006-07-10 17:21 댓글 0건 조회 1,0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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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화요일
항암제 복용으로 구토 증세 심함.
항생제 복용으로 위가 아픔.
신경과 약 복용으로 정신이 혼미 함.

과연 간에 무리가 없을까?

짧게 기록해 놓았었던 글 속에 고통이 엿보이듯
뒤따르는 후유증을 염려하면서
3월 19일 수요일 수술 후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왼쪽 유방에 튜브 두개를 꼽아 놓은 것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뻣뻣한 관이 가슴속을 왔다가 갔다하는 느낌도 싫었지만
잦은 소독의 고통과 피 골음을 빼어 내는 과정조차 무척 힘들었습니다.
뻣뻣한 튜브를 연결했던 피 주머니를 제거하니
그것만 빼내었어도 얼마나 시원하였던지요.

또 한 가지 해방 된 것은
한 주먹이나 되었던 항생제를 이제부터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의 양이었던 항생제와 항암제 복용으로 인한 후유증에
위가 아파 배를 움켜쥐고 쩔쩔 매었습니다.

이제 계속 항암제를 먹으며 신경과 약도 복용해야 하는데
상담 중에 의사선생님께 너무 힘들어서 못 먹겠다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먹지 마라, 먹지 마!”
의사선생님께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며 약 봉투를 내 던지시더군요.

‘아~ 정말 너무한다.’라는 생각에 저도 그냥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만,
목숨이 무엇인지 그래도 살려 달라고 매달려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약 봉지를 제 손으로 주워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남편도 의사선생님의 과격한 행동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같이 울었습니다.

“의사의 자격도 없는 X 이네.”
“다 나으면 그 때 이 서러움을 이야기 하자.”
서로가 이를 악물며 서로를 위로 하였습니다.
어느 새 약자가 되어 버린 우리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

계속되는 독한 약물의 과다 복용으로 위가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쓰리고 울렁거리는 것이
약도 음식도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른 병원을 찾아가 영양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다 맞고 난 후 알아 버린 상식이었지만
유방암 환자들은 수술한 쪽의 팔에서 피도 뽑지 말고 혈압도 재지 말고
링거액도 맞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수술한 쪽 팔에 상처도 나서는 안되기에 항상 보호 장갑을 끼고 살랍니다.
또 한가지는 무거운 것도 절대 들어서는 안된다는 정보도 알았습니다.
후휴증이 참 복잡하지요?

영양제도 주치의와 상의하여야 하고
모든 약 처방이나 치료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수술을 맡았던 주치의와
반듯이 상담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 중에 처음 맞는 투병 과정이라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 검색도 하고 먼저 수술하신 분에게 자문을 구하고는 하였습니다.

조금 살만했었나 봅니다.
어느 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엎드려서 머리 한번 시원하게 감아 보지 못하고 상처 때문에 누워서 뒤로 젖히고 있으면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머니께서 감겨 주시고는 하셨었습니다.
그렇기에 제 마음대로 개운하게 씻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었지요.

사람이 몸이 아프면 소원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아십니까?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것도 아닌 사소한 한 가지
그 모두가 아픈 사람 마음으로는 꼭 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거든요.

“괜히 갔다가 목욕탕에서 쓰러진다.”
말리는 남편의 고집을 꺾고 목욕탕으로 향하였습니다.

기운이 없어 몸은 벌벌 떨리는데 목욕탕에 들어서니
공기 또한 탁한 것을 금방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 말을 들을 걸......’
바로 후회스러움이 생겼지만 일단 샤워기 쪽으로 가서
머리를 들이 대고 샴푸를 발라 문질렀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머리를 감는 순간 뭉텅이로 빠져 버린
머리카락 한 움큼이 제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머리에 샴푸가 남아 있는 것을 헹굴 때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이미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론적인 말에 불과하였던 상상속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목욕탕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킬 까봐
손에 들고 있던 머리카락을 말아 쥐곤 얼른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참고 말입니다.

들어 갈 때에는 시원스럽게 씻고 나오려고 들어갔지만
마구 떨려오는 가슴과 흔들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가 없어
빨리 목욕탕을 빠져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 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었습니다.
오열하는 저를 붙잡고
“왜 그래?” 하며 제 몸을 흔들었지만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서러움이 밀려 와 오래도록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오래도록 울어버린 탓에 기력이 쇠진 되었고
잠시 우울한 마음 때문에 그만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울어도 메마르지 않는 눈물이 다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었는지
누워있는 베게를 적시다 못해
결국 호흡마저 장애가 와 집에 비취 된 산소 호흡기를 연결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의 자상함 덕분에
병원에서 쓰이는 응급 기구들 웬만한 것은 집 안에 다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쉴 사이 없이 간호를 하던 남편은 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나 하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편안할 텐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갑자기 제 마음 속에서 죽고 싶다는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로 인하여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스치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디 가?”
“화장실 가고 싶어?”
부 시시 잠 깨인 얼굴로 물어 오는 남편의 얼굴이 무척 핼쑥해 보였습니다.

“아니, 물 먹으려고.”
“가만히 있어 내가 가져다가 줄께.”
“내가 깜빡 졸았나 봐.”
언제 잠들었었느냐는 듯 아내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는
애틋한 마음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잠깐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던 나쁜 마음을 접어버렸습니다.

다음 날
거래처를 방문하였다가 아내가 걱정이 되어 남편이 일찍 귀가하였습니다.

“뭐 좀 먹었어?”
냄비를 들추며 물었습니다.
“아니 위가 많이 아파서 못 먹었어.”
정말 그랬습니다.
계속 되는 위통 때문에 배가 절였습니다.

몸이 붕 뜬 것처럼 배가 저려 온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통증을 표현하기가 무척 애매하였습니다.
이런 표현이 위경련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좁은 방에 응급기구들과 수많은 봉투에 담겨져 널려 있는 약들
정말 제자신도 지겨움을 느끼게 되는데 남편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도 지난 날 당신 자신 때문에
아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다고 자책하며
아무 말 없이 아내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내를 위하여 애쓰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제 자신도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을 때
본의 아니게 믿고 사는 남편에게 심술궂은 행동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죽 좀 사올까?”
질문에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아프기 전에 다정한 모습 좀 보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이 자상하게 물어 올 때마다 아쉽게 느껴지는 마음속의 생각이었습니다.

“아니 누룽지나 좀 끓여 줘.”
“그것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힘 빠지는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남편이 냄비에 누룽지를 앉혀 놓았습니다.
잠시 후
누워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누룽지가 벌써 끓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ㅇㅇ아빠! 누룽지 넘친다.”
배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어 나가 보았습니다.
순간
구석에서 훌쩍이며 숨 죽여 울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남편의 손에는 방바닥을 돌아다니며
한 올 한 올 주워 모은 제 머리카락 한 움큼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저는
다시 방으로 들어 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 죽여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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