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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떨어진 기러기 - 제7화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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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야부리 작성일 2006-07-31 08:32 댓글 0건 조회 1,3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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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뉴질랜드로 떠난지 두달이 돼가고 있었다.
바람머리는 앞으로 4개월 정도 더 연장이 되어있는 상태여서 곧 가부간의 결정을 해야하는
그런 시기에 와 있었다.
기거하고있는 청파동의 작은아버지집에서는 부모하고 함께 살아야한다는 극히 당연한
원칙을 이야기 하며 이민 갈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바람머리의 부친은 군인출신이라 그런지 모든일을 혼자 결정하고 그 가족들은 어김없이
그의 결정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것 처럼 보이는 그런 가정이었는데 이번 이민의 건을
보면서 이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것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바람이 몹시 불던날, 산장호수를 다녀오면서 바람머리가 엉뚱한 소리를 한다.

"우리 둘째아이가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면 그간 다녀왔던 모든곳을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면
어떨까, 재밌겠지?"
옛날에 엄마, 아빠가 연애할때 다녀갔던 곳이라고 말해주면서 말이야."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이내 웃고 말았다.

"네가 애기를 나으면 나는 할머니를 낳겠다. 뭔넘의 겁쟁이가 애는 어떻게 낳을꼬…?"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시골냄새를 흠뻑 맡으며 바람머리는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하는듯
그렇게 보였다.

여러가지로 심경이 복잡해 있는 바람머리와 함께 참으로 오랜만에 춘천을 다녀왔다.
매번 갈때마다 같은 길이지만 맛이 틀리고 그래서 질리지 않는 곳이다.
특히나 강촌에서 춘천쪽을 달리며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예쁜지 모른다.
이미 도로변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나무들은 마지막 단풍을 한껏 뽐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늦가을에 접어 들었다.
시원하게만 느껴지던 도로변 강물이 마치 은어떼가 뛰듯 반짝인다.
이제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스산해 질 강물을 보면서 왠지모를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공지천에 가면 Rocking House라고 하는 야외까페가 있는데 그곳은 작은 공원을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곳인데 상업용공원치고는 규모가 상당히 커서 호젓하게 동동주에 파전하나를
놓고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마춤인 곳이다.
그곳의 분위기는 가지각색이어서 젊기도 하지만 고풍스럽고, 점쟎기도 하지만 시끌벅적한
곳이기도한 그야말로 그 테이블에 누가 앉았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각기 달리 보여지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그날 다소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서로 말을 먼저 꺼내기를 조심스러워하듯
그렇게 멀뚱히 앉아 있었다.
서로가 따라주는 동동주의 맛을 음미하듯 조심스레 마시며 서로의 얼굴만 살피며 쳐다보는
그런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순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꺼냈다.

"넌 언제 떠날건데?"

"…."

"빨리 떠나야 내가 좀 편해질텐데…말이다." 괜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잡아먹을듯 눈을 돌려 쳐다보는 눈알이 마치 금방이라도 빠져나올것만 같다.

"눈에 힘빼라! 용쓰지 말고…"

"넌 지금 장난치고 싶니? 분위기 파악을 못해."

마치 한대라도 칠 기세로 달라붙는다.
따라놓은 동동주를 마치 옹기채 마시기라도 할 듯 쭈욱 마시더니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사실은 이틀전 우리 엄마한테서 전화를 받았어."

그렇게 엄하고 무섭기만 하시던 아버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숫자가 훨씬
늘어 났다며 하루라도 속히 들어오길 바란다는 그런 전화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외동딸이라 더욱 그랬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너무 불편하고 지루하게 생각되어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 회 먹으러 가자. 동동주는 뭔 얼어빠질 동동주야."

우리는 춘천터미널을 지나 쭈욱 뻗어있는 도로를 따라 춘천댐으로 향했다.
육림공원이라는 곳을 지나자 이미 월동준비를 하기 시작한듯 어느집에는 두꺼운 비닐로
군데군데 포장을 쳐놓은것이 보였고 나는 그것이 겨울동안 사용할 야외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흐르는 계곡물위에 얹혀진 야외용 좌석보다는 온돌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보일러를 돌렸는지 약간의 온기가 도는 온돌방이 싫지 않았다.
푸짐한 향어회가 들어오고 우리는 별말없이 맑은술로 흠뻑 젖고 있었다.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바람머리가 마시던 잔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한다.

"나, 안가기로 엄마한테 얘기해 버렸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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