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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전례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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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농공
작성일 2009-07-0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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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58회
본문
전국에 내노라는 학교치고 우리 모교 만큼 아름답고 울창한 수목을 자랑하는 학교는 없었으리라 본다.
긴 역사 만큼이나 크고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진 농공고의 울창한 수목은 우리만이 자랑할 수 있는 유일의 재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역민에게는 휴식과 녹음의 공간으로, 재학생들에게는 심신의 안정과 위안 그리고 청정한 공기를 공급해 주던 중요한 자연의 요소였다.
그리고 동문들에게는 옛날 학창시절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었다.
특히 우리 모교의 나무는 일반 조경업자들이 심어서 가꾼 것이 아닌 재직할 당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고 각별한 정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 모교의 수목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여오게 된 계기는 나무를 사랑하는 차원을 벗어나 신성시 한 덕분이라 생각된다.
80년 역사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나무에 손을 댄 사람이 없었기에 현재의 거목들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동문들이 느끼는 모교의 나무는 각별한 사연과 애환을 가지고 묵묵히 우리 를 지켜주고 있는 산 증인이자 역사인 것이었다.
특히 농공고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처음에는 상당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쌓인 관계로 그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과거에는 별로 중요시 되지 않았던 녹지 공간이 지금에 와서는 입암동에서 월대산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녹지 공간이 였었다.
그 좋던 나무들이 많이 사라졌다.
사라진 공간만큼 횡 하니 구멍이 뚫렸다.
하늘도 잘 보이고, 학교 구석구석도 잘 보이면서 통풍이 잘된다는 논리를 편 분도 계셨다고 한다.
혹자는 빽빽한 나무로 인하여 하늘의 햇볕 구경을 못했는데 너무나 시원하게 잘 정리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문들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뚫린 하늘이 시원하다고 말했던 주민들이나 동문님들, 나무가 사라진 지금 농공고에 다시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입암동의 허파 역할을 했던 그 좋던 수림대가 사라지고 하늘이 뻥 뚫린 공간이 과연 좋기만 한지를......
베어진 공간에 지금부터 나무를 심고 다시는 베어내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 앞으로 60-70년 정도 후이면 지금과 같은 숲으로 다시 형성되리라 본다.
그 기나긴 세월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지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선각자들도 나무를 옮기고도 싶었을 것이고 베고 싶은 유혹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세월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나무에 대해서만큼은 신성시 한 것이라 본다.
우리 지역에도 역사가 우리보다 더 깊은 학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학교에 가보면 변변한 수목하나 없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생색위주, 전시위주, 실적위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심는 사람 따로, 베는 사람 따로, 옮기는 사람 따로 있다보니 긴 역사에 비하여 성한 나무 하나 없는 학교로 된 것이다.
작금에 우리는 모교의 나무가 잘려나가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본다.
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잃었다면
모교의 나무는 이제 아무나 베어도 막을 명분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만이 가지고 있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전례가 사라진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학교 뒷산의 울창한 숲을 개발명목으로 제거하고, 교정의 히말라야시다를 건든다고 했을 때 막을 방법이 있을는지....
긴 역사 만큼이나 크고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진 농공고의 울창한 수목은 우리만이 자랑할 수 있는 유일의 재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역민에게는 휴식과 녹음의 공간으로, 재학생들에게는 심신의 안정과 위안 그리고 청정한 공기를 공급해 주던 중요한 자연의 요소였다.
그리고 동문들에게는 옛날 학창시절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 왔었다.
특히 우리 모교의 나무는 일반 조경업자들이 심어서 가꾼 것이 아닌 재직할 당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고 각별한 정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 모교의 수목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간직하여오게 된 계기는 나무를 사랑하는 차원을 벗어나 신성시 한 덕분이라 생각된다.
80년 역사에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나무에 손을 댄 사람이 없었기에 현재의 거목들이 존재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동문들이 느끼는 모교의 나무는 각별한 사연과 애환을 가지고 묵묵히 우리 를 지켜주고 있는 산 증인이자 역사인 것이었다.
특히 농공고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처음에는 상당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쌓인 관계로 그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과거에는 별로 중요시 되지 않았던 녹지 공간이 지금에 와서는 입암동에서 월대산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녹지 공간이 였었다.
그 좋던 나무들이 많이 사라졌다.
사라진 공간만큼 횡 하니 구멍이 뚫렸다.
하늘도 잘 보이고, 학교 구석구석도 잘 보이면서 통풍이 잘된다는 논리를 편 분도 계셨다고 한다.
혹자는 빽빽한 나무로 인하여 하늘의 햇볕 구경을 못했는데 너무나 시원하게 잘 정리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문들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뚫린 하늘이 시원하다고 말했던 주민들이나 동문님들, 나무가 사라진 지금 농공고에 다시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입암동의 허파 역할을 했던 그 좋던 수림대가 사라지고 하늘이 뻥 뚫린 공간이 과연 좋기만 한지를......
베어진 공간에 지금부터 나무를 심고 다시는 베어내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 앞으로 60-70년 정도 후이면 지금과 같은 숲으로 다시 형성되리라 본다.
그 기나긴 세월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지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선각자들도 나무를 옮기고도 싶었을 것이고 베고 싶은 유혹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세월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나무에 대해서만큼은 신성시 한 것이라 본다.
우리 지역에도 역사가 우리보다 더 깊은 학교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학교에 가보면 변변한 수목하나 없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생색위주, 전시위주, 실적위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심는 사람 따로, 베는 사람 따로, 옮기는 사람 따로 있다보니 긴 역사에 비하여 성한 나무 하나 없는 학교로 된 것이다.
작금에 우리는 모교의 나무가 잘려나가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본다.
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잃었다면
모교의 나무는 이제 아무나 베어도 막을 명분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만이 가지고 있던 귀중하고 아름다운 전례가 사라진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학교 뒷산의 울창한 숲을 개발명목으로 제거하고, 교정의 히말라야시다를 건든다고 했을 때 막을 방법이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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