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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포연(砲煙)속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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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7-06-29 12:22
댓글 0건
조회 983회
본문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과 이보다는 16년후에 시작된 베트남전은 그 시간과 장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참혹함의 양상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모든것을 파괴하고 앗아가
버리는 전쟁-이 잔혹무비한 괴물은 그 흔적도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아 아직도 우리삶 곳곳
에 흉측한 상채기를 남겨 놓고 있다. 여기 그것들이 남겨놓은 저주받은 이미지를 어찌 잊을
수 있으련가
한국전쟁 - 흰구름 한가로운 8월의 여름하늘에 쌔까만 점 하나-
그아래 먼지처럼 피어오르는 자욱한 흰연기는 나른한 여름안개가 아니였다.
1950년8월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피아간에 생사를 건 혈투가 벌어졌다.
일명 쌕쌕이(세이버 전투기)라 부르는 미군 전투기들이 적의 진격로를 겨냥하여 폭격을
가하는 곳에 악마처럼 스멀스멀 엉겨든 포연(砲煙) 덩어리-
...그때 나는 다섯살이였고 심한 수두를 앓고 있었다.
.
월남전쟁 - 한국전쟁이 구식 무스탕 전투기들이 활약한 전투였다면 베트남전쟁은
건쉽,시누크,UH-1등 최신예 헬리콥터들의 전쟁이였다.
신속한 병력이동이 가능한 뛰어난 기동력에다 막강한 화력을 갗운 미육군헬기가 베트콩
은신처를 미니건으로 불리는 M-134기관포로 기총소사하는 광경은 마치 허리우드 영화를
보는것 같이 현란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스치고 지나간 정글 - 열대우림을 빽빽히 메웠던 야자수와 바나나나무들
은 꺾히고 뽑히고 어느 이름모를 병사가 흘린 핏자욱이 활엽수 넓은잎에 저주처럼 얼룩져
있었는데.
...그때 나는 스물넷이였고 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한국전쟁 - 전투가 치열했던 그해 7월 한 북한군 병사가 논두렁에 머리를 쳐박고
숨져있다. 저 병사도 그들의 부모에게는 금지옥엽 같은 자식이였을 터인데...
3년의 전쟁으로 북한군 38만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8만명이 사망했으며 부상당한 사람은
통계조차도 알수없다니...
무덤도 비목(碑木)도 없는 피멍든 산하에는 피아를 구분할수 없는 원혼들의 울음소리만
유유창천에 암연히 메아리 쳤다.
월남전쟁 - 1968년 케산 서부 689고지 능선에 반쯤 묻힌 미해병의 시신-
케산전투는 베트남전사상 가장 긴 시간 공방전을 벌린 피비린내 나는 혈투였다.
10여년에 걸친 베트남전에서 미군 6만명이 전사하고 30만명이 부상했으며 베트남군은
1백만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명이 부상했다.
우리 한국군도 7년동안 연35만명이 참전했는데 5,000여명의 전사자와 11,00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누구를 위한 싸움이였으며 무엇을 위한 죽음이였나.
속시원히 내게 말해 줄 이 아무도 없는가.
.
한국전쟁 - 인민군과 좌악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은 12만명에 이른다.
퇴긱하는 김일성의 지시로 학살당한 함흥 주민의 모습으로 저 동굴에서만 300여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정의의 신은 과연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때 무엇하고 있었는가?
ideology라는 가면은 두껍고 난측하다.
월남전쟁 - BBC방송의 에디 아담스 기자가 찍은 이 한장의 사진은 월남군
지휘관인 응억 로안장군이 베트콩 장교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즉석 사살하는 장면으로
전세계에 인권문제를 야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로안장군은 이 베트콩 장교가 방금 민간인 8명을 죽였으니 즉결처분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으나...
전쟁터에서의 진실은 알수 없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행위인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을 마음대로 죽일수있는 권리-누가 준 권능(權能)인가.
.
한국전쟁 - 누가 이 아이를 울게 만들었나?
전쟁의 피해는 어른들도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닥아온다.
얼마인지 헤아릴수조차 없는 아이들이 삽시간에 부모형제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였다.
저들이 혹여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들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머릿속을 어즈럽힌다.
그해 겨울 눈은 엄청시리 내렸다.
이웃 장작골로 피난을 갔지만 일반 가옥에는 머물수 없어 허리까지 쌓인 눈구덩이를
파고 에스키모 이글루 마냥 임시 거처를 만든 그곳에는 화로불을 피울수 없었다.
그러나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던 어린아이에게는 오히려 열기를 내려주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니...잔혹한 50년 겨울은 그렇게 갔고 나는 천행으로 수두바람(寒風氣)을 비껴
서 여린 생명을 건질수 있었다.
굶주림과 추위와 홀로된 무서움에 떨면서 빗발치는 포탄의 공포속에 버려진 저 아이
의 운명만을 탓해서야 살아남은 자들의 양심이 부끄럽지 않은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땅에 다시는 전쟁-그것은 일어나서는 않된다.
월남전쟁- 1972년 6월8일 베트남군 항공기가 실수로 짬방 마을에 네이팜탄을 떨어
뜨렸다.
온마을이 순식간에 불구덩이가 된 가운데 9살소녀 킴벅이 알몸으로 집을 뛰쳐 나오는 이
사진은 그해 프리쳐상을 수상했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전 세계에 알림으로서 반전
무드를 고무시켰다.
파월 다음해인 1970년 3월 어느날 -
투이호아 푸겟마을에 민사작전을 나갔다가 때마침 그곳에 정보수집차 나왔던 한 민사장교
를 만났다. 격전지를 구경하겠느냐는 말에 따라간 곳은 혼바산 능선 아래 1번국도옆에서
조금 떨어진 한곳(마을 이름은 기억나지 않음)이였는데 그때 내가 본 그곳은 전에도 지금
도 사람사는 마을이 아니였다.
군데군데 뿌리만 남아있는 선인장과 야자수 바나나나무들은 형체조차 알아볼수 없었고
가옥이 있었을법한 공터에는 우물이 었었던듯 겨우 흔적만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던 도로인듯 한 곳은 온통 새까만 흙먼지로 범벅되어 밟으면 푹석푹석 검붉
은 먼지만 날렸고 선인장과 해당화가 자라던곳인듯 했던 모래밭에는 걸레처럼 헤어진 전선
줄 잔해만이 어즈러이 널려 있었다.
멀리 혼바산 아래 짭짜이산 진지에서 사흘동안 베트콩이 쏜 포격으로 남은 흔적이라 했다.
조물주가 창제하고 인간이 덧붙어놓은 모든것들이 한순간에 초토화되어 사라지는 전쟁-
...킴벅은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다.
(2007년4월25일 호주 「안작데이 」행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한국군참전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4월25일을 안작(ANZAC)데이 로 제정 기념식을 펼치고 있다.
안작데이는 자유수호를 위하여 세계각처의 전쟁에서 희생된 뉴질랜드인과 호주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추모하기 위함인데 지금에 와서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및 중동전참전
용사들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것으로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행사에 채명신 시령관과 같이 참석했던 맹호 초대 재구부대장 박경석장군
의 행사참가기중 일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참전전우 한사람이 성난 표정으로 '우리 조국은 참전군인들을 학대하고 있다'고 분개
했다.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7.80대 노인에게 참전수당의 명분으로 월 7만원을 준다
니 이런 나라가 세계 어느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있느냐?고 항변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있던 베트남 참전전우가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이것좀 보시오.장군님! 제가
호주정부로부터 받는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혜택 명세표입니다.제가 호주 군대였습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죠. 그런데 호주에 이민 오니까 호주정부에서 함께 연합군으로 같은
목적 즉 자유민주를 위해 싸웠다고 등록하라고 해서 망설이다가 했더니 이런 혜택이 주어
졌습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뭡니까? 그럴진대 앞으로 국난이 닥치면 누가 조국을 위해
목슴을 바치겠습니까?"
- 혜 택-
1. 매월2주마다 1,100달러 월2.200달러 통장입금
2. 의려혜택:100%면제
3. 전기료.전화료:40%감면
4. 자동차등록세:전액면제
5. 가스요금:전액면제
6. 수도요금.오물수거세:전액면제
7. 의약구매시:액수에 관계없이 4달러20센트
8. 사망시:장례비2,000달러 위로금2,200달러 화장비 무료
9. 65세이상 정부주택 우선배정
10.사업체:감세혜택
나는 깜짝 놀랐다. 자국의 참전자에게 주는 혜택이라면 당연한데 호주국이 아닌 대한민국
군대에서 6.25전쟁.베트남 참전자에게까지도 똑같은 혜택이 주어 진다니...믿기지 않는 일
이였다. 그러나 사실이였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참전군인을 벌레보듯 하고 있어요.민주화운동,광주사태등의 참가자는
애국자가되고 참전자는 벌레입니다.벌레! "
.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도 이 행사에 참가 헌화했다)
얼마전 여권의 한 의원이 참전자의 국가유공자 처우에 관하여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장군
출신 대통령때 못해놓고 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냐고 항변했다 한다.
일리가 있는 푸념이다. 그러나 그 세 대통령이 이를 해결치 못한것은 자신들이 저즈른 원죄
(原罪)때문이다. 총칼로 국권탈취라는 멍에로 인하여 정책의 자유가 속박되었음으로 참전
군인의 우대라면, 저희들끼리 해 먹는다는 국민적 저항에 바로 부딪쳤을것이다.
김대중,김영삼 대통령도 정치군인 척결과 광주민주화 회복이라는 두 이슈가 그들을 짓눌렀
을 것이다. 결국 이 과제를 해결할수 있는 정권은 현정부 밖에 없을터인데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애국자에게 월7만원의 참전수당을 그것도 65세가 넘어야만 준다
면서 너무 많이 먹어 비만에 걸린 아이들에게는 월4만원씩 살빼는 보조금을 그것도 8월부터
당장 주겠다는 이 정부 위정자들의 의식행태를 보면서 오늘도 꽉막힌 앞길만 하염없이 바라
보는 우리 참전노병들의 가슴속이 숱덩이마냥 검게검게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디.
우리나라의 20대30대는 절반이상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한다.
다만 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5년전보다 배이상 높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외국에 있을때 전쟁이 나면 귀국하지않겠다'는 응답이 57%가 넘었다니 젊은 세대들이
비록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위험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신을
희생하여 보국하겠다는 조국관은 희박하다는 것을 여론조사는 보여준다(한국갤럽)
베트남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나로서는 다시는 이 지구상 어느곳에서라도 모든것을 말살하는
비참한 전쟁만은 없어야 된다는 바램을 6.25전쟁 57주년, 베트남종전 32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다시한번 조명해 보면서 ,
'이 몸을 다 바쳐 나라가 흥한다면 주검으로서 아~웃으며 꽃이 되리라'는 어느 군가가 홀연
떠오르는 가운데 호국의 달 6월을 누구보다 더한 아품속에 보낸다.
있을지언정 그 참혹함의 양상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모든것을 파괴하고 앗아가
버리는 전쟁-이 잔혹무비한 괴물은 그 흔적도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아 아직도 우리삶 곳곳
에 흉측한 상채기를 남겨 놓고 있다. 여기 그것들이 남겨놓은 저주받은 이미지를 어찌 잊을
수 있으련가
한국전쟁 - 흰구름 한가로운 8월의 여름하늘에 쌔까만 점 하나-
그아래 먼지처럼 피어오르는 자욱한 흰연기는 나른한 여름안개가 아니였다.
1950년8월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피아간에 생사를 건 혈투가 벌어졌다.
일명 쌕쌕이(세이버 전투기)라 부르는 미군 전투기들이 적의 진격로를 겨냥하여 폭격을
가하는 곳에 악마처럼 스멀스멀 엉겨든 포연(砲煙) 덩어리-
...그때 나는 다섯살이였고 심한 수두를 앓고 있었다.
.
월남전쟁 - 한국전쟁이 구식 무스탕 전투기들이 활약한 전투였다면 베트남전쟁은
건쉽,시누크,UH-1등 최신예 헬리콥터들의 전쟁이였다.
신속한 병력이동이 가능한 뛰어난 기동력에다 막강한 화력을 갗운 미육군헬기가 베트콩
은신처를 미니건으로 불리는 M-134기관포로 기총소사하는 광경은 마치 허리우드 영화를
보는것 같이 현란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스치고 지나간 정글 - 열대우림을 빽빽히 메웠던 야자수와 바나나나무들
은 꺾히고 뽑히고 어느 이름모를 병사가 흘린 핏자욱이 활엽수 넓은잎에 저주처럼 얼룩져
있었는데.
...그때 나는 스물넷이였고 심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한국전쟁 - 전투가 치열했던 그해 7월 한 북한군 병사가 논두렁에 머리를 쳐박고
숨져있다. 저 병사도 그들의 부모에게는 금지옥엽 같은 자식이였을 터인데...
3년의 전쟁으로 북한군 38만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8만명이 사망했으며 부상당한 사람은
통계조차도 알수없다니...
무덤도 비목(碑木)도 없는 피멍든 산하에는 피아를 구분할수 없는 원혼들의 울음소리만
유유창천에 암연히 메아리 쳤다.
월남전쟁 - 1968년 케산 서부 689고지 능선에 반쯤 묻힌 미해병의 시신-
케산전투는 베트남전사상 가장 긴 시간 공방전을 벌린 피비린내 나는 혈투였다.
10여년에 걸친 베트남전에서 미군 6만명이 전사하고 30만명이 부상했으며 베트남군은
1백만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명이 부상했다.
우리 한국군도 7년동안 연35만명이 참전했는데 5,000여명의 전사자와 11,000여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누구를 위한 싸움이였으며 무엇을 위한 죽음이였나.
속시원히 내게 말해 줄 이 아무도 없는가.
.
한국전쟁 - 인민군과 좌악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은 12만명에 이른다.
퇴긱하는 김일성의 지시로 학살당한 함흥 주민의 모습으로 저 동굴에서만 300여명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정의의 신은 과연 있었는가? 그렇다면 그때 무엇하고 있었는가?
ideology라는 가면은 두껍고 난측하다.
월남전쟁 - BBC방송의 에디 아담스 기자가 찍은 이 한장의 사진은 월남군
지휘관인 응억 로안장군이 베트콩 장교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즉석 사살하는 장면으로
전세계에 인권문제를 야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로안장군은 이 베트콩 장교가 방금 민간인 8명을 죽였으니 즉결처분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으나...
전쟁터에서의 진실은 알수 없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행위인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을 마음대로 죽일수있는 권리-누가 준 권능(權能)인가.
.
한국전쟁 - 누가 이 아이를 울게 만들었나?
전쟁의 피해는 어른들도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닥아온다.
얼마인지 헤아릴수조차 없는 아이들이 삽시간에 부모형제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였다.
저들이 혹여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들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머릿속을 어즈럽힌다.
그해 겨울 눈은 엄청시리 내렸다.
이웃 장작골로 피난을 갔지만 일반 가옥에는 머물수 없어 허리까지 쌓인 눈구덩이를
파고 에스키모 이글루 마냥 임시 거처를 만든 그곳에는 화로불을 피울수 없었다.
그러나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던 어린아이에게는 오히려 열기를 내려주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니...잔혹한 50년 겨울은 그렇게 갔고 나는 천행으로 수두바람(寒風氣)을 비껴
서 여린 생명을 건질수 있었다.
굶주림과 추위와 홀로된 무서움에 떨면서 빗발치는 포탄의 공포속에 버려진 저 아이
의 운명만을 탓해서야 살아남은 자들의 양심이 부끄럽지 않은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땅에 다시는 전쟁-그것은 일어나서는 않된다.
월남전쟁- 1972년 6월8일 베트남군 항공기가 실수로 짬방 마을에 네이팜탄을 떨어
뜨렸다.
온마을이 순식간에 불구덩이가 된 가운데 9살소녀 킴벅이 알몸으로 집을 뛰쳐 나오는 이
사진은 그해 프리쳐상을 수상했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다시금 전 세계에 알림으로서 반전
무드를 고무시켰다.
파월 다음해인 1970년 3월 어느날 -
투이호아 푸겟마을에 민사작전을 나갔다가 때마침 그곳에 정보수집차 나왔던 한 민사장교
를 만났다. 격전지를 구경하겠느냐는 말에 따라간 곳은 혼바산 능선 아래 1번국도옆에서
조금 떨어진 한곳(마을 이름은 기억나지 않음)이였는데 그때 내가 본 그곳은 전에도 지금
도 사람사는 마을이 아니였다.
군데군데 뿌리만 남아있는 선인장과 야자수 바나나나무들은 형체조차 알아볼수 없었고
가옥이 있었을법한 공터에는 우물이 었었던듯 겨우 흔적만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던 도로인듯 한 곳은 온통 새까만 흙먼지로 범벅되어 밟으면 푹석푹석 검붉
은 먼지만 날렸고 선인장과 해당화가 자라던곳인듯 했던 모래밭에는 걸레처럼 헤어진 전선
줄 잔해만이 어즈러이 널려 있었다.
멀리 혼바산 아래 짭짜이산 진지에서 사흘동안 베트콩이 쏜 포격으로 남은 흔적이라 했다.
조물주가 창제하고 인간이 덧붙어놓은 모든것들이 한순간에 초토화되어 사라지는 전쟁-
...킴벅은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다.
(2007년4월25일 호주 「안작데이 」행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한국군참전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매년 4월25일을 안작(ANZAC)데이 로 제정 기념식을 펼치고 있다.
안작데이는 자유수호를 위하여 세계각처의 전쟁에서 희생된 뉴질랜드인과 호주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추모하기 위함인데 지금에 와서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및 중동전참전
용사들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것으로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행사에 채명신 시령관과 같이 참석했던 맹호 초대 재구부대장 박경석장군
의 행사참가기중 일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참전전우 한사람이 성난 표정으로 '우리 조국은 참전군인들을 학대하고 있다'고 분개
했다.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7.80대 노인에게 참전수당의 명분으로 월 7만원을 준다
니 이런 나라가 세계 어느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있느냐?고 항변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 있던 베트남 참전전우가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더니"이것좀 보시오.장군님! 제가
호주정부로부터 받는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혜택 명세표입니다.제가 호주 군대였습니까?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죠. 그런데 호주에 이민 오니까 호주정부에서 함께 연합군으로 같은
목적 즉 자유민주를 위해 싸웠다고 등록하라고 해서 망설이다가 했더니 이런 혜택이 주어
졌습니다.그런데 우리나라는 뭡니까? 그럴진대 앞으로 국난이 닥치면 누가 조국을 위해
목슴을 바치겠습니까?"
- 혜 택-
1. 매월2주마다 1,100달러 월2.200달러 통장입금
2. 의려혜택:100%면제
3. 전기료.전화료:40%감면
4. 자동차등록세:전액면제
5. 가스요금:전액면제
6. 수도요금.오물수거세:전액면제
7. 의약구매시:액수에 관계없이 4달러20센트
8. 사망시:장례비2,000달러 위로금2,200달러 화장비 무료
9. 65세이상 정부주택 우선배정
10.사업체:감세혜택
나는 깜짝 놀랐다. 자국의 참전자에게 주는 혜택이라면 당연한데 호주국이 아닌 대한민국
군대에서 6.25전쟁.베트남 참전자에게까지도 똑같은 혜택이 주어 진다니...믿기지 않는 일
이였다. 그러나 사실이였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참전군인을 벌레보듯 하고 있어요.민주화운동,광주사태등의 참가자는
애국자가되고 참전자는 벌레입니다.벌레! "
.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도 이 행사에 참가 헌화했다)
얼마전 여권의 한 의원이 참전자의 국가유공자 처우에 관하여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장군
출신 대통령때 못해놓고 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냐고 항변했다 한다.
일리가 있는 푸념이다. 그러나 그 세 대통령이 이를 해결치 못한것은 자신들이 저즈른 원죄
(原罪)때문이다. 총칼로 국권탈취라는 멍에로 인하여 정책의 자유가 속박되었음으로 참전
군인의 우대라면, 저희들끼리 해 먹는다는 국민적 저항에 바로 부딪쳤을것이다.
김대중,김영삼 대통령도 정치군인 척결과 광주민주화 회복이라는 두 이슈가 그들을 짓눌렀
을 것이다. 결국 이 과제를 해결할수 있는 정권은 현정부 밖에 없을터인데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애국자에게 월7만원의 참전수당을 그것도 65세가 넘어야만 준다
면서 너무 많이 먹어 비만에 걸린 아이들에게는 월4만원씩 살빼는 보조금을 그것도 8월부터
당장 주겠다는 이 정부 위정자들의 의식행태를 보면서 오늘도 꽉막힌 앞길만 하염없이 바라
보는 우리 참전노병들의 가슴속이 숱덩이마냥 검게검게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디.
우리나라의 20대30대는 절반이상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한다.
다만 북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5년전보다 배이상 높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외국에 있을때 전쟁이 나면 귀국하지않겠다'는 응답이 57%가 넘었다니 젊은 세대들이
비록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위험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 자신을
희생하여 보국하겠다는 조국관은 희박하다는 것을 여론조사는 보여준다(한국갤럽)
베트남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나로서는 다시는 이 지구상 어느곳에서라도 모든것을 말살하는
비참한 전쟁만은 없어야 된다는 바램을 6.25전쟁 57주년, 베트남종전 32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다시한번 조명해 보면서 ,
'이 몸을 다 바쳐 나라가 흥한다면 주검으로서 아~웃으며 꽃이 되리라'는 어느 군가가 홀연
떠오르는 가운데 호국의 달 6월을 누구보다 더한 아품속에 보낸다.
- 이전글채워짐이 부족한 사람들,,,,,,,,,,,,,,,,,,,,,, 07.06.29
- 다음글내 힘들다 라는 말!!!! 0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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