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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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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6-12-1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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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만상 3
제 11화, 어느 효자 이야기
얼마전에 42세의 인천에 사는 ‘이 군익’이라는 분이 알미늄으로 특수 제작한 지계에 아버지를 지고 금강산에 오른 기사가 났었는데, 며칠전에는 중국의 泰山에 까지 같은 지계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왔다는군. 그래서, 山東省의 칭다오靑島의 한 케이블 TV방송에서는 시어머니를 뚜드려 패서 갈비뼈를 6개나 부러뜨린 한 중국인 며느리와 이 美談의 주인공을 대비해서 방송을 했으니, 그 반응이야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 아니였겠는가?
이 효자는 7남매의 막내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쳤다는데, 아버님은 금년에 아흔둘이시라니 보도가 정확하다면 쉰둥이 같은데……. 쉰둥이라면 나도 4남매의 막내로 쉰둥인데………만일 내 아버님이, 내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수 있을까에 이르니, 그저 말문이 콱 막혀 버리는군. 나는 태생적으로 눈물이 많은지 이런류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저 눈물부터 흘리는데……. 이 일에도 내가 한 일은 그저 눈물부터 흘린 일이였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할수 있을까에 이르러서는 눈앞이 캄캄하고, 말문이 콱 막히고, 답답하고, 어안이 벙벙한 그런 감정이였다네. 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도, 만년을 살아도 감히 흉내조차 낼수 없는 일을 이 효자는 그렇게 쉬운 일처럼 해 내다니.
금년 여름에 米壽를 지나신 큰 형님께서 언젠가 아버님 이야기를 하던중에, “그때는 國喪이였다”고 하시던데, 아버님은 63년 정월에 74세를 한 편생으로 하늘나라로 가시고, 또 어머님이 3년뒤 시월에 73세로 서둘러 남편 뒤를 따라 가시었으니, 나는 육군에서 만기제대가 임박한 때요 삼년뒤에는 대학을 졸업한 해 였으나,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에 적잖은 나이였었는데도 따뜻한 일 한가지라도 해 드린적이 있었던가에 이르니 그저 悔恨만 앞서는데……..
이 효자는 금강산 산행후에 온천욕을 하는데 같이 간 형님(55)이 막내의 몸을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고……… 막내의 상반신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이 온통 피멍이였더라고…….. 그도 그럴 것이 약 60kgs(지계는 15kgs정도)를 지고 거의 종일 그 험한 산을 올랐다 내렸다를 되풀이 하였을 테니……..
“금강산 가믄, 일만 이천봉에 팔만여 나므개 암자가 있다든디……..”
거동이 불편하신 이 효자의 아버님이 언젠가 wheel chair로 독립기념관을 다녀오시면서 하셨다는 이말에 막내효자는 그날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을 다녀 올 궁리에 궁리를 해서 지계도 알루미늄으로 특수 제작했다고 하니, 이분의 효심은 아무리 타고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끄럽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고개가 턱없이 숙여지고……..그렇네.
지난 10월에 한 모임에서 안동을 다녀오는 길에 奉化의 淸凉山을 등산한 후 산 아래 쪽에 있는 도산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데 아들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목욕을 하는데, 씻겨 드리고, 머리를 감겨 드리고, 딱아 드리고, 말리고, 업고 밖으로 나와서 옷을 입혀드리고 하는 짓이 어찌나 정성스럽게 하던지, 또 눈물이 울컥 나더군. 이런 광경에 눈물을 천만번 흘린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라는군. (白凡 일지에서)
장한 쉰둥이 막내 효자, 이군익씨! (2006년 12월 4일)
제 12화, 수출 3000억 달러 시대
2006년 12월 5일, 이날은 우리나라 수출 역사상 금자탑을 쌓은 큰 劃을 긋는 전환점Epoch-making turning point이였네.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중국, 영국, 네델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벨기에에 이어 세계에서 11번째로 연간 수출액이 3000억 달러의 고지에 오른 나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에 이어 세번째이고 연대 별로는 1964년에 1억 달러, 1971년 10억, 1977년 100억, 1996년 1000억, 2004년의 2000억 달러에 이은 2년만의 快擧라네.
가진 재산이라고는 사람뿐이고, 이들이 무장한 무기라고는 “하면된다”는 신념 하나로 이 瘠(척)薄하고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일궈 낸 기업인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네. 더더군다나 금년은 얼마나 어려웠던 한해 였는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얼마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 3만불의 시대로 가자면 “행정규제, 정부조직의 비대, 강성노조”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던데, 이런 전통적인 三苦에 국제 원유가, 환률, 원자재의 三災까지 겹친 한해였는데, 이런 모든 난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 사실 이런 난관을 그네들처럼 남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만큼 한가한 기업인들이 아니지만 - 이룩한 일이라 더 값진 수확이였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본 對한국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도 “행정규제와 강성노동운동”을 꼽았던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강성노조야 시대의 한 흐름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소 완화되리라 보지만, 행정규제는 완화되기가 어려우리라 보는 것이, 행정규제를 완하하면 그네들이 할 일이 없어 지는데 무슨 재미로 사는가? 規制, 指示, 命令이 세금으로 예산을 쓰는 사람들의 재미의 전부?인데 이 재미를 없애 버린다는 것은 그 職을 그만두라는 이야기인데, 그 직은 선거에 의했던, 임명에 의했던, 시험에 의했던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의 결실인데 高下를 막론하고 그 직을 어떻게 그만두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公僕으로 奉仕를 바란다? 아직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가.
대부분의 민간 경제연구소는 내년 경제전망을 어둡게 보던데, 집값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원고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국제원유가에, 원자재에, 북핵문제에,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大選에 따른 선심성 행정 등등에…….. 꼭 10년전인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기업부실에서 유래됐다면 이번의 위기는 가계와 개인의 부실에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는등, 또 여기에 전통적인 三苦와 계속될 三災는 당장 완화될 기미는 전혀 없다고 보인다는데, 기업인들의 환경이야 늘 그러 했듯이 그들이 스스로 밝게 만들어 가야지 …….. 그저 뛰고, 또 뛰어야지! (2006년 12월 6일)
제 13화, 이 일을 우짜노……..
숱한 이야기를 뒤에 남겨두고 화물연대파업은 5일만에 막을 내렸는데, 부산 금정구 반여동에 사는 67세의 허모씨의 이야기는 참으로 딱하네.
“검게 그슬린 차를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습니다” 2000년에 2500여만원을 주고 산 8톤 화물차의 운전석과 화물칸 일부가 불에 타 버린것이다. “유리창이 깨지고 인화물질을 담은 1L들이 프리스틱 통이 운전석 옆에 나뒹글고 있는 것을 볼 때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허씨는 5일 경찰의 입회하에 진행된 감식현장에서 말했다는군.
허씨는 1일 오후 대구에서 조립식 건축패널을 싣고 와 자신의 집 근처인 금정구 금사동 도시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에 차를 세워두고 다음날 부산 기장의 정광산업단지 공사현장에 이 자재를 전해 주러 가는 길이었다네.
허씨는 보험에도 들지 못했고, 나이 때문에 장거리는 뛰지 못하고 대구와 부산간을 운행하면서 이것저것 제하고 한달에 100여만원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화물차는 생계의 수단이자 밑천인데 이런 변을 당했으니………1969년에 운전면허를 따서 37년 동안 한결같이 화물차 운전으로 가계를 꾸려가면서 아들, 딸을 짝 지워 준 허씨에게는 이 화물차가 남은 생계수단의 전부이자 삶의 전부였다는데……..
“아무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남의 차에 불을 지르고 파손하는 짓은 정당화될 수 없을 뿐더러,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으나 메아리 없는 공허한 웨침이였고…… 보험에 들지 않았으니 보상도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폐차하고 새 차를 살 돈도 없고, 살아 갈 길이 막막한 이 화물차 老운전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딱하기도 하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이분은 김장이나 했는지? (2006년 12월 6일)
제 14화, 상생이란…….
보도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KOTRA 공동으로 7명(한노총 4명과 무공 3명)으로 구성된 해외투자 유치 시찰단이 네델란드의 암스텔담과 영국의 런던을 그곳의 투자 진흥청과 경영자연맹을 잇따라 방문해서 한국의 투자여건을 소개하고 현지의 노사협력 실태를 6박 7일 일정으로 살피고 있다는군. 유엔 무역개발회의(UNSTAD)에 따르면 작년에 네델란드와 영국에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436억 달러(4.8%)와 1645억 달러(18%로 1위)로, 한국은 FDI로 79억 달러에 머물렀다는데……..
이 사람들의 이런 생각이나 활동은 몇 년전만 하더라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는데, 이렇게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니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제는 相生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수 없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쯤으로 치부되는 “決死…..”라고 쓴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맨 모습을 볼 때 마다 섬뜻하다는 느낌이였는데, 이런 머리띠 대신 말쑥한 차림으로 투자유치를 하러, 현지의 勞使의 相生을 직접 보러 다닌다고 하니 이들을 맞는 그네들도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노동단체의 이런 발빠른 변화에 痼疾的이며 歷史性 까지 갖는 ‘行政規制’만 적절한 수준으로 완화된다면, 錦上添花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한국노총 금속연맹 이진우 조직 강화부장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화두를 빼고 21세기 노동운동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는데 참으로 巨視的이고, 國家的인 眼目이 아니겠는가? 이런 노동단체의 변화된 발상을 바탕으로 상생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세금을 올리고, 더 거둬들여,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사람들이 나라 살림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이네들에게 상생이란 말은 언제쯤 피부에 와 닿는 話頭가 될까? (2006년 12월 9일)
제 15화, 즐길줄 아는 소년
지금 중동의 Qatar의 수도인 Doha에서는 제 15회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는데, 한국의 수영선수인 17세의 경기고 박태환은 7개 종목에 출전해서, 아시아 신기록(자유형 200m와 1,500m) 2개에, 금3, 은1, 동3의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 소년의 경기후 소감이 아주 걸작이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는 ‘즐긴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더니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 얼마나 당차고, 옹골차고, 재치가 넘치고, 유머스러우며, 여유가 넘처흐르며, 어른위에 어른 같은 소감인가? 이제 겨우 17세의 소년이………
이 소년이 마지막 레인을 끝내고 터치를 하자마자 한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쓸어 내리고 웃는 그 해맑은 웃음은 그렇게 天眞爛漫하고, 純眞無垢한 것이 마치 세살박이가 큰 일을 이루어 내고, “엄마, 어때 내가 해 냈지?”하는 표정이던데, 참으로 보기좋은 아름다운 광경이였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학교체육은 외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중에 하나인데, 이는 제도적인 문제가 제일의 걸림돌이여서 학생들이나 지도자들 모두가 한가하게 ‘즐기는 체육’을 가질수 없는 현실적인 실정임에 비추어 볼 때, 이 소년이 “즐기는 마음”으로 수영을 한다니, 앞으로 大成할 타고 난 성품인 것 같네.
이렇게 즐기면서 운동을 해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수 있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으니, 자나 깨나 운동만 시켜서 학생들에게 삭막하고 피폐한 마음을 심어주며 엄청난 스트레에 시달리게 하는 현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개인이나, 가정이나, 학교나, 나라에게나 모두 득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이 일로 관계되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깨닳았으면 하네.
생활에서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여유로운 삶인가? 영국의 펍Pub에 가면 흔히 볼수 있는 광경중에 하나가, 그네들은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문을 닫을 때 까지 談笑를 즐기는데, 우리의 문화와는 영 딴판이더군. 비행기나 혹은 공항에서 가끔씩 만나는 외국인과 통성명을 하고 어디를 간다고 하면 묻는 말이, “Business or pleasure?”지. 여기서 ‘pleasure’는 우리가 잘못 사용할 수 있는 한정적인 뜻의 ‘享樂’ 같은 것이 아니고, 놀며 즐긴다는 넓은 의미로 받아 들이면 될 것 같네.
우리들이 쓰는 ‘즐긴다’는 말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네들이 쓰는 즐긴다는 말은 생활 그 자체인 것 같더군. 그만큼 즐긴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 것이, 즐기는 것을 배우지도, 연습한 적도 없었으니까. 우리들이 겪는 공통적인 경험이지만, 어렸을때 밥상에서는 밥을 먹는다는 것은 빈 뱃속에 음식물을 채우는 행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지?
의학적으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면 소화효소의 분비가 많아 소화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어른들의 유교적인 가르침은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체신머리 없다거나, 방정 맞다거나, 경망스럽다거나 하여튼 부정적인 짓으로 간주해서 밥을 먹으면서 말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되는 행위로 길 들여져서 자랐으니,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그 버릇이 그대로 남지 않았는가? 밥을 먹은 행위는 삶의 시작이며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이 일의 즐거움을 몽땅 빼앗기고 자랐으니, 다른 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焉敢生心 엄두나 낼수 있는가?
한국언론은 이 소년을 ‘수영 신동’이라고 부르는데 수영 신동답게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대회 最優秀選手賞MVP을 수상했다네. 기자단 투표 결과 총 869표 가운데 231표를 얻어 99표를 얻은 중국의 체조 4관왕 양웨이를 큰 표차로 제치고.
이 소년이 즐기는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면, 우리는 앞으로 1-2년 안에 처음으로 세계적인 水泳人을 얻는 기쁨을 틀림없이 맛 볼수 있을 것 같네. (2006년 12월 9일/12월 16일)
夏 童 2006년 12월
제 11화, 어느 효자 이야기
얼마전에 42세의 인천에 사는 ‘이 군익’이라는 분이 알미늄으로 특수 제작한 지계에 아버지를 지고 금강산에 오른 기사가 났었는데, 며칠전에는 중국의 泰山에 까지 같은 지계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왔다는군. 그래서, 山東省의 칭다오靑島의 한 케이블 TV방송에서는 시어머니를 뚜드려 패서 갈비뼈를 6개나 부러뜨린 한 중국인 며느리와 이 美談의 주인공을 대비해서 방송을 했으니, 그 반응이야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 아니였겠는가?
이 효자는 7남매의 막내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쳤다는데, 아버님은 금년에 아흔둘이시라니 보도가 정확하다면 쉰둥이 같은데……. 쉰둥이라면 나도 4남매의 막내로 쉰둥인데………만일 내 아버님이, 내 어머님이 살아계셨다면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수 있을까에 이르니, 그저 말문이 콱 막혀 버리는군. 나는 태생적으로 눈물이 많은지 이런류의 이야기를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저 눈물부터 흘리는데……. 이 일에도 내가 한 일은 그저 눈물부터 흘린 일이였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할수 있을까에 이르러서는 눈앞이 캄캄하고, 말문이 콱 막히고, 답답하고, 어안이 벙벙한 그런 감정이였다네. 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도, 만년을 살아도 감히 흉내조차 낼수 없는 일을 이 효자는 그렇게 쉬운 일처럼 해 내다니.
금년 여름에 米壽를 지나신 큰 형님께서 언젠가 아버님 이야기를 하던중에, “그때는 國喪이였다”고 하시던데, 아버님은 63년 정월에 74세를 한 편생으로 하늘나라로 가시고, 또 어머님이 3년뒤 시월에 73세로 서둘러 남편 뒤를 따라 가시었으니, 나는 육군에서 만기제대가 임박한 때요 삼년뒤에는 대학을 졸업한 해 였으나,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에 적잖은 나이였었는데도 따뜻한 일 한가지라도 해 드린적이 있었던가에 이르니 그저 悔恨만 앞서는데……..
이 효자는 금강산 산행후에 온천욕을 하는데 같이 간 형님(55)이 막내의 몸을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고……… 막내의 상반신은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이 온통 피멍이였더라고…….. 그도 그럴 것이 약 60kgs(지계는 15kgs정도)를 지고 거의 종일 그 험한 산을 올랐다 내렸다를 되풀이 하였을 테니……..
“금강산 가믄, 일만 이천봉에 팔만여 나므개 암자가 있다든디……..”
거동이 불편하신 이 효자의 아버님이 언젠가 wheel chair로 독립기념관을 다녀오시면서 하셨다는 이말에 막내효자는 그날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을 다녀 올 궁리에 궁리를 해서 지계도 알루미늄으로 특수 제작했다고 하니, 이분의 효심은 아무리 타고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끄럽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고개가 턱없이 숙여지고……..그렇네.
지난 10월에 한 모임에서 안동을 다녀오는 길에 奉化의 淸凉山을 등산한 후 산 아래 쪽에 있는 도산온천에서 온천욕을 하는데 아들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목욕을 하는데, 씻겨 드리고, 머리를 감겨 드리고, 딱아 드리고, 말리고, 업고 밖으로 나와서 옷을 입혀드리고 하는 짓이 어찌나 정성스럽게 하던지, 또 눈물이 울컥 나더군. 이런 광경에 눈물을 천만번 흘린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라는군. (白凡 일지에서)
장한 쉰둥이 막내 효자, 이군익씨! (2006년 12월 4일)
제 12화, 수출 3000억 달러 시대
2006년 12월 5일, 이날은 우리나라 수출 역사상 금자탑을 쌓은 큰 劃을 긋는 전환점Epoch-making turning point이였네.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중국, 영국, 네델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벨기에에 이어 세계에서 11번째로 연간 수출액이 3000억 달러의 고지에 오른 나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에 이어 세번째이고 연대 별로는 1964년에 1억 달러, 1971년 10억, 1977년 100억, 1996년 1000억, 2004년의 2000억 달러에 이은 2년만의 快擧라네.
가진 재산이라고는 사람뿐이고, 이들이 무장한 무기라고는 “하면된다”는 신념 하나로 이 瘠(척)薄하고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일궈 낸 기업인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네. 더더군다나 금년은 얼마나 어려웠던 한해 였는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얼마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 3만불의 시대로 가자면 “행정규제, 정부조직의 비대, 강성노조”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던데, 이런 전통적인 三苦에 국제 원유가, 환률, 원자재의 三災까지 겹친 한해였는데, 이런 모든 난관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 사실 이런 난관을 그네들처럼 남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만큼 한가한 기업인들이 아니지만 - 이룩한 일이라 더 값진 수확이였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본 對한국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도 “행정규제와 강성노동운동”을 꼽았던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강성노조야 시대의 한 흐름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소 완화되리라 보지만, 행정규제는 완화되기가 어려우리라 보는 것이, 행정규제를 완하하면 그네들이 할 일이 없어 지는데 무슨 재미로 사는가? 規制, 指示, 命令이 세금으로 예산을 쓰는 사람들의 재미의 전부?인데 이 재미를 없애 버린다는 것은 그 職을 그만두라는 이야기인데, 그 직은 선거에 의했던, 임명에 의했던, 시험에 의했던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의 결실인데 高下를 막론하고 그 직을 어떻게 그만두겠는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公僕으로 奉仕를 바란다? 아직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가.
대부분의 민간 경제연구소는 내년 경제전망을 어둡게 보던데, 집값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원고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국제원유가에, 원자재에, 북핵문제에,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大選에 따른 선심성 행정 등등에…….. 꼭 10년전인 1997년 말의 외환위기가 기업부실에서 유래됐다면 이번의 위기는 가계와 개인의 부실에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는등, 또 여기에 전통적인 三苦와 계속될 三災는 당장 완화될 기미는 전혀 없다고 보인다는데, 기업인들의 환경이야 늘 그러 했듯이 그들이 스스로 밝게 만들어 가야지 …….. 그저 뛰고, 또 뛰어야지! (2006년 12월 6일)
제 13화, 이 일을 우짜노……..
숱한 이야기를 뒤에 남겨두고 화물연대파업은 5일만에 막을 내렸는데, 부산 금정구 반여동에 사는 67세의 허모씨의 이야기는 참으로 딱하네.
“검게 그슬린 차를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습니다” 2000년에 2500여만원을 주고 산 8톤 화물차의 운전석과 화물칸 일부가 불에 타 버린것이다. “유리창이 깨지고 인화물질을 담은 1L들이 프리스틱 통이 운전석 옆에 나뒹글고 있는 것을 볼 때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지른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허씨는 5일 경찰의 입회하에 진행된 감식현장에서 말했다는군.
허씨는 1일 오후 대구에서 조립식 건축패널을 싣고 와 자신의 집 근처인 금정구 금사동 도시고속도로 진입로 부근에 차를 세워두고 다음날 부산 기장의 정광산업단지 공사현장에 이 자재를 전해 주러 가는 길이었다네.
허씨는 보험에도 들지 못했고, 나이 때문에 장거리는 뛰지 못하고 대구와 부산간을 운행하면서 이것저것 제하고 한달에 100여만원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화물차는 생계의 수단이자 밑천인데 이런 변을 당했으니………1969년에 운전면허를 따서 37년 동안 한결같이 화물차 운전으로 가계를 꾸려가면서 아들, 딸을 짝 지워 준 허씨에게는 이 화물차가 남은 생계수단의 전부이자 삶의 전부였다는데……..
“아무리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서 남의 차에 불을 지르고 파손하는 짓은 정당화될 수 없을 뿐더러, 법치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으나 메아리 없는 공허한 웨침이였고…… 보험에 들지 않았으니 보상도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폐차하고 새 차를 살 돈도 없고, 살아 갈 길이 막막한 이 화물차 老운전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딱하기도 하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이분은 김장이나 했는지? (2006년 12월 6일)
제 14화, 상생이란…….
보도에 따르면 한국노총과 KOTRA 공동으로 7명(한노총 4명과 무공 3명)으로 구성된 해외투자 유치 시찰단이 네델란드의 암스텔담과 영국의 런던을 그곳의 투자 진흥청과 경영자연맹을 잇따라 방문해서 한국의 투자여건을 소개하고 현지의 노사협력 실태를 6박 7일 일정으로 살피고 있다는군. 유엔 무역개발회의(UNSTAD)에 따르면 작년에 네델란드와 영국에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436억 달러(4.8%)와 1645억 달러(18%로 1위)로, 한국은 FDI로 79억 달러에 머물렀다는데……..
이 사람들의 이런 생각이나 활동은 몇 년전만 하더라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는데, 이렇게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니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제는 相生의 의미가 무엇인지, 상생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수 없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쯤으로 치부되는 “決死…..”라고 쓴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맨 모습을 볼 때 마다 섬뜻하다는 느낌이였는데, 이런 머리띠 대신 말쑥한 차림으로 투자유치를 하러, 현지의 勞使의 相生을 직접 보러 다닌다고 하니 이들을 맞는 그네들도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노동단체의 이런 발빠른 변화에 痼疾的이며 歷史性 까지 갖는 ‘行政規制’만 적절한 수준으로 완화된다면, 錦上添花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한국노총 금속연맹 이진우 조직 강화부장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화두를 빼고 21세기 노동운동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는데 참으로 巨視的이고, 國家的인 眼目이 아니겠는가? 이런 노동단체의 변화된 발상을 바탕으로 상생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마당에 아직도 세금을 올리고, 더 거둬들여,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사람들이 나라 살림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이네들에게 상생이란 말은 언제쯤 피부에 와 닿는 話頭가 될까? (2006년 12월 9일)
제 15화, 즐길줄 아는 소년
지금 중동의 Qatar의 수도인 Doha에서는 제 15회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는데, 한국의 수영선수인 17세의 경기고 박태환은 7개 종목에 출전해서, 아시아 신기록(자유형 200m와 1,500m) 2개에, 금3, 은1, 동3의 7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 소년의 경기후 소감이 아주 걸작이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는 ‘즐긴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더니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이 얼마나 당차고, 옹골차고, 재치가 넘치고, 유머스러우며, 여유가 넘처흐르며, 어른위에 어른 같은 소감인가? 이제 겨우 17세의 소년이………
이 소년이 마지막 레인을 끝내고 터치를 하자마자 한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쓸어 내리고 웃는 그 해맑은 웃음은 그렇게 天眞爛漫하고, 純眞無垢한 것이 마치 세살박이가 큰 일을 이루어 내고, “엄마, 어때 내가 해 냈지?”하는 표정이던데, 참으로 보기좋은 아름다운 광경이였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학교체육은 외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중에 하나인데, 이는 제도적인 문제가 제일의 걸림돌이여서 학생들이나 지도자들 모두가 한가하게 ‘즐기는 체육’을 가질수 없는 현실적인 실정임에 비추어 볼 때, 이 소년이 “즐기는 마음”으로 수영을 한다니, 앞으로 大成할 타고 난 성품인 것 같네.
이렇게 즐기면서 운동을 해도 훌륭한 결과를 얻을수 있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으니, 자나 깨나 운동만 시켜서 학생들에게 삭막하고 피폐한 마음을 심어주며 엄청난 스트레에 시달리게 하는 현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개인이나, 가정이나, 학교나, 나라에게나 모두 득이 된다는 사실을 이번 이 일로 관계되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깨닳았으면 하네.
생활에서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여유로운 삶인가? 영국의 펍Pub에 가면 흔히 볼수 있는 광경중에 하나가, 그네들은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문을 닫을 때 까지 談笑를 즐기는데, 우리의 문화와는 영 딴판이더군. 비행기나 혹은 공항에서 가끔씩 만나는 외국인과 통성명을 하고 어디를 간다고 하면 묻는 말이, “Business or pleasure?”지. 여기서 ‘pleasure’는 우리가 잘못 사용할 수 있는 한정적인 뜻의 ‘享樂’ 같은 것이 아니고, 놀며 즐긴다는 넓은 의미로 받아 들이면 될 것 같네.
우리들이 쓰는 ‘즐긴다’는 말은 제한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네들이 쓰는 즐긴다는 말은 생활 그 자체인 것 같더군. 그만큼 즐긴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 것이, 즐기는 것을 배우지도, 연습한 적도 없었으니까. 우리들이 겪는 공통적인 경험이지만, 어렸을때 밥상에서는 밥을 먹는다는 것은 빈 뱃속에 음식물을 채우는 행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지?
의학적으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면 소화효소의 분비가 많아 소화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어른들의 유교적인 가르침은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체신머리 없다거나, 방정 맞다거나, 경망스럽다거나 하여튼 부정적인 짓으로 간주해서 밥을 먹으면서 말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되는 행위로 길 들여져서 자랐으니,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그 버릇이 그대로 남지 않았는가? 밥을 먹은 행위는 삶의 시작이며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이 일의 즐거움을 몽땅 빼앗기고 자랐으니, 다른 생활을 즐긴다는 것은 焉敢生心 엄두나 낼수 있는가?
한국언론은 이 소년을 ‘수영 신동’이라고 부르는데 수영 신동답게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대회 最優秀選手賞MVP을 수상했다네. 기자단 투표 결과 총 869표 가운데 231표를 얻어 99표를 얻은 중국의 체조 4관왕 양웨이를 큰 표차로 제치고.
이 소년이 즐기는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면, 우리는 앞으로 1-2년 안에 처음으로 세계적인 水泳人을 얻는 기쁨을 틀림없이 맛 볼수 있을 것 같네. (2006년 12월 9일/12월 16일)
夏 童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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