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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및 각종 사고 예방과 불가피한 발생 시 효율적인 수습 모색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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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문환 작성일 2014-06-26 17:44 댓글 0건 조회 1,6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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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45기 김문환입니다.
다름 아니고 재난. 재해 및 각종 사고 예방과 불가피한 발생 시 효율적인 수습을 위해서동문 및 모교 교사 학생 각 가정과 거주 지역 반장님에게 전달해서 반원 각 가정에 전달되게 해서 유사한 사고(7월에 발생된 각종 사고 사례) 예방과 불가피한 사고 발생 시 효율적인 수습이 될 수 있게 전달하면 좋겠습니다.전국으로 시행하려하는데 강릉 중앙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 준비하여 학생들과 더불어 전국에 확신 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또 당한다, 상기하자 세월호!"(설정배경 마지마 별첨3 참조)

아래 첨부된 내용들은 과거에 발생된 대형 사고들 중 7월에 발생된 사고들입니다.

그 때 사고 원인을 보시고 사전에 예방 할 수 있었던 것들은 주의하여 유사한 사고들이 다시 발생되지 않게함께 노력해서 불행한 일을 또 당하지 않게 주의 합시다.

1>각자 개인이 주의 할 것은 각자 주의 합시다.

2>관리. 감독해야 할 부서에서는 알아서 잘 할 것만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관리. 감독부에서 해당지역에 유사한 사고가 발생될 위험지역들을 모두 명확하게 파악 할 수 없기(인사이동 등 기타 이유)에 해당지역 주민들이 알고 있는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메일이나 문서(근거를 남겨 두기 위해서)로 주의 및 예방 조치, 나아가서 불가피하게 유사한

사고 발생 시 보다 효율적인 수습방안 유익한 지혜들을 제공합시다.

3>요청한 사항들의 실천여.부를 지속적으로 지켜봅시다.

4>개인의 요청만으로 개선이 지연되거나 방관되고 있는 경우는 연대(신청처;

kmh54049@naver.com)하여 개선을 요청함으로 적극적인 담당자들의 보람된 업무 수행을 하게 지원되는 환경이 되게 합시다.

별첨;1

제목:7월 재난. 재해사고 발생 사례

1)2010년7월3일; 인천대교 추락사고; 14명 사망 10중상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B2%9C%EB%8C%80%EA%B5%90#.EC.82.AC.EA.B1.B4_.EB.B0.8F_.EC.82.AC.EA.B3.A0

2)2011년 7월 4일;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사건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10705_0004781728

3)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박왕자氏) 피격사건

http://ko.wikipedia.org/wiki/%EA%B8%88%EA%B0%95%EC%82%B0_%EA%B4%80%EA%B4%91%EA%B0%9D_%ED%94%BC%EA%B2%A9_%EC%82%AC%EB%A7%9D_%EC%82%AC%EA%B1%B4

4)1959년 7월17일 부산 공설운동장 참사 / 사망 67

http://www.ganabook.co.kr/module/book/book_view.php?book_no=56126

5)2013년7월18일;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학생들 5명 실종 사고.

6)1993 7.26. 아시아나 B737-500 공항 접근중 전남 해남군 야산에 추락.66명 사망,44명부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30727005700117

7)1989.7.27 대한항공DC10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착륙중 지상충돌 80명사망130명부상

http://blog.naver.com/koshablog?Redirect=Log&logNo=10023214251

8>1996년 7월27일-[1996년]집중호우로 군부대 매몰

http://blog.naver.com/tryxtry?Redirect=Log&logNo=10172860410

9>1969년 7월27일; 양평서 시외버스 남한강 추락, 50여명 사상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69%EB%85%84+7%EC%9B%9427%EC%9D%BC+%EC%96%91%ED%8F%89%EC%84%9C+%EC%8B%9C%EC%99%B8%EB%B2%84%EC%8A%A4+%EB%82%A8%ED%95%9C%EA%B0%95+%EC%B6%94%EB%9D%BD&x=15&y=17

10)1989년7월27일] 대한항공 트리폴리공항 착륙중 추락사고(사망80명 부상 139명부상)

http://blog.naver.com/koshablog?Redirect=Log&logNo=1002321425111)2011..7.28   아시아나항공 B747 화물기 제주 해상 추락, 2명 사망.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1666

12)2013년 7월 30일 방화대교 공사 중 중장비가 넘어진 사고;2명사망 1명부상사고

http://ko.wikipedia.org/wiki/%EB%B0%A9%ED%99%94%EB%8C%80%EA%B5%90

상기 URA들로 검색이 되지 않으면 아래 별첨2를 참조하세요.

최근사례;유치원버스 추락 사고, 논두렁으로 떨어져…무슨 일?

http://star.mbn.co.kr/view.php?no=900712&year=2014

*상기 사고의 개요 및 원인 정도를 아시려면 아래 별첨2 참고 하시길 바람.

다음 달(7월) 반상회 때 제공될 정보 유형; 8월에 발생된 재난 재해 및 각종 사고 사례정보, 사기피해 사례 및 사기성 여. 부 파악 자료 및 확인 처 정보, 개인적으로 받아 볼 것을 원하는 경우는 해당 동, 통, 반 정도와 이메일 및 전화번호로 신청해주시면 이메일(내용전송)이나 문자 메시지(확인 해볼 방법 안내)로 안내 해드리겠습니다.

보내곳;사단법인)한국제안공모정보협회,김문환(kmh54049@naver.com

)입니다.

별첨2;

1)10년7월3일;인천대교 추락사고; 14명사망 10중상

(1)사고 개요

2010년 7월 3일 오후 1시 20분경, 포항에서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고속버스가 인천대교 요금소를 통과한 직후, 영종 나들목의 일반도로와 연결되는 고가도로 위 에서 앞에 가던 1톤 화물차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주행 중 차량 고장으로 멈춰 서 있던 승용차를 피하려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10m 아래 하늘도시 제3공구 공사현장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13] 이 사고로 인해, 14명이 사망하고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인천대교 개통이래 2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최초의 대형사고이기도 하였다. 사고원인은 고속버스 운전기사의 과속 및 안전거리 (약 100m) 미 확보와 추돌당한 마티즈 승용차 운전자가 자동차 고장을 감지하고도 차량 운행을 강행하였고, 고장으로 차량이 정지한 후에도 안전대를 세우는 등의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http://ko.wikipedia.org/wiki/%EC%9D%B8%EC%B2%9C%EB%8C%80%EA%B5%90#.EC.82.AC.EA.B1.B4_.EB.B0.8F_.EC.82.AC.EA.B3.A0

사고 4년 후인 2014년 5월 13일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kangjk@kyunghyang.com)

취재 내용에 의하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알아야 개선을 요구하고 다수가 요구 할때 의식

있는 공직자가 추진의지가 생기고, 최고 책임자는 거절 및 지연 시킬 명분이 없게 우리가 연대하여 요청해야 만이 개선 된다고 합니다.

아래 기사 참고 하세요.

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골든타임 한참 지나 병원 이송… 응급의료체계 ‘빨간불’

강진구 기자 kangjk@kyunghyang.com 입력 : 2014-05-13 21:47:19ㅣ수정 : 2014-05-13 21:55: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32147195&code=9402024

2)11년 7월 4일;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사건

(1)사건 개요[편집]

이 사건으로 해병대원 4명이 사망하고 김 상병을 포함한 2명이 부상했다. 또한 7월 6일 새벽에 군당국은 사건에 대한 범행 공모 혐의로 같은 부대 소속 정준혁 이병(당시 20세)을 긴급체포했다. 사건의 주범 김민찬 상병은 해병대 사병들 사이에서 후임병에게도 무시와 괴롭힘을 당하는 따돌림 문화의 일종인 '기수열외'를 당한 것에 대한 앙심을 품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김상병은 사고 조사단과의 문답에서 "너무 괴롭다. 죽고 싶다. 더이상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고 발언했다.하지만 이는 단순히 가해자의 초기 발언만을 토대로 알려진 것으로[ 후에 기수열외를 당한 적이 없다고 번복했고 , 훈련소에서 실시한 인성 검사에서 7가지나 되는 정신과적 문제가 제기되었는데도 귀가시키지 않은 점,사고 전날에 소주를 밀반입하였고 사건 당일 이를 복용하여 취한 상태였던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초기 언론에서 부각시켰듯이 단순한 '기수열외' 문제만은 아니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한편, 범행에 가담하였던 정 이병은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여 분노가 내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범 김 상병과 공모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 4명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2)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진행경과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10705_0004781728

<?xml:namespace prefix = v ns = "urn:schemas-microsoft-com:vml"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

(3)이 사건으로 드러난 문제점들[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기수열외성추행, 후임갈취, 폭력 등을 비롯한 해병대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내무 부조리 문제가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사회 이슈화 되었다. 국방부 자체 감사에서 해병대에서 2년간 943명이 구타로 치료받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덧붙여, 결함이 있는 지원병의 입영문제도 제기되었다. 또한 해병대의 허술한 총기,탄약 관리도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되었다.

총소리를 들은 해병대원들이 비상 상황발생시의 매뉴얼에 따른 대응은 커녕, 속옷 차림으로 부대를 이탈하여 민가쪽으로 전력질주하여 도망치는 모습이 부대주변 주민들에 의해 목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상병에게 총상을 당하여 피를 흘리고 있던 권모 이병이 주변에 있던 해병 선임들에게 지혈을 부탁했으나 선임 해병들이 지혈법을 모른다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옷을 찢어 자신이 직접 지혈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제대로 된 응급처치조차 못받고 방치되어 있었다.

사망자 중 박모 상병은 사고 발생 직후 생존해 있었으나, 인근 병원에서의 응급조치후 국군수도병원으로의 이송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빠른 시간안에 응급수술이 이루어졌더라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 함께 군의 응급환자이송체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4)사후대책[편집]

해병대 당국은 이 사건의 영향으로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을 수립, 이행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에 대해서는 빨간 명찰을 떼어내고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2011년 7월 7일, 국방부는 7일 국회 국방위 긴급회의에 제출한 현안보고서를 통해 "경쟁률이 높은 해병지원병에 대한 인성검사가 소홀했다는 점에서 검사체계를 보완하겠다"면서 "병무청 신검과 입영 신검 과정에서 인성검사 결과를 정밀 분석해 인성 결함자는 입영시키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2012년 1월 13일,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상관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범 김민찬에게 사형, 정준혁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선고 직후 항소했는데 군사법원법 제406조에 따르면 피고인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가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 상소의 포기를 할 수 없으나 이는 '정해진 기일 내에 상소 포기가 불가능 할 뿐' 자동적으로 상소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2년 7월 10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은 상관살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주범 김민찬에 대해 제1심에서 선고한 원심(사형)을 유지하고 항소를 기각했으나, 정준혁에 대하여는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0년으로 감형했다. 2심 판결은 2013년 1월 24일 대법원에 의해 확정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0%95%ED%99%94%EB%8F%84_%ED%95%B4%EB%B3%91%EB%8C%80_%EC%B4%9D%EA%B8%B0_%EB%82%9C%EC%82%AC_%EC%82%AC%EA%B1%B4

*반상회 때 이런 내용을 전달되면 처벌이 어떻게 진행 되었고 개선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음 달 반상회 때에 알려 달라고 요청하면 답변 준비하는 과정만 하더라도 주의가 되며, 사전 예방 효과만으로도 재발 시에 엄중 처벌할 명분이 된다는 점이다. ‘

이런 제도 운영 자체만으로도 적지 않은 예방은 물론 재발 방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3)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박왕자氏) 피격사건

(1)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金剛山觀光客被擊死亡事件)은 2008년 7월 11일 오전 4시 50분경(단, 일부 증언에 의하면 오전 5시 15분~20분 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강산관광지구에서 대한민국 국적의 여성 관광객 박왕자(피격 당시 만 53세)가 규명되지 않은 이유로 조선인민군에 의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다. 피해자를 총격한 이유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군사 경계지역을 침범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대한민국에서 요구하고 있는 진상규명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거부함에 따라 사건의 실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개요[편집]

사건의 피해자 박왕자는 금강산 피살 당일날 새벽에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현재 피해자가 군사지역을 침범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 정부의 진상규명 요구를 거부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실제로 군사지역을 침범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언론과 가족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가 산책하던 구역은 군사지역과 가까운 지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엉성한 철조망만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민간인이 군사지역인지 민간인 지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격 직전 피해자에게 경고를 하였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의 주장이 있으나,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

(2)과잉 대응 의혹[편집]

사건이 일어난 경위, 특히 민간인에 대한 관광지 내에서의 총격 사용의 적절성과 사전 경고에 대한 의혹이 대한민국 언론과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에 의해 제기되었다. 또한, 조선인민군의 민간인에 대한 총격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금강산 관광지구법' 및 '금강산 관광지구 출입, 체류, 거주 규정'에서 명시한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 조항을 벗어난 대응이며 총격 그 자체가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에 2004년 체결된 ‘대한민국 국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입 및 체류에 대한 합의서’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한 언론의 사설을 통하여 제기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8%88%EA%B0%95%EC%82%B0_%EA%B4%80%EA%B4%91%EA%B0%9D_%ED%94%BC%EA%B2%A9_%EC%82%AC%EB%A7%9D_%EC%82%AC%EA%B1%B4

*이념적 상처들을 지금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상기하면서 우려되는 것 및 고려해야 할 사항들 건의한다.

왜 중앙 및 지방정부들이 못 하는가?

해당 장들에게 부담되는 것에 대한 질의 및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추진자들의 부담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않지만 민간인 연대원들이 요구하고 평가된 결과에 대해서는무시하면 언젠가는 혹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적지 않은 효과를 기대할 수있다는 점이다.

4)59년 7월17일 부산 공설운동장 참사 / 사망 67

부산에서 시민위안잔치에 참석한 관중 3만여 명이 소나기를 피하려고 좁은 출입구로 쏟아져 나오다 67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1959년 7월 17일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부산시민위안회에는 가난과 실직에 찌든 3만여 명의 부산시민들이 여름 오후 구경거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오후 8시경 영화배우팀과 만화가팀 간의 야구시합에 뒤이은 시민위안공연이 한창일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당황한 군중들이 하나 뿐인 출입문으로 몰려들면서 앞으로 쓰러진 사람들을 뒤에서 그대로 짓밟아 순식간에 남녀 67명이 목숨을 잃고 24명이 크게 다쳤다. 정부에서는 시체1구당 매장비 등으로 3천환씩 지급했을 뿐 아무런 보상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http://www.ganabook.co.kr/module/book/book_view.php?book_no=56126

시사 하는 점

지금은 어떨까?

논하기 전에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아니 되지만 만의하나 불가피하게 유사한 일을 당했을 때,생각조차도 하고 싶지 않지만 주변 시설들을 보살펴 달라는 의견들 정도라도 제시 한다면 우려하는 실무 공직자는 이런 민원들의 힘으로 제대로 점검 할 수 있음은 물론 사전 예방방안들이 마련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5)13년7월18일;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학생들 5명 실종 사고.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 학생들 5명이 해상훈련을 하다가 급류에 흽쓸려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5명 전원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시사 하는 점: 여름 캠프 주의 상기.

6)93 7.26.  아시아나 B737-500 공항 접근중 전남 해남군 야산에 추락.66명 사망,44명부

(해남=연합) 특별취재반= 26일 오후 2시20분 승객 1백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우고 金浦공항을 이륙, 목포(木浦)로 떠난 아시아나항공 733편 보잉 737機(기장 黃仁淇.49)가 목포상공의 악천후로 오후 3시50분경 전남(全南) 해남(海南)군 花源면 마산(馬山)리 뒷산에 추락했다.이 사고로 기장 黃씨등 61명이 사망하고 승객 金해식씨(21)등 45명이 부상했다 고 아시아나 항공측은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2-3명은 뇌부분에 심한 상처를 입어 사망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고원인>교통부등 관계기관은 사고원인을 강한 비바람과 시계 2.8㎞의 악천후를 무시하고 조종사가 3차례나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빚은 참사로 일단 추정,정확한 원인을 조사중이다.<구조>간간이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오후 6시께 첫 구조작업에 나선 주민들은 장비부족으로 부상자 구호에 애를 태웠다. 진입로가 없을 뿐 아니라 가파른 산중턱이어서 부상자 구조에 어려움이 많았다. 오후 6시30 분께 경찰과 군 헬기가 사고현장에 도착한 이후에야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진행됐다. 대부분의 부상자는 헬기로 목포와 해남병원으로 후송됐다.사고소식을 들은 마산리주민 1백50여명과 공무원 1백여명, 군인.경찰등 모두 5백여명의 구조대원과 앰블런스 4대, 의사 4명, 간호사 8명 등 응급 의료진이 오후 6시께 사고현장으로 달려가 최초의 구조작업을 펼쳤다.날이 어두워 지자 한전 관계자들이 전기를 가설,군인. 경찰.의료진.취재진등으로 크게 붐볐다.목포(木浦) 소방서 119 특별 구조대원들은 밤10시 35분부터 추락한 여객기의 동체내부를 1시간동안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를 발견하지 못했다.한편 李海龜 내무장관과 李啓謚 교통부장관이 사고현장에 도착한 밤 11시30분부터 2차 철야 구조작업을 펼쳤다. <수습대책>내무부와 교통부는 사고수습대책반을 구성하고 현지에 경찰과 공군헬기를 동원,부상자를 목포와 해남으로 긴급 후송했다.李海龜 내무장관과 李啓謚 교통부 장관은 이날 오후 항공편으로 사고현장으로 내려 갔는데 밤10시45분께 해남군청에 도착,부상자 및 사고 수습현화을 보고받고 생존자 수색및 사상자 의료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관계관에게 지시했다. 이어 두장관은 해남 종합병원에 들러 최병무씨등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사망자에게 조의를 표한뒤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사고현장에 도착한 두 장관은 새벽까지 철야 구조작업을 독려했다.한편 아시아나항공측은 서울 김포공항에 사고 수습대책본부 (본부장 朴鎔泰 부사장)을 마련했다.아시아나 항공측은 서울 강서구 마고동 소재 승무원훈련소에 유가족 대기소를 설치했 다.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30727005700117

사고 원인이

“교통부등 관계기관은 사고원인을 강한 비바람과 시계 2.8㎞의 악천후를 무시하고 조종사가 3차례나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 빚은 참사로 일단 추정,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란 점에 비춰 볼 때. 과거에 유사한 여건의 경우에 발생된 사례들이라도 참고 했었다면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았거나 하려 했어도 만류할 수 있지 안ㄴㅎ있겠는가 생각을 해 본다.

7)89.7.27  대한항공DC10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착륙중 지상충돌

80명사망 130명 부상

사고의 원인은 시계 240m의 짙은 안개 속에서 조종사가 무리한 착륙시도를 하다 일어난 것이다.

사건 개요:

승객과 승무원 200명을 태운 대한항공 DC-10 여객기가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이날 오후 2시 30분 경 추락하여 탑승객 72명이 사망하고 139명이 부상했다(리비아 현지주민도 포함). 탑승객 대부분은 중동 현지에서 근로하는 근로자들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건설대우건설, 동아건설 (공영토건 포함) 등 총 150명이 탑승하였다.

http://blog.naver.com/iamchan60?Redirect=Log&logNo=60160546729

http://blog.naver.com/tryxtry?Redirect=Log&logNo=10172860410

http://blog.naver.com/koshablog?Redirect=Log&logNo=10023214251

<조종사의 기내 역할과 근무실태>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70809182100572

대책;무리한 운행이 빚은 결과를 상기 하면서 안전의식의 재점검.

8>7월27일-[1996년]집중호우로 군부대 매몰

http://blog.naver.com/tryxtry?Redirect=Log&logNo=10172860410

1996년]집중호우로 군부대 매몰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대마리 소재 육군 모부대 막사붕괴현장. 

경기-강원 북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1996년 7월 27일 전방 군부대 막사들이 매몰되고, 경기도 연천군과 문산읍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1987년 태풍 셀마호 이후 최악의 물난리가 빚어졌다. 이날 새벽 최고 5백77mm의 폭우가 쏟아져 내린 전방 산악지대 군부대 막사들이 산사태로 매몰되는 사고가 속출했다. 

육군 7개 부대와 공군 1개 부대에서 산사태 등 수해사고가 발생해 2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으며 27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오전 5시30분쯤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소재 육군 승리부대 공병부대 막사 주변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대대막사 2채를 덮치면서 8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했으며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전 6시쯤에는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대성산 공군 레이더 기지에서 산사태가 발생 장병 15명이 매몰돼 이중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전날인 7월 26일에도 강원도 철원군 소재 군부대 군막사를 강타해 20명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향후 대책

이런 일들을 대비하여 7월 초 점검과 불가피하게 발생 될 때 신속한 대피 및 수습방안 마련과 점검이 요구됨.

9>69년 7월27일; 양평서 시외버스 남한강 추락, 50여명 사상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69%EB%85%84+7%EC%9B%9427%EC%9D%BC+%EC%96%91%ED%8F%89%EC%84%9C+%EC%8B%9C%EC%99%B8%EB%B2%84%EC%8A%A4+%EB%82%A8%ED%95%9C%EA%B0%95+%EC%B6%94%EB%9D%BD&x=15&y=17

사고 원인 핸들고장으로 추락사고 발생됨.

교훈;안전 점검의 중요성.

10)1989년7월27일] 대한항공 트리폴리공항 착륙중 추락사고 (사망80명 부상 139명부상)

http://blog.naver.com/koshablog?Redirect=Log&logNo=10023214251

1989년7월 27일 목요일 아침 트리포리 공항 활주로 근처 과수원(올리브 나무) 도로변에 추락하였다.이 비행기는 서울 트리폴리을 주 일회 정기운행 하는 DC 10 기종이었다.승객은 한국 근로자 외 외국인 민간인 약간의 승객 이있었다. 이 사고로 사망80명 부상 139명의 크나큰 인명피해가 났다.

 블랙박스의 분석결과 주된 사고원인은 짖은 안개로인한 시야확보가 안되는 상황에 무리한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의 과실로 드러났으나 관제탑과의 교신문제 날씨 문제 또 계기착륙장치가 4개월 전부터 고장이 나있었고, 시계확보가 가능해야 착륙을 할 수 있는 보조 착륙장치를 이용해야만 했다.

 DC-10기 자체도 결함이 많은 기체로 드러났지만, 사전에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점을 교훈으로 다시는 비행기 관련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11)11..7.28   아시아나항공 B747 화물기 제주 해상 추락, 2명 사망.

중대사고가 7월에 집중

아시아나, [7월은 잔인한 달]..해남, 제주 등 추락만 3번째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1666

하늘도 불안하다…국내 항공기 사고 최근 5년간 집중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513001008

1976년 7월 28일탕산 지진(唐山地震, Tangshan earthquake) 사망자;242,400명

http://ko.wikipedia.org/wiki/%ED%83%95%EC%82%B0_%EC%A7%80%EC%A7%84

피해 규모[편집]

탕산 시에서는 이 지진에 의해 14만 9000명이 사망했고, 중상자는 81,000명 이상, 피해는 시민의 21.2%에 이른다. 탕산 시 전체 중 4.5%에 이르는 7,200가구가 전파되었고, 주택 붕괴율은 94%였다. 이 지진으로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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