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곡수다연(曲水茶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소요거사
작성일 2009-09-17 11:02
댓글 0건
조회 999회
본문
중당(中堂)의 한가운데 세월의 얼룩이 갈래갈래 주름잡혀 있는 묵향목의 다상(茶床)이
언제나 다름없는 모양 그대로 있었다.
늦여름 햇살에 계곡물은 투명한데 초당의 기둥사이로 엿보니 작은 공터에는 무성한 들꽃
이 가득하고 희미한 향기 사이로 색색의 호접(蝴蝶)이 분주하다.
문득 보니 오래된 기왓장과 돌담위에 더벅머리로 앉은 푸른 이끼와 어깨를 맞대은 뱀딸기
넝굴은 몹시 예뻐서 혹여 나그네의 흘깃거릴 시선이 자못 불안스럽다.
봄과 여름내 날라든 송화가루가 뽀얗게 앉은 다조(茶竈):차부뚜막)를 깨끗이 딲고
화로를 얹은후 탕관(湯管)과 다관(茶管:차우리개),숙우(熟盂):물식히는 그릇)를 가즈런
히 그 옆에 놓았다.
다산(茶山=정약용)은 처음 그대로의 자세로 꼼짝도 않고 앞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시킨채
앉아 있었다. 조심스럽게 닥아가서 물었다.
"무슨 차를 준비할까요?"
아까부터 기통(棋桶)에서 바둑돌을 절그렁 거리며 무료하게 앉아있던 초의(艸衣=장희순)
가 돌연 낭낭한 음성으로 동다송(東茶頌)을 읊조린다.
「一傾玉花風生夜 옥화한잔 기울리니 겨드랑에 바람일어
身輕己涉上淸境 몸가벼워 하마 벌써 맑은곳에 올랐네...」
구석에서 서첩을 뒤적이던 추사(秋史=김정희)가 얼른 무릎을 당겨 앉았다.
"옥화 운운하는 걸 보니 중부(中孚=초의의 字)형은 여전히 녹차(錄茶) 예찬론자 구먼"
초의가 정색하며 말했다.
"그럼 완당(阮堂=추사의 字)형은 녹차보다 더 좋은 차가 있다는 말인가?"
추사가 빙글빙글 웃었다.
"그보다 좋은 차야 쌧고 쌧지. 고래로 명차(名茶)들은 중국에서 많이 나왔거든.
내 예를 들어 봄세. 우선 서호 용정차(龍井茶)는 신성한 용이 살고 있는 우물물로 끓였으
니 향기는 난(蘭)과 같고 모양의 아름다움은 서시(西施)와 같다고 하네.
동정의 벽라춘(碧螺春)은 또 어떻고.
짙은 그 향기가 천리를 휘감고 비취빛 영롱함은 벽옥과 같아서 청(靑)의 강희 황제가 평생
곁에 두고 즐겼다는 게야. 그리고...."
초의가 애원하듯 다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동다기(東茶記)에서 아침이슬을 양분
으로 먹고 밤정기를 맥으로 받아 드리는 녹차만큼 귀품인
것은 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다산도 재미있다는듯 싱긋이 웃었다.
"자네들은 나이도 같으면서 왜 맨날 다투기만 하는가.
저기 얌전히 앉아있는 소치(小癡=허유)를 좀 본받게 허허허"
소치가 얼른 무릎을 꿇고 손사레를 친다.
"당치도 않습니다. 초의선사님과 추사선생님은 제 스승과
같으신 분인데..."
다산이 자애로운 눈으로 소치를 바라본다.
"그렇지,자네의 만산묘옥도(晩山苗屋圖) 일폭은 거침없는 산수(山水)의 흐름에서 여유로움
을 알게 해 주고 저무는 묘옥지붕의 그림자에서 인생의 겸손을 나타내니 과히 시(詩),서(書)
, 화(畵) 삼절(三絶)의 명성이 헛되지 않지"
소치가 다시 무릎을 고쳐 앉았다.
"추사선생님은 저의 남종(南宗) 예술세계를 이룩해 주셨고 초의선사님은 화엄(華嚴)의 길
을 잡아 인생의 담적(澹寂)을 심어주셨으니 두분 아니면 오늘의 제가 어찌 있었겠습니까?"
이때 초의가 그제야 생각났다는듯 다산을 돌아본다.
"스승님! 아까부터 차를 골라 달라고 저렇게 서 있는데요"
"아~ 그렇군. 어디 자네가 다성(茶聖)이니 선택해 보게"
추사가 얼른 나선다.
"제가 고르겠습니다. 저 친구는 녹차를 고를께 뻔하니 이번에는 오랫만의「곡수다연(曲水
茶宴)」이라 시화(詩畵)도 논하는 자리도 되니 명인 백거이(白居而)가 여산에서 재배했다
는 운무차(雲霧茶)로 하시지요"
다호(茶壺:차통)에서 찻잎을 조금 덜어 탕관에 넣고 화후(火候)를 살핀다.
처음에는 센불(武火)에서 시작하여 찻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한불(文火)로 조정해서 노수
(老水=과하게 끓인 찻물)가 되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렸다.
향긋하고 은은한 다향이 회선루(會仙樓)를 감싼다.
다상에 놓인 모락모락 김 서리는 찻종(茶鐘)을 들어 음미
하던 추사가 초의를 돌아보았다.
"중부형의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은 차로서 법희선열
(法喜禪悅)을 맛보니 곧 '다'와 '선'의 삼매(三昧)가 아니
겠는가"
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悅)이란 곧 깨달음이지. 부처의 말씀에 '해탈의 길은
스스로 정한다' 했으니 나는 차로서그 길을 선택 했음이야"
다산이 반쯤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뜰아래 공수(恭手)하고 서있는 나를 바라다 보았다.
"후학은 깨달음의 참길이 어느곳에 있다고 생각하는고?"
급짝스러운 물음에 당황하여 얼결에 답했다.
"우둔한 제자의 생각으로는 깨달음의 길이란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산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마음은 어디있고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그길을 찾는가?"
대답을 못하자 초의가 중당 좌편에 걸려있는 족자 하나를 가르켰다.
"저것이 무슨 그림인지 아는가?"
"예! 세한도(歲寒圖)로 추사선생님의 작품이 아닙니까?"
"그래! 저 그림은 여기 추사가 유배시 그린 것인데 소나무와 잣나무를 사람의 인품에 비유한
것이야. 형태의 요점만을 간추렸으니 한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정신이 필선에 그
대로 나타나 있지.
깨달음의 길이란 저 그림속 황량한 들판에 덜렁 서있는 집한 채와 나무 세그루, 그리고
화폭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여백처럼 모든 군더더기를 떨쳐버린 무한한 정신세계의 추구
이니 곧 선(禪)의 경지를 말함일세"
추사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우리보다는 근 200년이나 후대사람이니 많은 사고의 차이가 있을게야.
허나, 예(藝)의 깨달음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일세.
대상의 형상이 아닌 정신의 형상화로 필선(筆線)이나 조형(造形)등의 꾸밈은 절제되고
단순하면서도 표현할수 있는 모든 대상을 그려내는 중화미(中和美)가 추구되는 소치의
기법이 후세에 소위 남화(南畵)의 종(宗)으로 추앙 받는것도 그를 말해 줌이지"
소치가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초의선사님의 차에 대한 선다일여(禪茶一如)도 일개 차맛의 고요함과 깊음
의 어울림이 종래는 깨달음의 시원(始原)이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다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 옳은 말아야. 차를 기르고, 찻잎을 따고, 찻물을 우려내고, 그 맛에 깊히 빠지는 일련의
다도(茶道)가 곧 선의 수행과도 일맥하니 바로 견성(見性)의 한 방법인 게지.
물론 뼈를 깎는 고행이 동반되어야 겠지만"
" 그것이 바로 스승님의 복사뼈에 세번 구멍이 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는 '과골
삼천(蜾骨三穿)' 의 가르침이지요"
초의가 다이(茶匜:찻주전자)를 기울려 남은 차를 다종에 따르더니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후학의 정성으로 오늘 맛있는 차를 대접 받았네.
이 마지막 찻물은 귀한 손님께 준다는 다법(茶法)을 아시는가?"
가장 깊고 맑기 때문이야, 하하하"
중당의 처맛자락에 은은한 붉은 빛이 서린다.
어느새 저녁 노을이 산허리를 지나 여기 회선루까지 밀려 든
것이다.
다산은 기둥에 기대세워 놓았던 청려장(靑藜杖)을 더듬어 잡
고는 느린 걸음으로 섬돌밑으로 내려섰다.
초의가 얼른 부축하자 소매를 떨치며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오랫만에 그대들과 다연(茶宴)을 벌리니 인간세상의 옛 즐
거움을 다시 느꼈네"
그리고는 휘적휘적 들꽃이 무성한 풀길로 걸음을 옮겼다.
추사와 초의가 그 뒤를 향하여 길게 읍 했다.
스스스 솔가지 부딪치는 소리따라 청아한 시 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月朗金風夜 달 밝고 맑은 바람 부는 이 밤에
天空玉露秋 하늘은 비어서 옥로같은 가을일세
遇成文茶會 우연히 시와 차의 자리 함께 이루니
好是紅光樓 노을 붉은 정자가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
- 이전글미즈뜰의 부활을 꿈꾸며 09.09.19
- 다음글9월 13일 낮, 강릉해양청소년 수련장에서의 숨은 비화 공개 09.09.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