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화장실 풍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오원
작성일 2007-04-23 09:24
댓글 0건
조회 940회
본문
화장실 풍경
런던지사에 근무하던 80년대 초 어느날 오후 5시경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실청소를 하는 흑인이 좌변기 뚜껑을 꽈다당 탕 탕 하면서 여닫기를 소변을 보는 동안 계속 하길래 듣기가 민망해서 볼일을 마친 후에, 그렇게 꽈다당 탕 탕 좌변기 뚜껑을 여닫으면 그 뚜껑이 배겨나겠느냐는 투로 이야기를 했더니 되돌아 오는 말이, “이걸 좀 보아라, 이게 어디 화장실을 쓰는 사람들이 할 짓이냐?” 하길래 가서 보았더니, 바닥에는 온통 바닥 타일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서울에서 온 舊聞紙가 쫙 깔려 있더군!
그런 일을 겪은 며칠 후 소변기 앞을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오줌방울이 변기 앞 바닥의 같은 자리에 계속 떨어져서 그 자리는 엷은 고동색의 바닥 타일의 色이 바래져서 약간 노리끼리한 색갈이 되었더군.
이후 태국의 盤谷주재 4년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온 90년대 초 어느날 오후 좌변기를 쓸 일이있어 화장실에 갔더니, 아하, 이곳이 바로 10여년 전에 보았던 런던지사의 화장실 바로 그 풍경인데, 바닥에는 舊聞紙 대신 온통 新聞紙가 빈틈없이 덮혀 있더군!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아파트나 그에 準하는 주거문화가 자리매김을 하면서 轉期를 마련하였고, 더하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개통된 지하철이 공용화장실 문화를 한단계 더 끌어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 냈을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고속도로의 休憩室의 화장실을 비롯하여 각 지방자치제들이 앞 다투어 꼭 필요한 곳에 설치한 화장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급 시설이라네.
우리나라 공용화장실의 남자 소변기 앞에는 어김없이 이런류의 글귀가 붙어 있는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라던가, “한발자국 앞으로” 또는 “조금 더 가까이” 등등 비슷한 말들이 씌어있는데, 얘기인즉 변기안에 오줌방울이 떨어지도록 앞으로 바짝 다가서서 일을 보라는 이야기인데, 소변보는 모습을 지금까지 죽 살펴 본 바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서 엉거주춤 한 자세로 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변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우줌 줄기 세기를 내기나 하는양 소변을 보기도 하니, 이런 사람들의 마지막 오줌 방울은 에누리없이 변기 밖에 떨어지더군. 그러니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앞에는 늘 밖으로 떨어진 오줌방울로……... 야구시합에서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치는 볼이 제대로 맞는 볼이 있던가.
여자화장실에는 가 본 경험이 없어 그쪽 사정을 알 길이 없지만, 짐작으로는 남자 화장실 못지않게 더럽게 쓰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네. 거기도 性만 다른 같은 한국사람들이 쓰는 곳이니……
厠間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지만, 재래식 화장실의 效用度를 감안하면 이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네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당치도 않은 말이기도 하고……, 처가가 멀어야 한다는 말은……글쎄…... 이조조에도 한때는 처가살이가 당연시 된 적이 있었는데……...(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역사 비평사 펴냄>에서)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는 화장실은 몸속의 老廢物을 앞뒤에 있는 出口로 排泄해 내 버리는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니 더럽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떤 고정관념이 깊히 박혀 있는게 아닐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姑婦間이나 시누이 올케의 관계는 좋지 않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말이네………! 화장실이 깨끗하다던가, 또는 고부간이나 시누이 올케사이가 좋아 보이면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느낌 말이네! 더구나 여럿이 함께 쓰는 公用物이라면 더더욱 헤프고, 지저분하고, 더럽게 쓰는 게 當然視하는 정서나 의식 같은 것 말이네.
IMF를 겪으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여기 저기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어디에 얼마가 쓰여졌고, 그 쓰여진 돈이 회수될수 있는지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또, 세금이 쓰여질 곳에, 쓰여질 액수만큼, 쓰여질 때에, 쓰여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금은 내 주머니에 안에 있는 내 돈처럼 누가 주인이라는 표시가 없으니, 될수록 빨리, 펑펑 많이 쓰여진다고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 모두는 너나 구분없이 이런 생각과 의식을, 또는 정서를 예로부터 共有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식이나, 정서나, 또는 의식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또, 그 뿌리는 언젠가는 도려 낼 수 있는 것인지?
오래전에 읽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좀 도발적인 제목의 책 첫머리에는 우리나라의 會食文化를 당장 버려야할 문화유산의 하나로 꼽았던데, 보기에 따라서는 一理있는 이야기 아닌가. 1976년에 호주 시드니에 출장 갔을 때 두가지 놀랄 일을 겪었는데, 하나는 ‘엠마뉴엘 부인’이라는 영화를 삭제하지 않고 상영하는 걸 보았고, 다른 하나는 일요일에 공원에 갔더니 연못공사를 하는데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에 있는 공사개요중에 이 공사는 여러분이 낸 세금 얼마를 쓰는 공사라고 해 놓았더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참으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었네!
세금으로 월급을 타는 사람들중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일수록 입만 열면 이만불시대를 이야기 하는데, 글쎄,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만불시대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외적인 숫자만큼 내적인 성숙도가 그에 따라야 할텐데……….지난달에 암스텔담 로얄콘서트헤보우 스트링콰르텟의 연주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1층 E열의 D열과 복도를 사이에 둔 맨 뒷좌석에서 들었을 때에 겪은 일인데, 왼쪽의 D열이 빈자리가 있으니 연주가 시작되자 마자 E열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더군. 또, 이달초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의 ‘아이다’를 3층에서 관람하는데,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좌석 여기저기서 핸드폰의 화면들이 번쩍 번쩍 빛나더군. 음악회에 갈 때 마다 빼 놓지 않고 겪는 일중에 하나는, 적잖은 사람들이 연주가 막 시작 하자마자, 마치 영화관에 온 것 처럼, 자기 좌석을 찾느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며, 음료수를 갖고 들어오는 것도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라네.
종교의 존재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사람마다, 가정마다, 나라마다 제각각 다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기초.기본의 부실이 아닌가 하네. 부부관계를 포함하여 세상살이란 인간관계의 주고.받음이 그 기본 뼈대라고 한다면, 우리네의 삶은, 교육을 그 탓으로 돌릴수 있다고도 하지만, 받는 것은 당연시 하는데 주는 것에는 참으로 吝嗇한 것이 현실이며, 또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네. 사실 우리는 언제, 인성교육은 차치 하고라도, 어른이 되는 교육이나 남과 더불어 함께 사는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특히 근래에 들어오면서 이런 한쪽으로의 치우침 현상이 더더욱 심해지지?
大學街의 교수사회에서 오랫동안 紛紛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의 ‘인문사회학’ 분야가 죽어간다는 것이고, 이 죽어가는 인문사회학분야를 어떻게 하면 되 살릴수 있는가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인문사회학이야 우리 삶의 기본이고, 생각의 바탕이고, 뼈대며, 모든 학문의 기초며 기본인데, 이런 기초.기본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나라가 앞장서서 이 어려움을 풀어야 한다고 하네만……….
夏童 2007년 4월
런던지사에 근무하던 80년대 초 어느날 오후 5시경 화장실에 갔더니 화장실청소를 하는 흑인이 좌변기 뚜껑을 꽈다당 탕 탕 하면서 여닫기를 소변을 보는 동안 계속 하길래 듣기가 민망해서 볼일을 마친 후에, 그렇게 꽈다당 탕 탕 좌변기 뚜껑을 여닫으면 그 뚜껑이 배겨나겠느냐는 투로 이야기를 했더니 되돌아 오는 말이, “이걸 좀 보아라, 이게 어디 화장실을 쓰는 사람들이 할 짓이냐?” 하길래 가서 보았더니, 바닥에는 온통 바닥 타일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서울에서 온 舊聞紙가 쫙 깔려 있더군!
그런 일을 겪은 며칠 후 소변기 앞을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오줌방울이 변기 앞 바닥의 같은 자리에 계속 떨어져서 그 자리는 엷은 고동색의 바닥 타일의 色이 바래져서 약간 노리끼리한 색갈이 되었더군.
이후 태국의 盤谷주재 4년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온 90년대 초 어느날 오후 좌변기를 쓸 일이있어 화장실에 갔더니, 아하, 이곳이 바로 10여년 전에 보았던 런던지사의 화장실 바로 그 풍경인데, 바닥에는 舊聞紙 대신 온통 新聞紙가 빈틈없이 덮혀 있더군!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아파트나 그에 準하는 주거문화가 자리매김을 하면서 轉期를 마련하였고, 더하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개통된 지하철이 공용화장실 문화를 한단계 더 끌어 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 냈을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고속도로의 休憩室의 화장실을 비롯하여 각 지방자치제들이 앞 다투어 꼭 필요한 곳에 설치한 화장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급 시설이라네.
우리나라 공용화장실의 남자 소변기 앞에는 어김없이 이런류의 글귀가 붙어 있는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라던가, “한발자국 앞으로” 또는 “조금 더 가까이” 등등 비슷한 말들이 씌어있는데, 얘기인즉 변기안에 오줌방울이 떨어지도록 앞으로 바짝 다가서서 일을 보라는 이야기인데, 소변보는 모습을 지금까지 죽 살펴 본 바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서 엉거주춤 한 자세로 일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변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우줌 줄기 세기를 내기나 하는양 소변을 보기도 하니, 이런 사람들의 마지막 오줌 방울은 에누리없이 변기 밖에 떨어지더군. 그러니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앞에는 늘 밖으로 떨어진 오줌방울로……... 야구시합에서 엉덩이를 뒤로 쑥 빼고 치는 볼이 제대로 맞는 볼이 있던가.
여자화장실에는 가 본 경험이 없어 그쪽 사정을 알 길이 없지만, 짐작으로는 남자 화장실 못지않게 더럽게 쓰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네. 거기도 性만 다른 같은 한국사람들이 쓰는 곳이니……
厠間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지만, 재래식 화장실의 效用度를 감안하면 이 말이 일리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네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당치도 않은 말이기도 하고……, 처가가 멀어야 한다는 말은……글쎄…... 이조조에도 한때는 처가살이가 당연시 된 적이 있었는데……...(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역사 비평사 펴냄>에서)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는 화장실은 몸속의 老廢物을 앞뒤에 있는 出口로 排泄해 내 버리는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니 더럽게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떤 고정관념이 깊히 박혀 있는게 아닐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姑婦間이나 시누이 올케의 관계는 좋지 않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말이네………! 화장실이 깨끗하다던가, 또는 고부간이나 시누이 올케사이가 좋아 보이면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느낌 말이네! 더구나 여럿이 함께 쓰는 公用物이라면 더더욱 헤프고, 지저분하고, 더럽게 쓰는 게 當然視하는 정서나 의식 같은 것 말이네.
IMF를 겪으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적자금이 여기 저기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어디에 얼마가 쓰여졌고, 그 쓰여진 돈이 회수될수 있는지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또, 세금이 쓰여질 곳에, 쓰여질 액수만큼, 쓰여질 때에, 쓰여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세금은 내 주머니에 안에 있는 내 돈처럼 누가 주인이라는 표시가 없으니, 될수록 빨리, 펑펑 많이 쓰여진다고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 모두는 너나 구분없이 이런 생각과 의식을, 또는 정서를 예로부터 共有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식이나, 정서나, 또는 의식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또, 그 뿌리는 언젠가는 도려 낼 수 있는 것인지?
오래전에 읽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좀 도발적인 제목의 책 첫머리에는 우리나라의 會食文化를 당장 버려야할 문화유산의 하나로 꼽았던데, 보기에 따라서는 一理있는 이야기 아닌가. 1976년에 호주 시드니에 출장 갔을 때 두가지 놀랄 일을 겪었는데, 하나는 ‘엠마뉴엘 부인’이라는 영화를 삭제하지 않고 상영하는 걸 보았고, 다른 하나는 일요일에 공원에 갔더니 연못공사를 하는데 옆에 세워놓은 안내판에 있는 공사개요중에 이 공사는 여러분이 낸 세금 얼마를 쓰는 공사라고 해 놓았더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참으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었네!
세금으로 월급을 타는 사람들중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일수록 입만 열면 이만불시대를 이야기 하는데, 글쎄,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만불시대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외적인 숫자만큼 내적인 성숙도가 그에 따라야 할텐데……….지난달에 암스텔담 로얄콘서트헤보우 스트링콰르텟의 연주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1층 E열의 D열과 복도를 사이에 둔 맨 뒷좌석에서 들었을 때에 겪은 일인데, 왼쪽의 D열이 빈자리가 있으니 연주가 시작되자 마자 E열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가더군. 또, 이달초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의 ‘아이다’를 3층에서 관람하는데,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좌석 여기저기서 핸드폰의 화면들이 번쩍 번쩍 빛나더군. 음악회에 갈 때 마다 빼 놓지 않고 겪는 일중에 하나는, 적잖은 사람들이 연주가 막 시작 하자마자, 마치 영화관에 온 것 처럼, 자기 좌석을 찾느라고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며, 음료수를 갖고 들어오는 것도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라네.
종교의 존재이유 중에 하나가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사람마다, 가정마다, 나라마다 제각각 다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기초.기본의 부실이 아닌가 하네. 부부관계를 포함하여 세상살이란 인간관계의 주고.받음이 그 기본 뼈대라고 한다면, 우리네의 삶은, 교육을 그 탓으로 돌릴수 있다고도 하지만, 받는 것은 당연시 하는데 주는 것에는 참으로 吝嗇한 것이 현실이며, 또 우리 교육의 현주소가 아닌가 하네. 사실 우리는 언제, 인성교육은 차치 하고라도, 어른이 되는 교육이나 남과 더불어 함께 사는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특히 근래에 들어오면서 이런 한쪽으로의 치우침 현상이 더더욱 심해지지?
大學街의 교수사회에서 오랫동안 紛紛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의 ‘인문사회학’ 분야가 죽어간다는 것이고, 이 죽어가는 인문사회학분야를 어떻게 하면 되 살릴수 있는가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인문사회학이야 우리 삶의 기본이고, 생각의 바탕이고, 뼈대며, 모든 학문의 기초며 기본인데, 이런 기초.기본 학문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나라가 앞장서서 이 어려움을 풀어야 한다고 하네만……….
夏童 2007년 4월
- 이전글 59회 가족체육대회 개최 (제 3회) 07.04.23
- 다음글네티즌벙개 07.04.2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