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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불상(四不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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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7-03-29 09:38 댓글 0건 조회 9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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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같으면서도 낙타가 아니고,사슴 같으면서도 사슴이 아니고,
노새 같으면서도 노새가 아니고,소 같으면서도 소가 아닌 짐승이 있다.
뭄통은 당나귀를,발굽은 소를,머리는 말을,뿔은 사슴과 비슷하지만 전체적으로 볼때면
그 어느것도 닮지 않았다고 한다.
원산지는 중국으로 '사불상(四不像)'이라고 부른다.
어떤 문헌에는 낙타 같기도 하고 사슴 같기도 하다 하여 타록(駝鹿)이라 한다고도 했다.

dea-h2.jpg

옛날 꼬장꼬장한 선비들이 모여사는 남산골에 「남산샌님 고을 원 목자르듯 한다 」는
속담이 있었다.
남산골 샌님은 재물이나 벼슬에 연연하지않고,여색을 초월하며,초가삼간에 홑중이 입고,
한잔 박주(博酒)에 자족하며 표표히 살지만 어떤 벼슬아치던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하면
그날로 목이 뎅강 잘리는 무서운 파워를 갖고 있는 집단이였다.
이 남산골 샌님의 언론재판을 속칭 '사불상'이라 불렀다.
싸립문집에 베옷입고 살지만 은그릇과 금수저로 밥먹는 사치를 일삼는것이 일불상(一不像)이요,
낙향한채 시골에 살면서 권문세가에 아부 바치는 탐욕이 이불상이요,
사랑에서 뇌물을 퇴하고 안채에서 받아들이는 이중성이 삼불상이며,
색(色)자만 보아도 얼굴을 붉힌다 하고는 여자 엉덩이에 깔려 있는 화탐(花貪)이 사불상이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할지라도 속을 보면 생판 다른면을 지니고 있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위선을 사불상으로 빗댄 것이다.

비운의 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의 강압에 못이겨 양위 하던날
'세조가 엎드려 울면서 굳게 사양하였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세조실록(世祖實錄)은 전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불상의 눈물이였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노론(老論)은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延仍君=영조)을
추대하기 위하여 인헌왕후 김씨를 끌어 들였다.
'효종대왕의 혈맥과 선대왕(현종)의 골육은 주상과 연잉군뿐'이라는 대비 김씨의 세자책봉
추인서를 읽고 '모여있던 여러 대신들이 울었다'라고 경종실록은 전한다.
왕권탈취에 눈이멀어 자신들이 벌려놓은 잔치를 두고 흘린 겉과 속이 다른 거짓 눈물이였다.
그러나 같은 눈물이라도 그 처참한 골육상쟁을 벌리고 왕위를 잡았던 태종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재위 2년에 심한 가뭄이 들자 하루 한끼씩만 먹으며 눈물을 흘렸고,
두해후에는 수재(水災)때문에 눈물을 훌렸다.
세상을 떠나던날 '내 죽으면 상제께 청해 비가오게 하겠다'고 유언했는데
그후 기일마다 비가 오고 백성들은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불렀으니 같은 눈물도
그 의미가 서로 달랐다.

dea-h.jpg 사불상의 교훈은 오늘 이라고 옛과 다름이 있으랴.

교언영색(巧言玲色)으로 자신을 감추고 성동격서(聲東擊西)로 남을 속이며
과실(過失)을 위장(僞裝)으로 덮어 천여덕스럽게 완벽을 꾸미는 기인군자(欺人君子)
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엊그제 한 정치인이 탈당회견석상에서 흘린 눈물을 두고
그것이 위에 말한 세조나 노론대신들처럼 정권욕에 눈먼 사불상 눈물인지
태종처럼 백성들의 고통을 아파한 위민(爲民)의 눈물인지 세간에 진위를 놓고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진실여부야 나중 들어나겠지만 속다르고 겉다른 인간들의 염랑세태(炎凉世態)를 보며 마음이
산란함은 금할길 없다.

십수년전에 중국 북경의 한 동물원에서 이 사불상 한쌍을 우리 서울대공원에 들여 왔다고 한다.
희귀동물인지라 당시의 금액으로 천육백만원을 주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가
자못 궁금한 마음이여서 지금도 있는지 조만간 한번 구경을 갈 참이다,

하기야 뭣인체 하고 뭣도 아니고, 그것인체 하고 그것이 아닌 '사불상'이라면
굳이 비싼 돈 주고 서울대공원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수 있으니
이 또한 쓸데없는 호기심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 동홈 마음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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