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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명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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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명한 판단
“이방원의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의 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려 말, 나라가 망쪼가 들다보니 하는 일 마다 악재가 돋는다.
당시에 수구세력과 신진사대부가 갈라지면서 고려는 격량속으로 들어간다.
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닐진대, 현실 속에 들어오게 된다.
당시에 수구세력이었던 최영장군과 신진세력이었던 이성계가 사사건건 붙는다.
이성계에게 요동정벌을 명령한 수구세력에 반기를 들고 압록강 근처에 있는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렸다.
결국, 확실한 반기를 든 것이다.
물론 위화도의 회군에는 피치 못할 이유를 들었지만 그것은 하나의 핑계에 불과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기점으로 고려는 급격한 격랑에 들어가면서 막을 내렸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세계가 열인 것이다.
고려시대의 병폐를 단절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노라고 기치를 걸었던 신진세력에게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하나 해결하지 않고는 새 세상을 열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목 주 하나가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과 당시 수구세력의 정신적 중심인물이었던 정몽주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물론 힘의 우위에 있던 이성계 측의 승리가 있었지만 고려의 충절과 기개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고려말이 흐리멍텅 했다 하여도 올곧은 정신만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본다.
고려 말에 충절을 대변해 주는 사람인 동시에 그가 남긴 단심가는 후세에 많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정권이 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바꿔타는 현상을 보게 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그런 심보를 가진 사람이라 보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통상적으로 ‘철새’라로 칭하기도 한다.
친정에서 키워준 공덕을 헌신짝처럼 차 버리고 둥지를 떠나는 ‘배신자나 변절자’도 정권 말엽에 나오는 현상이라 본다.
요즘이 바로 현 정권의 말엽으로 가고 있다.
철새에서 비롯하여 배신자와 변절자도 자기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 걸고 자기합리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에 박수를 치는 백성들도 상당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행동과 생각의 자유는 있다고 본다.
예전 같으면 역적 같은 행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세상이 변하다보니 그런 사람들에게도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내는 세상이 돼 버렸다.
이런 변절자는 배신자가 목적달성을 한다면 야욕을 가진 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영달에 초점을 두고 일하는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 없을 것이다.
탕평책이라는 좋은 제도도 이런 부류의 배신자나 변절자가 자꾸 나오는 한 점점 사라지리라 본다.
주인을 무는 개는 언젠가 남도 물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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