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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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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학
작성일 2009-07-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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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5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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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텅 비워내 새 생명을 키우는 “고사목”
겉으로는 죽었지만 안으로는 살아 있다는 변증의 깨달음이었다. 단 한 톨의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고 자연에게 되돌리는 완벽한 순환진리의 일깨움이었다.
한 그루의 죽은 나무에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무 한그루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두해는 걸린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새 잎 돋아나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단풍든 뒤, 낙엽지기까지의 한 해 모습을 모두 보기 전에는 그 나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지 말아라. 게다가 나무는 명재고택의 배롱나무처럼 해걸이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분주한 일상에서 철을 놓치는 수도 있다. 결국 나무를 향해 오래도록 그리움을 쌓아두고, 그 그리움의 실마리를 붙들어 안고 다시 나무를 찾아 길을 떠나곤 한다. 그 길이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 몇 아름드리 전나무를 보기위해 월정사 입구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을 보기 위해 태백산으로, 청량산 청량정사 앞의 고사목을 보기위해 봉화로, 울창한 낙엽송 숲을 보기위해 장수로, 천연기념물 비자림을 보기위해 제주도로, 그 외 이름 있는 숲을 찾아 전국 방방곳곳으로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고사목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으면 애국가 음악 배경에 물속의 고사목이 등장할까 …… 봉화 청량정사 앞의 고사목에 대하여 몇 자 적는다.
이미 오래전에 나무로서의 수명을 다 한 나무이니, 한해 내내 찾아 봐야 별다른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하기 쉬운 느티나무 고사목이다. 고사목 바로 앞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어린 시절에 글공부 하던 서재, “청량정사” 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사목은 이미 오래전에 생명 활동을 마쳤다. 줄기의 색깔에도 이미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 돼 줄기는 까맣게 썩어 있었다. 썩은 나무 둥치 사이로 날아가 자리 잡은 어떤 식물의 씨앗은 나무줄기를 밑거름으로 새 생명을 키우고 있었으며, 줄기 틈새에 개미는 물론이고 작은 벌레들이 분주히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암컷의 환심을 불러내 생명을 퍼 뜨려야 했던 수컷 딱따구리를 위해서 나무는 공명이 큰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가 돼 주었다. 한 때는 토종벌이 나무둥치 안쪽에 벌집을 짓고 꿀을 저장하였다고도 한다. 고목나무는 그렇게 아무말없이 양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어 자기 안에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죽었지만 안으로는 살아 있다는 변증의 깨달음이었다. 단 한 톨의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고, 자연에 되돌리는 완벽한 순환진리의 일깨움이었다. 한 그루의 죽은 나무에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이후 나무는 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궁금하다. 나무가, 고목이, 그래도 살아 숨 쉬는 모습이 그립다.
고사목은 새 생명을 키우는 새로운 밑거름이다.
강릉 농공고는 이름에 걸맞게 종류별 고사목이 정말 많았다. 고사했다고 베어버린 옛날 체육관 앞의 월계수, 위험 하다고 베어버린 본부석 좌우의 살아 숨 쉬던 버드나무 두 그루, 관악 연주실 앞의 느티나무, 매점 옆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속이 비어있던 버드나무, 도서실 앞의 괴목들, 식당 앞의 도로가 좁다고 베어낸 “솔향 강릉”의 소나무, 교문 안 축구부 숙소 앞의 영동지방에서 한 그루뿐인 세 가닥 삼나무(대부분의 동문들은 모름), 도로를 넓히려고 운동장 동쪽으로 옮긴 고사해 가는 느티나무 두 그루, 너무 크다고 윗부분을 둥쳐버린 체육관 앞의 버즘나무, 그리고 자작나무들, 그뿐이랴, 교문 안쪽 좌우의 전나무와 울창한 두충나무. 잔디구장 옆의 편백림, 도로 넓힌다고 옮겨 심어 고사한 온실 옆의 벚나무들, 이 모든 나무들이 없어졌으니 새 생명의 밑거름은 무엇으로 충당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고목이 남아있기는 하다.
교장관사안의 은행나무, 본관 뒷편의 수양 벗나무와 향나무, 본관 앞의 수양벗나무, 관악연주실 앞의 느티나무, 전기동 앞의 버드나무, 씨름장 옆의 버드나무, 체육관 뒤의 본교 2인자 닥나무, 온실내의 본교 3인자 느릅나무, 본관 앞의 본교 제1인자 희말라야시다, 정원안의 금송과 섬잣나무,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무들...... 지도자가 또 바뀌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얼마 전 학교 홈피에 가관도 아닌 설전이 있었습니다.
행복농공님, 가자님, 방랑자님, 후배님, 모두 강농공을 거쳐 간 동문이기에 제 생각을 전합니다. 약 70년 전에 현 위치로 옮겼고, 그때의 사진을 보면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모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들과 재학생들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심고 가꾸었습니다. 저도 심었고(3년), 가꾸었고(5년), 또 가꾸었습니다.(7년)
(행복농공)∼∼∼(가자)∼∼∼(방랑자)∼∼∼(가자)∼∼∼(후배)
네 분, 정말 잘 생각하시고 표현 했습니다.
모교의 정원은 경제림이 아닙니다. 목재를 생산하는 숲이 아닙니다. 본교의 숲은 어떤 특정 한 분, 자기만의 생각으로 농업부 선생님들, 임업전공자가 있고, 조경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가 있으면서도 나무를 쓸 만하게 가꾸지 않았다고, 입 맛에 맞는 허울 좋은 조경위원들(나무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있음. 본교임업교사와 조경기사자격증 소지자 조규전 제외)을 앞세워 올바른 숲을 만들겠다고 마구 옮기고 베었습니다. 베었다기 보다는 싹쓸이 벌채를 하였지요. 모교의 숲은 보안림, 관광 자원림, 경계림, 지역주민과 학생들의 휴식처가 되는 휴양림입니다. 도시 번화가로 변하는 성덕동의 산소공급처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가자님”께서는 학교 환경이 60년이 앞당겨 졌다고 한 말씀 하셨는데, 진실인지 비아양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본인은 120년이 퇴보 되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 숲을 다시 만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방랑자님“의 의견 긍정적입니다. 산림청 지원사업인 숲 가꾸기에 본인이 재직 중 두 번 신청하였습니다만 강릉 농공고는 제외라는 답변만 받았고, 주말농장으로 이용하는 옛날 논에 도시 숲 조성사업을 하는 것 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지도자(교장)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7월 17일자 “동문님”의 글과 “농심거사님”의 글을 읽고 덧붙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저의 글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 모두 모교 졸업생 인 것 같습니다.
“동문님”의 글 내용은 어쩌면 앞의 “행복농공”님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동문님”은 2008년도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애처럽고 상심하여 몇 자 적다보니 땅내주고, 베어내고, 파내고, 교문 변경하고, 바꾸고, 베어내고 파낸 자리에 흉상 만들고, 또 흉상 만들면 교내 정원 한쪽 구석이, 너도나도 건의하여 감투 썼던 모든 사람들의 흉상으로만 채워 질것 같아 08년도에 일어났던 학교 모든 문제의 의문점부터 밝히고, 2차로 전 최용근 교장선생님의 흉상을 세우는 것이 옮은 일이 아닌가? 하여 올린글로 인정됩니다. 그러다 보니 실명으로 띄우지 못하고 필명으로 옮겼나 봅니다. 다음 “농심거사님“께서도 모교의 사랑과 모교 PR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을 전 동문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농심거사님”께서는 “동문님”에 대한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필명이 아닌 실명으로 올리라는 의견제안이 정상입니다. 전 최용근 교장님의 흉상건립제안이 재경동문 제안으로 상정된데 대한 답변 차원에서 댓글을 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동문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모교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매사를 풀어 나갔으면 하여 몇 자 적었습니다.
행복농공님, 가자님, 방랑자님, 후배님, 동문님, 농심거사님, 서로가 오해가 있었으면 모두 풀고 다함께 전진 합시다. 졸필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겉으로는 죽었지만 안으로는 살아 있다는 변증의 깨달음이었다. 단 한 톨의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고 자연에게 되돌리는 완벽한 순환진리의 일깨움이었다.
한 그루의 죽은 나무에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무 한그루를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두해는 걸린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새 잎 돋아나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단풍든 뒤, 낙엽지기까지의 한 해 모습을 모두 보기 전에는 그 나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지 말아라. 게다가 나무는 명재고택의 배롱나무처럼 해걸이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분주한 일상에서 철을 놓치는 수도 있다. 결국 나무를 향해 오래도록 그리움을 쌓아두고, 그 그리움의 실마리를 붙들어 안고 다시 나무를 찾아 길을 떠나곤 한다. 그 길이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다. 몇 아름드리 전나무를 보기위해 월정사 입구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을 보기 위해 태백산으로, 청량산 청량정사 앞의 고사목을 보기위해 봉화로, 울창한 낙엽송 숲을 보기위해 장수로, 천연기념물 비자림을 보기위해 제주도로, 그 외 이름 있는 숲을 찾아 전국 방방곳곳으로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고사목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으면 애국가 음악 배경에 물속의 고사목이 등장할까 …… 봉화 청량정사 앞의 고사목에 대하여 몇 자 적는다.
이미 오래전에 나무로서의 수명을 다 한 나무이니, 한해 내내 찾아 봐야 별다른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하기 쉬운 느티나무 고사목이다. 고사목 바로 앞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어린 시절에 글공부 하던 서재, “청량정사” 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사목은 이미 오래전에 생명 활동을 마쳤다. 줄기의 색깔에도 이미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지 오래 돼 줄기는 까맣게 썩어 있었다. 썩은 나무 둥치 사이로 날아가 자리 잡은 어떤 식물의 씨앗은 나무줄기를 밑거름으로 새 생명을 키우고 있었으며, 줄기 틈새에 개미는 물론이고 작은 벌레들이 분주히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암컷의 환심을 불러내 생명을 퍼 뜨려야 했던 수컷 딱따구리를 위해서 나무는 공명이 큰 세상에서 가장 큰 악기가 돼 주었다. 한 때는 토종벌이 나무둥치 안쪽에 벌집을 짓고 꿀을 저장하였다고도 한다. 고목나무는 그렇게 아무말없이 양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어 자기 안에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죽었지만 안으로는 살아 있다는 변증의 깨달음이었다. 단 한 톨의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고, 자연에 되돌리는 완벽한 순환진리의 일깨움이었다. 한 그루의 죽은 나무에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그리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이후 나무는 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궁금하다. 나무가, 고목이, 그래도 살아 숨 쉬는 모습이 그립다.
고사목은 새 생명을 키우는 새로운 밑거름이다.
강릉 농공고는 이름에 걸맞게 종류별 고사목이 정말 많았다. 고사했다고 베어버린 옛날 체육관 앞의 월계수, 위험 하다고 베어버린 본부석 좌우의 살아 숨 쉬던 버드나무 두 그루, 관악 연주실 앞의 느티나무, 매점 옆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속이 비어있던 버드나무, 도서실 앞의 괴목들, 식당 앞의 도로가 좁다고 베어낸 “솔향 강릉”의 소나무, 교문 안 축구부 숙소 앞의 영동지방에서 한 그루뿐인 세 가닥 삼나무(대부분의 동문들은 모름), 도로를 넓히려고 운동장 동쪽으로 옮긴 고사해 가는 느티나무 두 그루, 너무 크다고 윗부분을 둥쳐버린 체육관 앞의 버즘나무, 그리고 자작나무들, 그뿐이랴, 교문 안쪽 좌우의 전나무와 울창한 두충나무. 잔디구장 옆의 편백림, 도로 넓힌다고 옮겨 심어 고사한 온실 옆의 벚나무들, 이 모든 나무들이 없어졌으니 새 생명의 밑거름은 무엇으로 충당할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고목이 남아있기는 하다.
교장관사안의 은행나무, 본관 뒷편의 수양 벗나무와 향나무, 본관 앞의 수양벗나무, 관악연주실 앞의 느티나무, 전기동 앞의 버드나무, 씨름장 옆의 버드나무, 체육관 뒤의 본교 2인자 닥나무, 온실내의 본교 3인자 느릅나무, 본관 앞의 본교 제1인자 희말라야시다, 정원안의 금송과 섬잣나무, 그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나무들...... 지도자가 또 바뀌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얼마 전 학교 홈피에 가관도 아닌 설전이 있었습니다.
행복농공님, 가자님, 방랑자님, 후배님, 모두 강농공을 거쳐 간 동문이기에 제 생각을 전합니다. 약 70년 전에 현 위치로 옮겼고, 그때의 사진을 보면 허허 벌판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모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들과 재학생들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심고 가꾸었습니다. 저도 심었고(3년), 가꾸었고(5년), 또 가꾸었습니다.(7년)
(행복농공)∼∼∼(가자)∼∼∼(방랑자)∼∼∼(가자)∼∼∼(후배)
네 분, 정말 잘 생각하시고 표현 했습니다.
모교의 정원은 경제림이 아닙니다. 목재를 생산하는 숲이 아닙니다. 본교의 숲은 어떤 특정 한 분, 자기만의 생각으로 농업부 선생님들, 임업전공자가 있고, 조경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가 있으면서도 나무를 쓸 만하게 가꾸지 않았다고, 입 맛에 맞는 허울 좋은 조경위원들(나무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있음. 본교임업교사와 조경기사자격증 소지자 조규전 제외)을 앞세워 올바른 숲을 만들겠다고 마구 옮기고 베었습니다. 베었다기 보다는 싹쓸이 벌채를 하였지요. 모교의 숲은 보안림, 관광 자원림, 경계림, 지역주민과 학생들의 휴식처가 되는 휴양림입니다. 도시 번화가로 변하는 성덕동의 산소공급처입니다.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가자님”께서는 학교 환경이 60년이 앞당겨 졌다고 한 말씀 하셨는데, 진실인지 비아양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본인은 120년이 퇴보 되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 숲을 다시 만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방랑자님“의 의견 긍정적입니다. 산림청 지원사업인 숲 가꾸기에 본인이 재직 중 두 번 신청하였습니다만 강릉 농공고는 제외라는 답변만 받았고, 주말농장으로 이용하는 옛날 논에 도시 숲 조성사업을 하는 것 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지도자(교장)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7월 17일자 “동문님”의 글과 “농심거사님”의 글을 읽고 덧붙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저의 글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 모두 모교 졸업생 인 것 같습니다.
“동문님”의 글 내용은 어쩌면 앞의 “행복농공”님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동문님”은 2008년도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애처럽고 상심하여 몇 자 적다보니 땅내주고, 베어내고, 파내고, 교문 변경하고, 바꾸고, 베어내고 파낸 자리에 흉상 만들고, 또 흉상 만들면 교내 정원 한쪽 구석이, 너도나도 건의하여 감투 썼던 모든 사람들의 흉상으로만 채워 질것 같아 08년도에 일어났던 학교 모든 문제의 의문점부터 밝히고, 2차로 전 최용근 교장선생님의 흉상을 세우는 것이 옮은 일이 아닌가? 하여 올린글로 인정됩니다. 그러다 보니 실명으로 띄우지 못하고 필명으로 옮겼나 봅니다. 다음 “농심거사님“께서도 모교의 사랑과 모교 PR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을 전 동문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농심거사님”께서는 “동문님”에 대한 의견을 인정하면서도 필명이 아닌 실명으로 올리라는 의견제안이 정상입니다. 전 최용근 교장님의 흉상건립제안이 재경동문 제안으로 상정된데 대한 답변 차원에서 댓글을 단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동문이기에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모교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매사를 풀어 나갔으면 하여 몇 자 적었습니다.
행복농공님, 가자님, 방랑자님, 후배님, 동문님, 농심거사님, 서로가 오해가 있었으면 모두 풀고 다함께 전진 합시다. 졸필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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