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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처럼 우리도 통곡의 벽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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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년철 작성일 2008-08-05 22:33 댓글 0건 조회 9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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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00여년전, 이스라엘의 패망과 더불어 유대민족은 세계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나라 없는 유랑민족이 되어 2000년 동안 민족의 한과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2차세계대전 중에는 인종 청소의 제물이 되어 개스실에서 죽어가야만 했다.

곡절끝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통곡의 벽 아래서
망국의 아픔과 지난 2000년간의 시련을 반성하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통곡의 벽이란 무었인가?
그것은 2000년전 로마제국에 의해 돌 위에 돌하나도 남기지않는 말살 정책에 의해
이스라엘은 철처하게 파괴 되었다. 결국 남아진것은 무너진 돌담의 일부가 유일한데
그것이 통곡의 벽이다.

2008년을 살아가는 우리 강농의 현주소는 어떤가 겸허하게 뒤돌아 보아야만 할때다.
8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은 옛 영화일뿐
우수인재 육성의 교육적 본질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것이다.
지난 이십여년간 모교의 학과가 폐과되고 있을때, 또는 모교를 지원하는 후배들의
질적 저하를 가슴아파 하면서,
문제 제기를 했던 동문들의 목소리가 있었는가를 반문하고 싶다.
교정에 가득찬 울창한 수목이 몇그루 베어지고,
이식되는 상황에는 수많은 동문들이 자기 목소리를 높여 가며 학교 행정을 질타하고 있다.
학교는 인재 육성을 근본으로하는 교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이 소실되어감을
방관하였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내가 심고 가꾼 나무가 잘려나가는 아픔은 목놓아 아파하면서도
학교가 죽어가는 현실에서는 어찌하여 목소리 한번 높이지 못했는가?

앞으로 강산이 몇번 바뀐 후
모교는 그렇게 잊혀지고 소멸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했다고 가정해 볼 경우
우리는 어느 고목을 붙들고 통곡할까?
누군가 옛 강농의 영화를 회상하여, 통곡의 고목이라 이름 붙인다면
그 나무를 붙들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려야만 그 아픈 상처를 달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잘려나가고 옮겨 심어진 나무의 아픈 상처에 관심을 갖는만큼
모교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교문이 어떻게 새로나고, 나무가 어떻게 잘려나갔는가를 논하기이전에
백년대계를 지향하는 강농인의 교육철학을 정립해야하지 않을까?
유대민족의 눈물을 타산지석으로 삼야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처럼 통곡의 벽을 원치 않는다.
지나간 80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도래하는 100년의 미래를 기약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강농인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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