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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육사 생도 2기 출신, 8순 최원규님의‘인생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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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李 相卿 작성일 2009-01-27 14:18 댓글 0건 조회 775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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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생도 2기 출신, 8순 최원규님의‘인생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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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온 최원규 님이 일기공책 57권을 펼쳐놓고 일기장에 적혀있는
6.25 전쟁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라고 시작되는 KBS TV의 VJ특공대(2008. 7. 15 방영)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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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0년 6월 1일, 태릉으로 입교
    “해원(훗날 아내)은 역 앞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보냈다.”

(2) 1951년 12월 15일, 전쟁터에서
    “죽은 인민군 수첩에 가족사진이... / 이런 비극 누가 저질렀는가?

(3) 2008년 6월 16일, 바람이 분다.
    “긴 팔 옷을 입어도 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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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1일, 어제 고향 청주를 떠나 태릉 육군사관학고 생도 2기로 입교했다.
청주역을 떠날 때 해원은 역 앞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떠나 보냈다. 그녀는 심상소학교
2학년때인 1938년 오창에서 2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급우였다.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한 나는 “인생 설계가 장황하게 설정된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더랬다...”
최원규(80)씨의 첫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일기에 나온 22세의 이해원씨는 지금 최씨와 50년 넘게 해로하고 있는 부인이다.
최씨는 이날 일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59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오고 있다.
 6.25전쟁 기간 전장(戰場)의 참호 속에서도 단 한 문장을 쓸지언정 빠트리지 않고 “전쟁일기”를
써왔다.
전쟁기간중의 일기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군용수첩 한권에 깨알같은 글씨로 썼고, 나머지 기간은
큰 사무용 일지 노트 한권에 1년치 일기를 썼다. 모두 57권의 일기장에는 최씨의 인생과 우리 현대사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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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사 “비운의 기수”로 6.25에 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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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발발 58주년을 1주일여 앞둔 17일 경기도 가평군 대곡리 자택에서 최씨는 6.25기간의
전쟁일기를 펼쳐보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1950년 6월 25DFL. 비가 내렸다. 오늘은 사관학교에 입교한 이래 첫 면회 날이다. 태릉 기차역전은
면회온 젊은 여인들이 각양각색 아름다운 파라솔로 뒤덮혔다. 언젠가는 내여인도 저 물결 속에
묻혀 면회를 오겠지..., 오후 5시, 우리 생도 1, 2기생은 부대편성을 하고 비가 내리기에 M1소총의
총구를 막고 RJrn로 대고 트럭에 올랐다. 의정부 가까이에서 수레에 가재도구를 잔득 싣고 남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을시년 스런 날씨 때문에 아래턱이 윗니와 맞부딪혀 다닥 다닥 소리가 났다.
(1950년 6월 25일의 일기 내용)

최씨는 육사생도 2기생으로 입교 했다.
그러나 입교 직후 전쟁이 발발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4개월만에 소대장으로 임관해 전투 현장에
투입했다.
정식으로 졸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육사 기수도 없다. 그래서 "비운의 기수“로 불린다.
그는 1950년 10월 9사단 29연대 1대대의 소대장으로 임관해, 충남 계룡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처음
투입됐고, 이후 백마고지 전투, 철원 전투 등에 참전했다.
손바닥만한 국방색 군용수첩이 그런 전투현장이 기록돼 있었다. 겉장은 떨어져 나가고 종이는 변색돼
곳곳에 얼룩이 져 있었다.
최씨는 “손을 덜덜 떨면서 참호 속에서 잠이 들때까지 쓰고 또 썼다.”고 말했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최씨 소속부대는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 남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던 중에 가까운
동기생을 잃었다. “동기생 이장은(배재중학교 출신) 공병 소대장이 이곳에서 교량폭파 임무 중 전사했다.
응원단장을 지낸 이 소위는 결혼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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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부문을 기사의 복사부분이 없어서 생략하였습니다.
자료를 좀더 찾은 후에 계속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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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1년 12월 15일 전쟁터에서
      죽은 인민군 수첩에 가족사진이...
      이런 비극 누가 저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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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들이 배고프고 추워서 햇볕을 쪼이려고 모여있다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한 장교의 바지는 빨간 줄로 장교복임을 구분하고 있다.
"그 장교의 주머니에서 수첩이 나왔는데 부인과 두 아이가 장교와 함께 다정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이런 비극 누가 저질렀는가? 동족끼리 전쟁을 하다니니!"

 ▶ 각종 영수증과 버스표 실물도 붙어
    최씨 일기장에는 각종 영수증과 버스표 실물도 붙어있다.
1950년 8월 10일 일기가 적힌 페이지에는 '아까마루(미국산 담배) 1박스 1불 지급완료'라고 적힌
간이 영수증이 붙어 있다.
  최씨는 친척 형이 면회를 와서 담배를 사주고 간 것이라며 "추석날 밤 동기생들과 보름달 아래
이 담배를 피우면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목이 터져라 불렀는데,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올라서
다들 물고 있던 담배가 젖도록 울었다"고 말했다.
1952년 2월 8일 일기에 적힌 곳에는 누렇게 변색된 2800환짜리 '서울 -- 청주133.1km 구간 기차표
한장이 붙어 있었다. 최씨가 전쟁 중 결혼을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갈 때 쓴 승차권이었다.
1환이 01원이므로 280원에 해당한다.
2006년 3월 2일자 일기에 붙어있는 서울 --- 청주간 고속버스 승차원의 가격은 5600원이었다.
그사이 교통비가 20배나 된 것이다.
  최씨는 1952년 6월 중위로 전역했다. 당시 처남에게 군복을 입혀 부대에 몰래 들어오게 한 것이
적발돼 전쟁 기간 중임에도 중도 전역했다. 전역 이후 그는 고향 청주로 내려가 청주전매청,
대한광업진흥공사 등에서 일하다 1974년 퇴직해 개인사업을 해왔다. 최근 가평으로 이사한 뒤로는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일도 그는 매일 '농사 일기'라는 이름으로 따로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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