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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획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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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7-03-30 15:06 댓글 0건 조회 8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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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樣性과 劃一性

“여기 여직원들 제복uniform의 색갈과 소재는 아래와 위는 서로 같은데 디자인은 모두 제 각각이네요?”
“네, 우리들은 회사에서 옷감을 주고 디자인은 각자 자기의 취향에 따라 옷을 해 입으라고 해서요……….”

방콕지사에 근무 하던 때인 80년대 말에 가끔씩 은행에 들렸을 때 제각기 다른 디자인의 제복에 대한 내 물음에 한 여직원의 대답이였다네. 그러고 보니 규모가 큰 회사나, 금융기관만이 아니라 공장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의 제복도 모두 다 그러 했다네. 윗도리와 치마skirt의 색갈은 서로 같은데 긴팔이나 짧은 팔의 윗옷에, 주름이 있는 긴 치마에 주름이 없는 짧은 치마에, 디자인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해 입었더군.

방콕에서 살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태국은 그냥 불교가 국교이고, 쿠테타가 심심하면 일어나고, 왕이 있고, massage parlour가 있고, 열대의 나라여서 일년에 최소한 二毛作을 하는 등등이 내가 하는 태국의 거의 전부였었는데 이런 문화의 다양성을 접하고는 많이 놀랐다네.

역사에서는 로마를 多民族에, 多文化에, 多言語에, 多神敎, 多風習을 특징으로 하는 ‘多樣性의 國家’라고 하는데, 오늘날 미국사회 만큼 옛날의 로마와 비슷한 다양성을 지닌 나라가 또 있을까? 그래서 뉴욕시 같은 도시는 ‘The melting pot of race’라고 불려지는데, 이런 다양성이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hyper power’로 우뚝서서 세계를 호령하는 밑거름이 아닌가 하네.

지난 92년 대선 기간중에 고향인 江陵 沙川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농협 책임자로 있는 국민학교 동창의 명함을 받아보니 명함에 ‘身土不二’란 말이 인쇄되어 있던데, 그때는 이미 국제화와 세계화가 거스를수 없는 대세였었는데 우리는 신토불이와 같은 思考로 맞선다는 생각을 하니 일백여년전의 구한말의 鎖國과 달라 진 것이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를 自問해 보기도 했다네. 요사이도 길거리에서 죽어라고決死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위를 접하고는 하는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등의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다양성의 수용을 하기에는 획일성이나, 單一性이나, 폐쇄성 같은 의식구조가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라네.


방콕의 4년 생활동안 우리집에 가정부로 일 했던 태국 아가씨는, “외국 사람들이 태국에 많이 와서 공장도 짓고, 건물도 짓고, 사무실도 짓고, 호텔도 짓고, 콘도도 짓고, 골프장도 짓고, 집도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외국사람들이 돌아 갈 때 자기들이 지어 놓은 것들을 가져가지는 못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늘 이야기 하고는 했었는데, 다양성은 보기에 따라서는 ‘열린 마음’과도 통하는 문화가 아닌가 하네. 태국의 관광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내가 태국을 떠나기 전해인 1991년에 약 600여만명의 관광객이 태국을 방문해서 한 사람이 보통 600여불을 쓴 계산으로  총 42억 달라를 태국에 뿌리고 갔다는데,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에는 작년에 약 600여만명의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들렸다는군. 같은 600여만명의 외국인인데 태국은 16년전에 겪은 일이라네. 그런데 두 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의 차이는, 태국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쓰려고 하고, 한국에서는 한 푼이라도 덜 쓰려고 하는 것이라데.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태국을 찾아 이런 저런 경험을 했겠지만, 그들의 화난 얼굴을 보기가 아주 어렵다네.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흐르는 그런 얼굴이라네. 특히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자동차의 警笛소리를 듣기가 어려웠네. 사무실에는 전화벨 울리는 소리는 들렸지 전화를 받아서 이야기를 하는지는 직접 보지 않고는 알수가 없을 정도로 그네들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근무를 하며, 거래은행이였던 방콕은행 본점 2층은 끝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너른 사무실이였는데, 그 많은 수수백명의 직원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근무를 하는데, 그저 전화벨 소리만 여기 저기서 울릴 뿐이였네.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중에 하나는 우리나라는 倍達의 단일민족이라는 것이였고 이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라는 가르침이였었는데, 어른이 되고 세계의 여기저기를 출장을 했었고, 또 여기 저기에 옮겨 다니면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바로는 이런 가르침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井底蛙적인 틀의 사고를 낳는가 하는 점이였네. 그런데 말이네, 우리는 역사시간에 배운 것 처럼 정말로 단일민족이긴 단일민족인가? 멀리는 高麗朝와 가까이는 李朝朝에 기록하지 못할 만치 많이 겪었던 胡亂과 倭亂중에 일어났던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틀의 사고가 한국적인 사고로 자리를 굳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요, 이런 류의 사고가 내가 삶의 표준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요, 이런 사고를 더욱 굳히게 한 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네. 그래서 우리에게는 ‘토론문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지극히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또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다네. 맞는 이야기로는 토론문화가 없으니 맞는 이야기이고, 틀린 이야기로는 우리는 언제 토론을 연습해 본 적이 있었던가? 교육의 방법에 문제가 있기는 해도, 우리의 닫힌 마음인 획일성은 토론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으니까!

태국은 그 지정학적인 위치로 서쪽에 있는 인도에서 정신문화를 동쪽의 중국에서는 생활문화를 받아들여 태국화한 다양성을 갖춘 나라인데, 옆 나라들과는 달리 이런 포용성과 열린마음이 영국이나 불란서의 식민지화를 막은 요인이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네. 태국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우리집에서 가정부로 일 했던 아가씨처럼 남의 것을 수용하는 마음이 아주 강할뿐만아니라 환영하는 일인데, 이런 마음가짐이 모든 부문에서 일본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고, 그래서 태국과 일본은 일찍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네.

요사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것 같은데, 몇몇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그 아까운 전기, 그 아까운 난방비, 그 아까운 물, 그 아까운 통신비를 써 가면서 단식농성을 한다고 하는데, 얼마전에 KDI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작년에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에 차지하는 외국의존도는, 협소한 내수시장 때문에, 88%라고 하네. 이처럼 우리나라는 문을 열고 살아야 하는 숙명인데,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1번째나 되는 나라의 국회의원 몇몇이 나라의 천년 만년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4년 임기에 연연하여 이런 일들을 저지른다면, 이네들의 의식수준은 태국의 한 가정부 보다 나은 점이 있겠는가?


夏 童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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