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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관 개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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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솔올
작성일 2008-12-14 02:12
댓글 0건
조회 8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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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사료관 개관에 따른 건물신축을 둘러 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 본다
교장과 동문간에 의견을 달리하여 장기간 학교예산을 조기 집행 못하고 마찰을 가져 왔던 곳인가 하면
강릉농고가 공업계 학과 증설로 농공고가 되어 이곳에서 한밤이 깊도록 보충수업을 하고, 야간학습을 하여 공업계 학과에서
한해에 서울대공대,연세대 공대,아주대 공대등 서울시내를 중심한 대학에 비교적 많은 진학생을 배출했던 곳이다,
한때는 식품가공실이 있던 자리로 지하 농산물 발효실, 제과 제빵,통조림,실험실등이 있던 실습장이기도 했다,
또한 현 안계호 동문회장이 선생님으로 재직당시 교련실습장으로 쓰다가 리어커로 마사토를 운반하며 테니장으로 일구어 가꿔온 곳이기도 하며
나중엔 학교매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학교매점 역시 수익사업인 관계로 인해 학교와 동문회간에 그 운영권을 놓고 장기간 곤욕을 격었던 곳이다,
일부동문은 학교에서 운영권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도교육청에 이의를 내는가 하면, 동문회에선
동문회 자금 마련을 위해 동문회가 운영권을 갖고 동문회에서 관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문회와 200 여만원의 수의계약으로 운영되던 매점이 학교로 그운영권이 반환되면서 학교자체의 공개경쟁 입찰에 의해 20 배인 4000 여만원에 달하는 순수익금으로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쓸수있는 학교자체예산확보 과정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한땐 매점등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학교운영위원회 결재도장이 학교밖으로 나가 개인집에 가있는 관계로 학교예산집행에 어려움을 가져왔던 곳이기도 하다,
,
전임교장이 국회의원을 통해 국고예산을 마련했다고 인수 받아 쉬울줄 알았던 예산이 2003년 후임교장으로 인계받아 교육감과의 협의 과정에서 모든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추진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별도 국비지원예산이 안닌 강원도교육지원비에서 다른 학교와 같은 조건으로 나간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의 기본계획 내용은 보지 않고 말에 말로만 전해 오는 말에 확대가 컸다,
그 내용인 즉 사료관은 165m2의 소규모로 도서관과 음악실,식당이 각각 330m2로 중심이 되어 있어 사료관위주가 안닌 도서관과
식당,음악실 위주의 총1,386m2 에 18억 규모로 되어있었다,
강릉시내 다른학교와 마찬가지의 학생활동의 건축물로 기본설계 계획서에서도 식당,다목적실,도서관 위주이지 동문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대한 사료관 중심의 학생문화관이 아니었다,
2003,10.17일 동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료관을 만들기 위해 시설변경을 하여 전시실을 늘구고,음악실을 좁히며 일부 조정을 하면서
예산확보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당시 정영환동문회장,전길영전운영위원장,행정실장이 협조되어 춘천을 오르내리며,김진선도지사,한장수교육감,심기섭시장,권혁돈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모교출신 시의원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처음엔 우리학교만 받는 특별국고지원예산인줄 알았던 지원금이 다른학교에선 다른예산을 가미하여 식당,강당을 포함한 종합체육관을 건축했는가 하면,일부 학교에선 같은 예산을 조기집행으로 보다 큰결실을 가져온것이 부러운 때도 있었다,
우리학교에서 배정받은 총예산액은 강릉시내의 초,중,고 ,및 공립,사립학교에서도 도서관,식당,체육관,별실등의 각종 명목으로 배정받은 것이다,
동문들과의 의견차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동문들의 요구는 학교가 생각하고 계획하는것과 달리
사료관을 중심한 학생문화관을 논바닥에 500석 예식장 규모의 동문회관으로 하여
동문회 수익사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것이 였다,
대도시 명문대(연세대,서울대) 동문회관에 버금가는 수준의 500명 동시사용 가능한 식당등 수익사업으로 해야 한다고
강릉시내 다른 초,중,고 에서 같은 예산을 배정받아 체육관,강당,도서관,식당등 조기완공하는 것에 비해 동문회에서 논바닥에 단층으로 동문회 중심으로 짓고 나중에 그위에 동문회에서 건물을 올리겠다는 의견도 계재되는 가 하면
500 석 규모의 예식장으로 하여 동문회수익사업에 관한
동문여론조성,취재,(일부 협의에 참가한 동문회 핵심인물들의 명단도 공개등) 결과를 제시하며 학교와 마찰을 가져왔다,
돔문회를 배제하고 학교운영을 못한다,
학교장과 행정실장은 근무하다 가면 그만이지만 학교의 영원한 주인은 동문임을 강조하며 연일계속되는 동문홈피와 전화,
래방압력속에 시공은 점점 늦어져 갔다,
때론 밤늦게 까지 동문이사회에 학교장이 나가 이사들을 설득시키고
돔문들이 춘천에 있는 교육감한테 간다고하여 도교육청 교육감을 비롯한 실국장,과장,장학관들이 비상으로 대기하며
긴장하고 있었던 모습도 생각난다,
장기간의 건축시공이 미뤄지면서 예산규모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자재값은 오르고,
강릉시에서 한해 3억 지원예산이 해가 바꾸키면서 조례가 개정되어 우리학교가 첫케이스로
한해 3억지원예산에서 1억오천으로 줄어들면서 설계도와 자금규모가 줄어만 갔다,
그래도 그렇게도 마찰을 가져오던 것이 끝내는 동문회장을 비롯한 동문회 임원들이 나서서 일부동문들의 다른생각을 설득하기 시작하여
제때 발주를 못해 예산은 줄어들고, 건축비는 더 들게 되었지만 학교장과 호흡을 마춰 갔다는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행이 그바람에 학교장이 교육감에게 동문홈피에 연일계재되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에서 꺽구로 동문홈피 내용을 보낸온 적도 있음)
학생문화관,사료관건립에 관한 설명을 드리면서,동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무리하지만
논바닥에 종합실내체육관계획과 비닐하우스식당의 문제점 개선책으로 식당요구를 한결과 비상대기하고 있던 자리에서
긴급협의를 통해 도교육비 예산에서만도 790.9m2의 면적에 1,088,000천원 예산배정(2007년 건축) 서를 손에 들고와서 동문들에게 제시하고
그 날자로 학교장이 귀교하면서 단장으로 된 내용을 중심으로 공문접수를 시켜 다음 후임 교장인 심석보 교장에 의해
테니스장 자리인 학생문화관 앞에 식당을 건축하게 되었으며,
사료관이 포함된 학생문화관은,
이렇게 되어 원주에 있는 경원건축에 의해 2004년 10.11일 건축부지 지질조사을 한 결과 삽협인줄 알았던 곳에 논흙이 나옴으로 논바닥도 안닌데도 시간이 흐를 수록 줄어드러 15억정도의 축소된 예산에 부득불 파일을 박아 기초공사에 또한 많은 예산을 추가하여 오늘의 부지에 2005년 도서관,음악실,다용도실을 갖춘 학생문화관에 사료관을 건축하게 되었고
2008. 12.12일 오후 3시 개교80주년 행사를 겸한 사료관개관식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힘든 여건속에서 김동식교장선생님에 의해 어렵게 귀한 자료들을 발굴하여 빛나는 동문들의 발자취와 모교의 전 현.대사를 한 자리에서 볼수 있게 되어 반갑고 수고하신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과 협조하신 동문들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축하를 드리며
훗날 사연얽혔던 내용들도 전시하고퍼 책장에 묶어둔 자료들을 다시 펼쳐본다,
교장과 동문간에 의견을 달리하여 장기간 학교예산을 조기 집행 못하고 마찰을 가져 왔던 곳인가 하면
강릉농고가 공업계 학과 증설로 농공고가 되어 이곳에서 한밤이 깊도록 보충수업을 하고, 야간학습을 하여 공업계 학과에서
한해에 서울대공대,연세대 공대,아주대 공대등 서울시내를 중심한 대학에 비교적 많은 진학생을 배출했던 곳이다,
한때는 식품가공실이 있던 자리로 지하 농산물 발효실, 제과 제빵,통조림,실험실등이 있던 실습장이기도 했다,
또한 현 안계호 동문회장이 선생님으로 재직당시 교련실습장으로 쓰다가 리어커로 마사토를 운반하며 테니장으로 일구어 가꿔온 곳이기도 하며
나중엔 학교매점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학교매점 역시 수익사업인 관계로 인해 학교와 동문회간에 그 운영권을 놓고 장기간 곤욕을 격었던 곳이다,
일부동문은 학교에서 운영권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도교육청에 이의를 내는가 하면, 동문회에선
동문회 자금 마련을 위해 동문회가 운영권을 갖고 동문회에서 관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문회와 200 여만원의 수의계약으로 운영되던 매점이 학교로 그운영권이 반환되면서 학교자체의 공개경쟁 입찰에 의해 20 배인 4000 여만원에 달하는 순수익금으로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쓸수있는 학교자체예산확보 과정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한땐 매점등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학교운영위원회 결재도장이 학교밖으로 나가 개인집에 가있는 관계로 학교예산집행에 어려움을 가져왔던 곳이기도 하다,
,
전임교장이 국회의원을 통해 국고예산을 마련했다고 인수 받아 쉬울줄 알았던 예산이 2003년 후임교장으로 인계받아 교육감과의 협의 과정에서 모든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추진과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별도 국비지원예산이 안닌 강원도교육지원비에서 다른 학교와 같은 조건으로 나간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우리는 애초의 기본계획 내용은 보지 않고 말에 말로만 전해 오는 말에 확대가 컸다,
그 내용인 즉 사료관은 165m2의 소규모로 도서관과 음악실,식당이 각각 330m2로 중심이 되어 있어 사료관위주가 안닌 도서관과
식당,음악실 위주의 총1,386m2 에 18억 규모로 되어있었다,
강릉시내 다른학교와 마찬가지의 학생활동의 건축물로 기본설계 계획서에서도 식당,다목적실,도서관 위주이지 동문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대한 사료관 중심의 학생문화관이 아니었다,
2003,10.17일 동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료관을 만들기 위해 시설변경을 하여 전시실을 늘구고,음악실을 좁히며 일부 조정을 하면서
예산확보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당시 정영환동문회장,전길영전운영위원장,행정실장이 협조되어 춘천을 오르내리며,김진선도지사,한장수교육감,심기섭시장,권혁돈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모교출신 시의원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처음엔 우리학교만 받는 특별국고지원예산인줄 알았던 지원금이 다른학교에선 다른예산을 가미하여 식당,강당을 포함한 종합체육관을 건축했는가 하면,일부 학교에선 같은 예산을 조기집행으로 보다 큰결실을 가져온것이 부러운 때도 있었다,
우리학교에서 배정받은 총예산액은 강릉시내의 초,중,고 ,및 공립,사립학교에서도 도서관,식당,체육관,별실등의 각종 명목으로 배정받은 것이다,
동문들과의 의견차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동문들의 요구는 학교가 생각하고 계획하는것과 달리
사료관을 중심한 학생문화관을 논바닥에 500석 예식장 규모의 동문회관으로 하여
동문회 수익사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것이 였다,
대도시 명문대(연세대,서울대) 동문회관에 버금가는 수준의 500명 동시사용 가능한 식당등 수익사업으로 해야 한다고
강릉시내 다른 초,중,고 에서 같은 예산을 배정받아 체육관,강당,도서관,식당등 조기완공하는 것에 비해 동문회에서 논바닥에 단층으로 동문회 중심으로 짓고 나중에 그위에 동문회에서 건물을 올리겠다는 의견도 계재되는 가 하면
500 석 규모의 예식장으로 하여 동문회수익사업에 관한
동문여론조성,취재,(일부 협의에 참가한 동문회 핵심인물들의 명단도 공개등) 결과를 제시하며 학교와 마찰을 가져왔다,
돔문회를 배제하고 학교운영을 못한다,
학교장과 행정실장은 근무하다 가면 그만이지만 학교의 영원한 주인은 동문임을 강조하며 연일계속되는 동문홈피와 전화,
래방압력속에 시공은 점점 늦어져 갔다,
때론 밤늦게 까지 동문이사회에 학교장이 나가 이사들을 설득시키고
돔문들이 춘천에 있는 교육감한테 간다고하여 도교육청 교육감을 비롯한 실국장,과장,장학관들이 비상으로 대기하며
긴장하고 있었던 모습도 생각난다,
장기간의 건축시공이 미뤄지면서 예산규모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자재값은 오르고,
강릉시에서 한해 3억 지원예산이 해가 바꾸키면서 조례가 개정되어 우리학교가 첫케이스로
한해 3억지원예산에서 1억오천으로 줄어들면서 설계도와 자금규모가 줄어만 갔다,
그래도 그렇게도 마찰을 가져오던 것이 끝내는 동문회장을 비롯한 동문회 임원들이 나서서 일부동문들의 다른생각을 설득하기 시작하여
제때 발주를 못해 예산은 줄어들고, 건축비는 더 들게 되었지만 학교장과 호흡을 마춰 갔다는 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행이 그바람에 학교장이 교육감에게 동문홈피에 연일계재되는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에서 꺽구로 동문홈피 내용을 보낸온 적도 있음)
학생문화관,사료관건립에 관한 설명을 드리면서,동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무리하지만
논바닥에 종합실내체육관계획과 비닐하우스식당의 문제점 개선책으로 식당요구를 한결과 비상대기하고 있던 자리에서
긴급협의를 통해 도교육비 예산에서만도 790.9m2의 면적에 1,088,000천원 예산배정(2007년 건축) 서를 손에 들고와서 동문들에게 제시하고
그 날자로 학교장이 귀교하면서 단장으로 된 내용을 중심으로 공문접수를 시켜 다음 후임 교장인 심석보 교장에 의해
테니스장 자리인 학생문화관 앞에 식당을 건축하게 되었으며,
사료관이 포함된 학생문화관은,
이렇게 되어 원주에 있는 경원건축에 의해 2004년 10.11일 건축부지 지질조사을 한 결과 삽협인줄 알았던 곳에 논흙이 나옴으로 논바닥도 안닌데도 시간이 흐를 수록 줄어드러 15억정도의 축소된 예산에 부득불 파일을 박아 기초공사에 또한 많은 예산을 추가하여 오늘의 부지에 2005년 도서관,음악실,다용도실을 갖춘 학생문화관에 사료관을 건축하게 되었고
2008. 12.12일 오후 3시 개교80주년 행사를 겸한 사료관개관식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힘든 여건속에서 김동식교장선생님에 의해 어렵게 귀한 자료들을 발굴하여 빛나는 동문들의 발자취와 모교의 전 현.대사를 한 자리에서 볼수 있게 되어 반갑고 수고하신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과 협조하신 동문들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축하를 드리며
훗날 사연얽혔던 내용들도 전시하고퍼 책장에 묶어둔 자료들을 다시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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