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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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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6-12-11 08:02 댓글 0건 조회 9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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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존경하는 사람

여기, 한 시대를 風靡했던 진실로 위대한 애국자 한 사람이 있었네! 그분은 한국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나라가 먹고 살 길이 무엇인지, 그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한 한국이 낳은 전 세계가 존경했던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故 鄭周永이시네.

개인적으로는 그분이 살아계실 때 위의 제목으로 글을 한번 써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해 왔던 차에, 마침 미국의 시사 주간지 “TIME”은 11월 05일자 아시아판 출간 60주년을 기념하여 ‘60 Years of Asian Heroes’라는 제목의 특집판을 냈는데, 5개의 항목(국가건설, 예술&사상, 기업, 운동&개척, 영감을 준 인물)을 설정하고, 한국인으로는 기업란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예술&사상에 故 白南準선생을, 영감을 준 인물에는 脫北者인 강철환씨등 3명을 각각 선정 했더군.

정주영 명예회장의 선정 이유로는, 한국이 6.25한국전쟁의 폐허와 잿더미의 最貧國에서 시작해서 세계에서 11번째의 경제대국을 이루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라고 했고, 고속도로라던가, 조선소라던가, 자동차라던가를 시작할 때 국내는 물론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冷笑를 一笑에 부치고 ‘하면 된다’라는 굳은 신념 하나로 밀어 붙여서 기어코, ‘그네들이 틀렸다는 것을 證明해 보인 인물’이라고 평가를 했더구만. 시대를 저만큼 앞서 가신 분이셨는데, 燕雀들이 大鵬의 뜻을 알아치리지 못한 처사야………..!?

정 명예회장의 출생에서 현대라는 큰 기업군을 일으키기 까지의 과정은 책으로, 언론으로, 그리고 입으로 이미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현대라는 기업군의 핵심분야였던 건설과, 자동차와, 중공업분야가 오늘 한국이 이 분야에서 세계속에 우뚝 설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産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네.

우리나라의 해외건설공사의 역사는 1965년에 현대건설이 檀君이래 최초로 태국에서 500만달라 짜리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 嚆矢였고, 이어진 70-80년대의 중동 건설붐은 우리나라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큰 사건이였네! 이일을 정 명예회장께서 몸소 앞장서서 추진했고, 실천했다는 이야기네. 이 건설 호황이 우리나라가 오늘 세계에서 11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커 나가는데 礎石이 되었다는 사실이고…… 꼭 41년전의 일이네만, 그때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겪었던 온갖 辛苦와 艱難의 체험이 한국의 해외건설공사의 밑걸음이고 출발이였다네. 지금 보면 뭘 이런 일을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만도 하지만, 당시 주 태국 한국대사관에서 현대건설 직원이 여권 일을 보러 갔더니, “현대건설이 뭐 하는 회사인가요” 하더라는 그런 시절이였다네!

보도에 따르면 금년의 우리나라 해외 건설수주 예상액은 160억달러로(11월까지는 144억달러로 가장 호황이라고 했던 1977년의 140억달러를 넘어선 기록) 이는 1965년의 첫 해외건설공사이후 최대 규모라는군. 이중에서 현대건설은 24억 6,000만 달러, GS건설이 15억 8,000만달러, 현대중공업이 14억달러, 대우건설이 13억 4000만달러, 삼성엔지니어링이 9억달라고.

미군들이 쓰던 짚차를 뚜드리고, 고치고, 페인트 칠을 해서 시발 자동차를 만들기 50여년, 현대자동차의 고유 모델인 ‘PONY’를 남미의 Ecuador에 1976년에 5대를 수출한 이래 지난 30여년 동안 총 2,000여만대를 전 세계에 수출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현황은 말 그대로 桑田碧海가 아닌가? 이 상전을 벽해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이분이 아니신가? 기계공업의 총아라고 하는 자동차산업의 고용효과나, 수출효과나, 기계공업의 발전 효과나, 덤으로 얻는 한국의 홍보효과등은 논외로 치고라도, 그 누가 한국이 오늘날 전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생산기준으로 6위에 오르리라고 감히 꿈이나 꾸었겠는가?

이에 더하여, 우리나라 자동차는 70년대 까지 엔진을 수입해서 사용하였으나, 현대자동차는 독자엔진을 개발하여 현재는 미쓰비시와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각각 엔진 제조기술을 수출하여 로열티를 받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으니, 놀라움에 앞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 아닌가? 

오늘의 世界造船現況을 보면 그분의 功이 얼마만큼 크고,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어떠했는지를 쉽게 짐작할수 있으리라 보네. 벌써 몇 년째 세계 조선소 수주잔량 순위에서 한국은 1등에서 10등까지에 현대 중공업을 필두로 7위 까지 모조리 차지하고 있으니. 보잘것 없는 조그만한 어촌이던 울산 전하만에 1973년에 조선소를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한국에서는 이분을 제 정신을 가진 분이 아니라고 이해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거북선이 인쇄된 5,000원짜리 지페 한장을 달랑 들고 영국에 가서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돈을 빌릴수 있었다는 것은 신화 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더불어, 현대 중공업은 단일 조선소로서는 세계에서 不動의 一位지만,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선박 엔진을 지금 五大洋을 누비는 3척의 대형 선박중에 적어도 한 척에는 장착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네. 세척중에 한척이 현대중공업이 생산한 엔진을 얹고 오대양을 누비다니! 현대중공업은 전 세계 엔진시장의 35%를 점하는 최대의 생산업체이며, 지난 79년에 제1호기를 생산한 이후 금년 8월까지 누계 6,000만 馬力의 엔진을 생산하여 세계 최초.최고의 업적을 올린 업체이기도 하다니, 그저 입이 딱 벌어지고, 감격의 눈물이 흘러 내리고, 놀라울 따름이네.

잘 알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제는 70%이상이 해외 의존형인데, 이분은 60년대 초부터 해외시장 진출과 수출이야말로 나라가 먹고 사는 유일한 길이라며 자나 깨나 한결같이 생각하고, 시도하고, 이룩한 일이 해외시장 진출과 수출 바로 그것이였네. 그것도 앞서 이야기 한 그 어렵다는 중공업분야에서 말이네. 우리들은 지금 그 과일을 즐기고 있는 셈이지.

우리나라는 2006년 12월 5일에 세계에서 11번째로 3,000억달러의 수출을 이룩한 수출대국이 되었는데 (1964년 1억달러, 1977년 100억달러, 1995년 1,000억달러, 2004년 2,000억달러), 이중에서 200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분야에 반도체가 350억달러, 자동차 320억달러, 무선통신기기 270억달러, 선박과 석유제품이 각각 210억달러나 된다니, 이분의 先見之明이 얼마나 빼어나게 卓越하신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네!

이분이 하늘나라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정주영의 개인에 대한 평가야 功은 이렇고 過는 이렇다고 수수만가지를 사람마다 쉽게 이야기 할수 있겠지만, 큰 나무야 드리우는 그늘이 언제나 넓고 짙은 법이고, 바람 잘 날이 없을 뿐더러, 얼마나 많은 날 짐승들이 그속에 깃들이는가?

峨山 鄭周永 (1915. 11.25 – 2001. 3.21)
그는 한 시대를 앞서 생각하고 실천한 위대한 先覺者였고, 先知者 였으며, 거인중의 巨人의 風貌로 살다 가신 분이였네.


夏  童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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