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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여 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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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8-02-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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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6회
본문
維 歲次
戊子 二月 辛未朔 十日 庚辰 民草 逍遙 敢昭告于
.
당신은 기여히 가셨더이까
산천도 울고 초목도 떨던 그날
서기 이천팔년 이월 십일 오후 여덟시사십분
하늘은 울울했고 바람은 소소했더이다
육백년 세월의 유구한 숨결을 안고
이나라 수도 한 복판에 독야청청(獨夜靑靑) 지켜섰던
당신 님 숭례(崇禮)여
무엇을 지키려 자신을 불태웠더이까
어디하나 온전한데 없는 이 나라에
무슨 가르침 주려 그리 했더이까
그래도 내 조국이니 어찌 버릴손가 애국애족하라는 무언훈도(無言訓導)였더이까
제 배 채우는데 급급하여 백성을 외면하는 위정자들에게 내리는
살신경언(殺身警言) 이였더이까
.
오호라 통재(痛哉)여~
민족의 영욕을 묵묵히 지켜보며 이름없는 민초(民草)와 운명을 같이했던
당신 님 숭례여
그대 이땅에 세워질때
조선의 한양은 무악(武岳)과 인왕(仁王)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백악현무(白岳玄武),인왕백호(仁王白虎),낙산청룡(駱山靑龍)을
지리(地理)로 삼은후에
4문1루(四門一樓)을 세우고 시경(詩經)에서 그 아름다운 뜻을 취하여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오행(五行)에 배정하여 이름을 정하니
인(仁)은 동방이니 동대문(東大門)에 배속시켜 흥인지문(興仁之門)이 되고
의(義)는 서방이니 서대문(西大門)에 배속시켜 돈의문(敦義門)이 되고
예(禮)는 남방이니 남대문(南大門)에 배속시켜 숭례문(崇禮門)이 되고
지(智)는 북방이니 북대문(北大門)에 배속시켜 소지문(炤智門)이 되고
중앙은 신(信)이니 종로 한가운데 루(樓)를 세워 보신각(普信閣)으로 명한고로
이때가 태조7년으로 년대가 1398년이니 헤아려보면 그대 님의 보령(寶齡)
610세가 되더이다
그 긴긴 세월동안
만고풍상 모진 시련에도 그대 숭례의 우뚝함은 흔들리지 않았더이다
경복궁이 임란(壬亂)으로 송두리채 잿더미가 된후
273년을 호공(虎公)이 출몰하는 공궐(空闕)로 변했을 적에도
병자호란 삭풍이 강화까지 몰아칠 적에도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6.25의 화마속에서도 이웃 광화문은 무참히 파괴되었으나
홀로 원형이 훼손되지않았으니
그대 숭례야 말로 민족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기억하는
혼(魂)이요 얼굴이었더이다
양영(讓寧)이 편액 제자(題字)를 쓸제
종(縱)으로 휘지(揮之)한것은
과거 한성(漢城)출입은 인정(人定)에 문을 닫고 파루(罷漏)에 문을 열매
정문인 그대를 통과하지 못하고는 귀한 백성이 드나들수 없으므로
서서 맞이함이 禮에 합당하다 하여
숭례(崇禮)라는 두글자를 곧추 세워 썻다하니
그 깊은 가르침을 어찌 얕은 필설로 헤아리리
.
그러나
이제 당신은 없나이다
민족의 삶을 지켜보며 민족의 얼굴이 되었던 그 웅장하고 화려하던 당신은
이제 영영 사라지고 없나이다
차라리 외적(外敵)의 폭력으로 무너졌다면
국민의 적개심을 하나로 모아 대응 하련만은
내나라 내 백성의 개인적인 분풀이로 저리 되었다니
무너진 숭례문의 뒤편에 서서
반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들은 들으라
2년안에 200억으로 다시 복원하겠다고 자신하는 자들은 들으라
위층 대들보위 기둥에 얹혀있는 마룻보와 높은 기둥 고주(高柱)는
조선 태조 숭례문 창건당시의 600년 넘은 목재이고
대들보와 이를 받친 기둥들은 세종조때 사용한 560년된 것이며
서까레나 용마루등은 성종때 보수된 529년 넘은 것이고
좌우측 협문(狹門)은 고종때 지은 148년 된 것이라는데
너희 이를 어찌 복원할것이냐
더구나 그속에 녹아있는 선조의 600년 숨결은 어찌 다독일것이냐
50년 단청(丹靑)이야 어찌어찌 다시 칠해본다 할터이지만
무참히 짖꾸겨진 백성의 자존심은 또 어찌 휘광 낼것이냐
죽은자를 꽃단장하여 잘못을 감추려는 자들이여
오늘처럼 예의와 염치를 잃은적이 있었던가
오늘처럼 배금(拜金)과 탐관(探官)에 젖은적이 있었던가
오늘처럼 사치와 허영에 들뜬적이 있었던가
개인이나 국가나 필부나 지식인이나
한낱 민초 나부랑이나 구중궁궐 높으신 나랏님이나
하나같이 지켜야할 가치관(價値觀)을 허무는데 조금치도 망설임이 없었으니
무엇을 잘못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건지
근본조차 잊은지 오래였다
숭례는 그래서 자기몸을 불태웠다
자신을 희생하여 어리석은 민족을 일깨우려는
마지막 채찍이였다
철책과 천으로 가린다 하여
숭례의 절규가 삭으러 들겠는가
.
오호라 애재(哀哉)여~애재여~
당신 님의 성스러운 몸이 마지막 무너지던 익일 새벽 1시50분
겨우 다섯시간의 짧은 찰라였지만
그것은 오천년의 신성(神聖)이 사라져가는 억겁의
고통이였더이다
똑바로 보겠나이다
부서진 기왓장 하나 타다남은 서깨래 하나
심지어 재로 변한 흔적 하나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겠나이다
그래서
당신 님께서 남기신 살신지도의 가르침을
세세년년 각인하겠나이다
아
숭례문이시여
민족의 가슴속에
그대는
다시한번 성스러히
부활 하리다
追遠感時
不勝永募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饗
.
.
.
.
.
.
어제오후 퇴근길에 숭례문을 조문하러 갔습니다.
누군가 갖어놓은 수많은 국화더미에서 국민의 슬픔과 울분을 읽었습니다.
사방둘레를 철책으로 막아놓아 불타다 남은 1층 누각 꼭대기만 보였지만
내눈에는 엊그제까지 오색조명을 받아 휘황한 채색을 뽐내던 그 위용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어찌 나 뿐이였겠습니까?
많은 시민들이 퇴근길 발걸음을 멈추고 멍한 시선으로 자리를 뜨지 못하더군요.
오늘 매스컴에 보니 잔해를 가리는 철책을 투명자재로 바꾸어서 모두가 내부를
볼수 있도록 한답니다.
문화재청과 소방청,서울시와 중구청이 서로 잘잘못을 떠넘기며 발뺌하기에
혈안이 되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현정권과 차기정권의 책임공방까지 가세하여
이를 바라보는 민초들의 가슴에 다시한번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사필귀정일터이니 좀더 지켜볼 일이지요.
준비해 간 소주 석잔을 숭례문에게 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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