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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일남 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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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6-10-11 14:34 댓글 0건 조회 9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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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張一男선생님을 追慕하며

나는 개인적으로 고인(한양대 음대 명예교수로 2006년 9월 24일 74세를 일기로 타계)과 이런 저런 緣으로 어떤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 고인으로부터 어떤류의 강의를 들은바도 없지만 고인의 이름 석자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고인을 알게 된 아주 특별한 인연때문이네.

한나뿐인 甥姪생질女가 淑明에 다니던 58년도 어느날, 얘가 – 이제는 환갑을 넘긴 나이인데 -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 오더니,

“삼춘, 내가 오늘 학교에서 아주 좋은 음악공부를 하고 왔는데 한번 들어볼래?” 하길래,
“그거 조오치, 그래 무슨 좋은 음악공부인데? 했더니”
“오늘 오후에, 우리 음악선생님이 전교생을 강당에 모이게 하고는 음악 하나를 틀어주면서 그 음악에 얽힌 아주 자세한 이야기와 설명을 해 주셨는데, 우리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다시 틀고 또 틀어 이해를 할때까지 설명을 해 가면서까지……. 그래서 강당에 모인 전교생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음악에 푹 빠졌다네.”
“그래!? 참 좋은 음악선생님이시네. 그런데, 그처럼 좋은 선생님의 성함이 어떻게 되지?”
“장일남”

그곡이 바로 베버Weber, Carl Maria von(1786-1826)의 “舞蹈會의 勸誘 Invitation to the dance”였네. 작곡가 자신이 쓴 줄거리는 대강 아래와 같다고 하네. (安東林의 “이 한장의 명반 클래식” 外 에서)

(“어느 무도회에서 한 신사가 젊은 숙녀에게 춤 한번 추자고 요청한다. 그녀는 수줍음이 많아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며 거절한다. 그러나 신사가 더욱 공손히 다시 요청하자 드디어 승낙한다. 한동안 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신사는 그녀를 이끌고 훌로어로 나가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화려한 舞曲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겨운 한동안의 시간이 흐른뒤 춤이 끝나면 신사는 그녀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두 사람은 퇴장한다.”)

이 곡을 이해하고, 곡이 귀에 익고 부터 최근까지 내가 품어오던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 의문이란 바로 이曲의 우리말 題目이였네. 당시는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이곡의 제목은 “무도회의 권유”로 책이나 방송에서 이야기 되었었는데, 왜 舞蹈에 ‘會’자를 붙였는가 하는 의문이였지. 곡의 내용으로는 도저히 ‘회’자를 붙여야 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지. 제목을 궂이 우리말로 하자면, “춤 한번 추실까요” 정도인데, 고전음악에 이런 제목을 붙인다면 체신?머리가 없다거나, 너무 경박?스럽다거나 해서, 추측이네만, 일본사람들이 쓰는 제목을 그대로 빌어와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겠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무도의 권유”로 제목이 바뀌어서 방송이나, 음악책이나, 報道에서 쓰이고 있다네. 늦게나마 퍽 다행스러운 일이네만, 아직도 이 제목이 내게는 성에 차지 않는데, “춤 한번 추실까요”로 하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이곡은 남자를 상징하는 묵직한 低音의 첼로cello로 시작하는데, 이처럼 첼로의 저음이 사람의 마음을 후비듯히, 호소하듯히, 은근하게 느릿느릿 다가오면서 “춤 한번 추실까요?”의 선률로 請을 하면, 이에 숙녀의 목소리는 크라리네트로clarinet로, “몰라요, 싫어요”로 좀 쌀쌀 맞다는 선률로 대답을 하나, 신사의 끈질긴 권유로 나중에는 응해서 결국 춤을 함께 추는데……….여기에 쓴 ‘몰라요, 싫어요’를 내 조카가 내게 전해준 고인의 해설중에서 내가 지금까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네.

그해에, 나는 대학에 갓 입학한 말하자면 새내기로, 읍내 장터에 내다놓은 시골 촌닭처럼, 보는 모든 것은 높고, 크고, 넓고, 길고, 배우는 모든 것은 새롭고,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들이였는데, 이런 음악의 해설이란 것이 난생 처음 듣는 것으로 새하얀 백지장에 먹물이 번지듯이 쏙 쏙 머리에 박히었으니, 내가 어찌 고인의 이름을 잊을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음악을 가까이하며, 즐기며 살게 된 동기부여를 고인은 내게 선물 한 셈인데, 이런 엄청나고, 복되고, 또 큰 선물을 그분이 내게 하다니!

이곡은 연주시간이라야 고작 9분이 채 않되는 짧은 곡으로, 작곡가가 33살 때에 사랑하는 아내 카롤리네에게 바치기 위해 작곡한 피아노곡이지만, 우리가 요사이 즐겨 듣는 이곡은 Berlioz, Louis Hector(1803-1869, 幻想交響曲Symphonie Fantastique의 작곡가)가 관현악 곡으로 편곡한 곡인데, 위에 이야기한 곡의 시작에서 눈처럼 흰 드레스를 입은 숙녀와 새까만 燕尾服을 입은 신사가 샹드리에가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하고, 벽은 온통 금칠의 장식을 한 큰 홀에 나가 모여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할 圓舞曲waltz을 추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게! 이 흥겨운 원무곡을 들을 때면,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Mario Lanza(1921-1959) 주연의 음악영화 “歌劇王 가루소 The Great Garuso”가 생각이 나고, 란자가 등장해서 노래를 브르던 눈이 부시고, 입이 딱 벌어지던 그 무대와, 그 歌劇場들의 내부 모습들이 눈에 鮮한데……..

영국 런던에 살던 80년대 초반 어느 해에, Royal Albert Hall에서 비엔나에서 온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교향악단과 함께 온 수십명의 원무곡 무용단이 흥겨운 Vienna Waltz를 그 큰 홀에서 추는데 참으로 장관이였다네! 나중에는 청중도 신명이 나니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발을 구르면서, 박수를 치면서, 호흡을 맞추어 분위기를 돋우니 교향악단과, 무용단과, 청중이 한데 어울려 渾然一體가 되어 시간 가는줄 모르는 저녁시간을 보냈는데, 이 곡을 들으면 위에 이야기 한 가극장들의 내부 모습과 겹쳐서 원무곡 무용단의 춤추던 모습이 생각이 나고는 한다네.

Southern Bank에 있던 Wigmore Hall에서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의 연주를, Babican Centre에서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를 정기적으로 들을수 있었던 것도, Bond Street에 있던 당시 유럽에서 제일 크다고 했던 5층짜리 HMV레코드 상점에서 LP판을 사 모으던 것도, 서울에 찾아 오는 해외의 유수한 교향악단의 연주회에 가는 것도, 또 CD를 사는 것도, 고인이 내 조카를 통해 내게 선물했던 “무도의 권유”의 해설중 두마듸, 즉 ‘몰라요, 싫어요’의 그 대목 때문이였네.

또, 내 음악애호에 동기부여를 해준 다른 한 사람은 본란에 이미 올린 “美國人과 肥滿”이란 제목의 글에서 언급했던 미국 Detroit시에 사는 친구인데, 이 친구의 음악성이나 음악의 造詣에는 전문가급 수준으로 그 음악성이 큰 아들에게 고스란히 遺傳.傳受되어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 직 하고…….

“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여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장일남 선생님이 곡을 붙이신 碑木의 가사네!
이 가곡은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3대 가곡중에 하나며, 기록에 따르면 음악평론가며 전 서울시립대 교수였던 韓明熙님이 육군 소위시절인 1963년 봄 강원도 華川 백암산 어느 기슭에서 정찰을 하는데 여기저기에 흩어진 철모, 카빈총, 꽂혀있던 빛 바랜 나무 막대기와 돌무더기의 틈에 보잘 것 없이 누워있던 한 무덤을 찾아 내고는  그자리에서 이 시를 써서 묘에 넣어 두고 왔다가 먼 훗날 장일남선생님에게 작곡을 부탁해서 오늘의 곡이 되었다는군.

한명희님은 이르기를 “고인의 선률은 五線紙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효되어 흘러 넘치는 가락이였다”고 고인을 추모하시고.
 
선생님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평양음악학교를 나오고, 단신으로 월남해서 숙명, 昌德, 서울 사대부고를 거쳐 한양대 음대에서 작곡 교수로 30여년 간 교편을 잡으셨고, 위에 이야기 한 비목을 비롯하여 ‘기다리는 마음’등 숫한 가곡과 ‘춘향전’ ‘원효대사’를 비롯한 많은 창작 오페라를 남기셨는데, 특히 춘향전은 1966년에 초연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창작 오페라로는 가장 자주 연주되는 오페라가 되었다네.

故人의 冥福을 빌면서………….!


夏  童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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