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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당한 안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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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20-09-25 09:01 댓글 0건 조회 9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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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에 당한 안전사고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다
.

어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수많은 전조 증상이 따른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쾅 하고 사고가 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 사고가 나기까지 잔잔한 문제가 300, 그리고 중간단계의 전조 증상이 29번이 있은 후 큰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그 법칙에 의하면 사고도 예고를 하고 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은 간과하고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잔잔한 전조 증상이 무수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넘기고 만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 봐야지만 그 사고가 나기까지 수많았던 증상들이 떠올려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사고라는 것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라 본다.

사고가 나고 싶어 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고가 나는 것을 그저 재수에 옴 붙어서 그런 일이 일어 난 것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사고는 우연찮이 찾아오는 불청객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빈번히 사고와 마주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사고를 줄이거나 안 나게 만들 것인가가 우리가 풀어야 할 난제인 것이다.

필자도 살아가면서 많은 사고와 접해봤다.

어떤 경우는 목숨이 날아갈 정도의 사고도 경험했었다.

차를 운전하는 순간에는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예측하지도 못한 가운데서 핸들을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 주말에 담장에 돌을 쌓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돌과 돌 사이에 검지 손가락 끝이 들어가 짓이겨 졌다.

엄청난 통증이 오는 것으로 봤을 때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찢어지거나 베어진 것은 아닌 관계로 피는 나지 않았지만 금세 손가락 끝이 발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통증도 수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빨갛던 피부가 거무틔틔해 지기 시작하였다.

손톱도 피부와 같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라색 비스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잘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돌을 날라다가 담장을 쌓고 있었는데 거기서 사고가 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사고가 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태만과 부주의, 주위집중이 헝크러져 일어난 사고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나사가 몇 개 빠졌던 것이다.

게다가 담장 쌓기 작업 전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어쩌면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 작업을 한 것이다.

사달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여겨진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 끝이 망가지고 난 후유증은 생각보다 좀 심했던 것 같다.

손가락을 볼 때마다 보기도 흉하고 의욕마저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행동도 부자유스럽게 나타났다.

뭣을 해도 혼이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집중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지면 그것으로 인하여 주변의 기관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발생되는 문제점으로 손을 써서 하는 일 자체가 죄다 어눌해 지는 것이다.

하다못해 젓가락질 하는 것 조차 제대로 안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것에서도 오타가 나기 십상이 되다 보니 혼돈의 상태로 접어드는 것 같다.

사람이 저절로 멍청해져 가는 듯 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전한 상태에서 느끼지 못했던 문제점이 안전사고 하나고 죄다 들어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하더라도 거기에 안전사고가 유발된다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것이다.

안전사고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사람은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도 다 힘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위해요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본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날아와 나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인리히 법칙을 준용하지 않는다 하여도 우리는 늘 안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눈을 뜬 다음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잠자리에 들어서도 안전에 위해요소가 있으면 그것을 해소하고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안전사고가 난 다음 아무리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이 시대에 중국 송나라 시대의 철학자인 주자가 환생을 한다고 했을 시 현대판 주자십회에 안전에 관한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위해요소가 발생 될 만 한 곳에는 각별히 유의하여 자신의 삶을 보호해야 할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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