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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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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윤기
작성일 2007-04-26 08:10
댓글 2건
조회 8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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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분홍빛 연산홍이 경포대 추녀끝 아래 한걸음쯤 비켜선채 찬 바람을 맞는다
4월의 햇살은 구름안에 있고 아득한 바다는 투명하게 조각나 버린 바람이 되어 불어 온다
경포대를 오르는 나즈막한 언덕길위에 떨어져 누운 벚꽃잎들이 비에 젖어 날지 못한다
차거운 겨울의 긴 날들을 건너 아직도 짙은 갈색으로 남아있는 낙엽들은 비탈진 언덕배기에서
밀여드는 봄을 맞아 마른 가지에 파릇한 움을 티우고
나를 스치고 지나간 시간들은 꺼꾸로 흘러들고 나를 스치고 갈 시간들 조차 여기에 고인다.
과거와 미래가 희석된 시간들이 구름이 되고 물결이 되는 곳에서
나는 돌이되고 갈대가 되고 만다
할말은 잊어 버렸고 할말도 없다
나에게 던져줄 네 이야기들만 기다리는 시간이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외설 따위에선 눈독드릴만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
외설은 승화되어도 외설일것만 같은 이 모호한 공간에서
그 어떤 고상함도 주장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만다
독수리의 배는 부풀어 팽팽하여도 아직도 차지 않는 포만감을 찾아 두눈을 번뜩인다.
먹이를 낚아챌 견고한 다리에는 핏발선 심줄이 선명하다
네 사냥은 잔인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네 삶인것을
연인들의 벤취에는 쓸쓸한 바람만 지나 간다
나는 홀로여서 차마 걸터앉지 못하고 만다
홀로라는 것은 바람보다 더 쓸쓸한 것이거니
그래, 나는 바람과 함께 떠나련다.
네가 있는 곳, 사랑하는 네가 있는 곳, 그곳으로 떠나련다
비록 사랑을 받기에는 글러버린 늙고 나약한 자이지만 너에게 줄만한 사랑은 순수하고 뜨거운 것이니
그 사랑 너에게 주려고 가련다
찬연한 그림, 화사하여 퇴색할 수 밖에 없는 빛깔
단조로운 문양들이 겹겹히 쌓여 오히려 수천수만의 빛깔로 살아나는 단청처럼
바보보다 더 단순한 내 사랑도 겹겹이 쌓이고 쌓여 곱디고운 빛깔이 있단다
그 사랑 너에게 주마
너에게 주려고 나는 이미 떠나 버렸다
네가 있을 곳에 네가 없구나
네 있는 곳이 어디며 그곳으로 가는 길이 어디메이드냐, 찾을 길이 없구나
네가 돌아올때까지 내안에 이 사랑은 어디에 두고가랴
네 작은 발을 딛던 섬돌위에 두고 가랴
네 하얀 손길이 다을 문고리에 걸어 놓으랴
그건 아니리
네가 돌아 온다고 하여도 그때는 한줌의 흙으로 남아 있으리니
차라리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보내련다
동편 바다에서 불어 오는 이 바람에 실어 보냄아
저녁노을 고운 곳에 행여 네가 있다면
그 노을속에서 불타 버리고 있는 내 사랑을 보리니
한 자리에 꽂쳐 한가지 표정으로 한곳만 바라보다 썪어가는 장승같은,
인생은 그런것이 아니리
내 멋에 겨워 살고 내 멋에 취해 세월을 삭히는 것
일점의 까만 표적을 향해 화살을 날려 명중 시키는 쾌감에 젖는 일이며
그리고 쉽게 식상하여 또 다른 표적을 찾아 떠나는 철부지 같은 놀이
사랑하고 배반하고 사랑받고 배반 당하는 반복을 즐기며 유치하게 사는 것
어떻게 살았든 너나 나나 결국은 흙으로 돌아 간다는 막연한 믿음 하나로
천겹 만겹으로 쌓인 허물들을 속죄해 버리는 얇팍한 위안을 가지고 사는 것
그렇게 세월을 삭히며 천만년을 살고자 하는 것
그것이 허망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향기롭고 그윽한 내 사랑을 깊게 채우고 그곳에 몸을 던져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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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西天님의 댓글
西天 작성일선배님의 삶이 묻어나는 사진과 글 참으로 좋습니다.
김윤기님의 댓글
김윤기 작성일
후배님의 글을 통하여 西天의 깊은 불심과 철학의 깊이를 익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만
반백의 희끗한 머리결 아래 피어나는 은은한 미소가 부처님 마음같은 덕망을 보게 되더군요
앞으로도 서천의 글의 통하여 많은 선,후배님들께 삶의 양식을 나누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내 좋을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이 제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거슬임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얇팍한 마음만 앞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