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김남숙 할머님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7-01-29 12:32 댓글 0건 조회 846회

본문

金南淑 할머님께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가며, 병이 들고,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것은 사람 모두가 꼭 겪어야 하는 과정이고 밟아야 하는 길이라고 합니다만, 내가 그 과정의 중심에 섰을 때 만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고통과 슬픔을 어디에, 어떻게, 무엇으로 비견(比肩)할수 있겠습니까?

80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겪었을 크고 작은 아픔과, 슬픔과, 비애와 고통이, 이번에 55년여를 함께 해로(偕老)해 오신 지아비를 잃으면서 맛보아야 하는 그 슬픔과, 고통과, 비애와, 허무와, 덧없음에 어찌 비교를 할수 있겠습니까? 임종(臨終)에 즈음하여 그 분이 온 몸으로 토해내던 귓가에 아직도 맴도는 창자가 끊어지고 뼈를 깍는 고통의 호소를 어찌 쉬이 떨쳐 버릴수 있겠습니까? 부부일신(夫婦一身)이라하여 대신 아파주는 것이 차라리 그분의 그 고통의 시달림에서 잠시 잠깐만이라도 감(減)할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으며, 또  얼마나 보람된 일이였겠습니까마는…………
 
안동(安東)이 본관(本貫)인 권(權)씨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의 종파(宗派)의 한 뿌리로 강릉 사천에 터전을 잡은 종가(宗家), 사남삼녀 칠남매의 맏며느리로 그분과 부부의 연(緣)을 맺고 함께 살아 온 지도 어언 55년여(餘),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 동안 부부간에 쌓아 온 도타운 정이 얼마며, 그 세월 동안 부부간에 다짐했던 다짐이 얼마며, 그 세월 동안 부부간에 쌓인 애증(愛憎)을 어떻게 필설(筆舌)로 이루 다 헤아릴수 있겠습니까?

그때 그분한테 이런 일은 이렇게 해 주었을 걸, 그때 그분한테 저런 일은 저렇게 해주었을 걸 하며 회한(悔恨)을 해 보나, 이제는 그 회한이 그저 눈물과 한숨과 후회로만 남는군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았던 제사에, 시제(時祭)에, 일가친척들의 대소사(大小事)에, 철따라 어김없이 찾아드는 명절에, 차례(茶禮)에, 어른들의 애경사(哀慶事)에, 시누이와 시동생들의 뒷 치닥거리에, 엄청나게 많던 농사의 뒷바라지에, 내 자식 사남매 기르기에, 그 많던 부엌일에, 손이 마를 날이 한시라도 있었겠습니까? 마음 조이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었겠습니까? 편안하게 밥 한 숟가락 떠 먹던 날이 한끼라도 있었겠습니까?

주말임에도 동서남북에서 그렇게 많이 찾아 주셨던 조문객들이 모두 다 뿔뿔이 흩어지고, 강릉 아산(峨山)병원 안팎을 에워싸고도 남을 그 많던 조화(弔花)도 다 걷혀지고, 자식들도 다 떠나고, 형제들과 일가친철들도 모두 다 돌아가고, 이제 혼자 남으셨군요. 천지간(天地間)이 그렇게 넓다 하나 그분이 남기고 가신 텅 빈 뒷자리를 그 누가 메워주겠습니까?

나는 난방(煖房)이 잘 된 이런 방에서 요 깔고 이불 덥고 이 추운 겨울을 이렇게 따뜻하게 보내는데, 그분은 성긴 베옷을 대충 입고, 난방도 안된 엄동(嚴冬)의 얼음장 같은 한평도 안되는 냉방(冷房)에서, 뗏장 홋이불을 덮으시고 오돌오돌 떨 생각을 하면 어찌 한순간이라도 편안한 잠을 이룰수가 있겠습니까?

두분이 함께 쓰실 때는 크지도 작지도 않다고 생각되던 집이 왜 이리 휑뎅그렁하게 넓고 커 보일꼬?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사는듯 마는듯 조용하기만 하던 집이 왜 이리 갑자기 깊은 산중의 절간처럼 조용해 젔을꼬?

주방(廚房)에 드니 주방기구(器具)들은 왜 이리 손님처럼 낯설어 보일꼬? 소식가(小食家)이기는 해도 그분이 즐겨 잡수시던 음식준비를 하던 도마에 칼에, 그리고 밥그릇에, 국그릇에, 수저(匙箸)는? 안방에 드니 그분이 즐겨 입으시던 손길이 밴 옷가지와, 잠자리가 왜 이리 을씨년스럽게 썰렁할꼬? 응접실에 드니 그분이 즐겨 보시던 티비는 왜 저리 덩그마니 을씨년스럽게 채울수 없는 홀로일까? 그분이 즐겨 마시던 커피와 이를 준비하던 다기<茶器>들은 이제 주인이 다시 돌아올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셨으니 어디에 쓴단 말인고? 마당에 나니 그분과 함께 정성스럽게 가꾸던 화초와 정원수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새싹을 틔우고 꽃을 만개(滿開) 할텐데, 누구와 더불어 너희들의 난만(爛漫)을 완상(玩賞)할꼬? 그분이 즐겨 읽으시던 저 책들은? 그분이 즐겨 보시던 저 비데오 테이프는? 그분이 손수 운전하시던 저 차는?

왜 이리 내 가슴은 한풍(寒風)이 씽씽 쇳소리를 내며 드나들듯이 한복판이 뻥 뚫린 것 처럼 허전할꼬? 왜 이리 허전할꼬?

이제 곧 망부(亡夫)의 49재(齋)가 되는 날에는 자손들과, 형제들과, 사촌들과 일가친척들과, 지인(知人)들이 모여 가신분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축원(祝願)하면서 고인과의 이승에서 얽혔던 이런 저런 이야기로 좋은 시간을 보내겠지요.

자식들의 효심(孝心)이 아무리 지극하다해도 자기들이 낳은 자식들을 돌보아야 하고, 또 살아가야 하니 나름대로 모두 다 바쁘지요. 귀찮더라도, 싫더라도 하루 세끼 끼니를 거르지 마시고 꼭 챙겨 드십시오. 망부께서도 건강하게 여생(餘生)을 보내시다가 먼 훗날 극락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 이승에서 못다한 얘기도 마저 하고, 이루지 못했던 일도 다시 이루고, 아꼈던 정(情)도 서로 서로 다시 베풀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도 그랬을 터이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더 내몸 내가 보살펴야 합니다.
 
이웃집에 가시기도 하고 또 그분들을 불러 함께 커피도 즐기시며 이런 저런 얘기에 파묻이다 보면 잠간 동안이라도 모든 번뇌(煩惱)에서 벗아나기도 하고, 또 쉽지는 않더라도 시간을 내서 서울에 사는 두 딸네집에도 번갈아 가며 며칠씩 묵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외손자와 외손녀들의 커 가는 모습을 보시면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잊을수도 있으실테지요. 

이제 곧 따뜻한 봄날이 오면 집 앞뒤 정원에 두분들이 가꾸고 기르던 정원수도 다시 손질하시고, 화초씨도 알맞춤한 곳에 뿌려 꽃도 보고 잎도 보고 하노라면 세월이 물 흘러가듯이 눈 깜짝하듯이 지나가니, 세월에 맡기고 살다보면 그저 또 다시 옛날의 그 생활로 되돌아가게 되고, 이렇게 한해, 두해, 십년, 이십년, 지나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삶의 기쁨에 젖게 되지요.  삶이란 참으로 얄미우리만치 영악하답니다.

제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에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집 주위의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구, 이노옴들 오늘도 마안이 컷구나” 하셨는데, 학자들이 근래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집에서 기르는 정원수나 화초도 기르는 사람이 귀애(貴愛) 해 주고, 예뻐 해 주고, 정성스럽게 보살펴주면, 꽃도 더 크고 화려하게, 색갈도 더 진하게, 잎도 더 짙게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인명은 재천(在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로부터는 내가 나를 채찍질하며, 내가 나를 이끌어 가며, 서둘음 없이, 그저 쉬엄 쉬엄, 한발 한발, 남은 세월을 딛고 가야 하겠지요. 같이 갈 사람은 먼저 떠나시고, 대신 해 줄 사람도 없고, 또 대신 할수 도 없는 길이지요.

늘 몸 보전(保全)하시기를 바라며, 저는 오는 봄 청명.한식(淸明.寒食)에 부모님 산소 성묘 때에 찾아 뵙겠읍니다.

권 오 원 드림      2007년 1월 29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