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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독재의 그늘에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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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독재의 그늘에서 살아간다는 것
-<홍길동傳>의 許筠이 과연 ‘사문난적(斯文亂賊)’이었던가! --- 구대열
방장님,
5월 15일 북부 이탈리아 기행 6편을 2매 쯤 쓰다가 중단한지 한 달이 되었군요.
다시 쓰려니 정리가 되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글을 하나 올립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 고관절 수술, 집사람을 수행 홍콩 와인박람회(Vinexpo) 참관,
집사람이 Convention Center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삐었지만
와인과 아시아 음식’이라는 강의를 열심히 들어 3가지 수료증(Certificate)을 받고,
귀국해서는 처남 박이소 10주기 전시회와 6월 말에 발표할 논문 하나 쓰고 등등… 일이 많았네요.
저의 방 pc의 모뎀이 나가서 다른 방의 것으로 보내니 한번 잘 읽어주세요.
세월호 사건이나 최근 문창극 총리후보에 관한 뉴스를 대할 때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민주적인가 반문해 봅니다.
우리는 지난 20여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성취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자랑하지요.
그런데 민주주의는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전제로 한다는 건 누구나 알면서도
자기와 의견이 같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회가 아닌가요?
세월호 사건 때 -지금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한 국영방송의 수장이 날아갔지요. 억울하게 죽은 젊은 영혼과 수없이 많은 이유로 때로는 자기의 잘못으로 죽은 교통사고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게 약간 어색하겠지요.
그러나 사망자 수치를 거론하여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설명한 것이 무슨 잘못입니까?
1960년대 월남전이 한창이었을 당시 월남에서 1주간에 죽은 미군병사의 수가 1백 명 정도인데 매년 크리스마스 휴가 중 교통사고로 죽은 미국인 수는 이 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저의 기억이 정확하지 못합니다만 아마 500명은 넘었을 겁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조국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감수한 병사들과 크리스마스 휴가분위기에 휩싸여 흥청망청하다가
죽은 사망자를 비교하는 게 ‘비애국적’인 행위라고 비난받아 마땅했겠죠.
그러나 그런 글이나 비난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숫자로 비교한 것은 세월호 사건의 참상을 더 정확히 알려주는 겁니다.
아세아나 항공기의 괌 사고에서 000명이 죽었고, 서해페리에서는 000명이 죽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1인 자녀가 일반적인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 수많은 고교생이 죽어간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에 1년 동안 교통사고 희생자 수를 상기하면 우리가 잊으면서 살고 있는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 제한속도를 도입하고 교통사고 줄이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중
동의 석유위기와 함께 크리스마스 휴가 중 교통사고 후유증이 한몫 했던 겁니다.
국민 전체가 세월호 사고의 비통함에 몇 달씩 젖어있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해도 진심에서 울어난 슬픔을 느끼는 건 순간에 불과합니다.
일주일 쯤 지난 후부터는 희생자 수색작업은 계속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검찰은 필요한 수사를 하고, 정부와 국회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6개월 정도 조사한 후 국민들의 감정이 가라앉았을 때 쯤 개선안을 제시하는 게 정상입니다.
이게 예기치 못한 참사를 만났을 때 민주주의가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입니다.
이와 비슷한 의견이 나왔겠지만 황야에서 외치는 공허한 소리 정도로 들렸을 겁니다.
희생자 가족까지 참여시켜 국회특위를 만들어 공개회의를 여는 것은
정당들이 정치 쇼를 벌리는 것 외에 무슨 소득을 기대할 수 있나요?
가장 지성적이라는 마르코 글방조차 추모 분위기 속에서 야유회를 연기하는 바람에
나는 ‘그 좋은’ 천리포 구경을 놓쳤습니다.
내가 피할 수 없는 선약을 한 날만 두 번에 걸쳐 고른 신우재 ‘마사모’회장에게 14일 아침
“비나 팍팍 와뿌라!”고 저주의 문자를 보냈지만, 천리포를 보고 싶은 다수의 기(氣)와 열망
그리고 여론을 감히 이겨내지 못했는지 그날 아침 날씨는 화창하더군요.
문창극 총리후보 청문회 건도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사관이 잘못되었다면서 우리의 과거를 ‘쬐끔’ 비판한 말들을 물고 늘어집니다.
역사관은 한 가지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죠. 우리가 왕조시대에 살고 있나요?
한 가지 역사관이 정해지면 모두 이에 따라야 합니까? 그리고 이걸 누가 정한 것입니까?
나는 지금 우리가 믿는 역사관은 상당 부분이 1960대 이후 경제적 성장과 함께 생겨난 우리의 지나친 자신감이 빚어낸 허상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 비판했다면 ‘그래 한번 들어보자’라고 해야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역사관이 틀려먹었다’고 배격하는 것이 무슨 어린애 같은 짓입니까?
일제 식민지 40년이 우리의 잘못은 조금도 없고 일본의 탐욕으로 빚어진 결과인가요?
일본만 없었다면 우리는 식민지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이 사자를 보고 ‘난 조용히 있고 싶으니 다른 곳에 가서 먹이를 찾아보라’고 하면 사자가 ‘그래 알았다’하면서 얼룩말을 그냥 내버려 두나요?
부모는 조용히 살고 싶은데 애들이 많으면 그러지 못하는 게 ‘가정사’인데
탐욕으로 가득 찬 제국주의 시대에 이 말이 통할 것으로 믿습니까?
오늘날 한국사회는 모든 국민들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내가 싫다고 ‘No!’ 해버리면 되는 세상 말입니다. 상대방의 견해는 들을 필요가 없죠.
국회의원 한 사람이 비판하고 나서면 언론이 여론몰이를 하고 그러면 여론은 한쪽으로 쏠리고…이건 무정부 사회입니다.
모든 국가들이 핵무장을 한 가상적 국제관계에서 모든 국가들이 핵무기를 믿고
자국의 이익을 반대되는 행위에 No!하면서 내조때로 행동하는 국제정치적 상황 말입니다.
이 결과 모든 것이 정지되어 타결은 없고 긴장만 높아져 전쟁 일보전의 단계에 이를 겁니다.
지금 우리는 이 같은 상황을 즐기면서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요?
여론이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100년 전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대학총장 출신으로 정당기반이 약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여론에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여론은 항상 정당하고 항상 우세하다면서(always right and always prevailing) 국민들에게 직접 말하는 유세전을 펼쳤습니다.
다행히 상대방 진영이 분열되어 당선되었지요.
그런데 2차 임기를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을 밀어 준 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을 1차 세계대전으로 끌고 갔습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미국의 참전이 국익에 부합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50년이 지나 TV시대를 맞습니다. 그리고 ‘그 잘난’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요.
이제는 여론과 ‘그 잘남’이 실체와 진실은 외면한 채 온 세상을 휘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냄비같이 끓었다가 곧 식어버리는, <임꺽정>의 표현을 빌리면 마른 낙엽에 불이 붙어 활활 타다가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여론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습니까?
잘난 게 유능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여론의 독재(the tyranny of public opinion)는 여론의 이름으로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일 틈을 주지 않고 단죄해버립니다. 청문회를 열 필요도 없다는 게 이겁니다.
문득 일원적(monolithic) 이념사회였던 조선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조선시대는 주자학 이외 다른 이념이나 가치는 ‘이단’으로 몰아 처단했습니다.
조선조 최고의 악마이자 역적이 누구인지 아시죠?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입니다.
역적모의에 참여했는지는 논외로 하고, <아비를 아비로 부르지 못 한다>고 한탄하고
적서구분을 철폐하자는 주장조차 조선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세월호의 비통함을 함께 공유하지 않는다고,
혹은 한일관계에서 ‘쬐끔’ 엉뚱한 말을 했다고 ‘공인의식’이 없다느니, ‘역사의식’이 없다느니 하면서 파문시키려하지 않습니까?
조금 과격한 -그러나 결코 이상하지 않은- 사례를 하나 들어봅시다.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같은 견해를 피력하는 일본 학자들은 종종 나오며 우리는 이들을 ‘양심적 일본 지식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에 수긍한 한국인 학자를 본 적이 있나요?
일본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들을 검토한 한국학자 중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신기합니다.
‘양심적 한국 지식인’은 모두 독도는 한국영이라는데 동의하기 때문인가요?
역사기록들 특히 1차 문헌을 검토해 보면 상이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1차 문헌들은 후세의 학자들이 연구하라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을 기록자의 프리즘으로 통해 보고 해석하여 제 멋대로 기록한 것들입니다.
당연히 기록 자체가 진실하기도 하지만 왜곡도 많으며 따라서 다른 해석들이 가능하지요. 그런데 유독 ‘독도는 한국영토’는 만고불변의 진리일까요? 일본의 문헌을 검토한 일본학자들 중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결론을 내린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이 한국학자들 중 이 결론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학자는 없는가요?
이건 우리사회가 다양한 가치관을 수용하지 못하는 비민주적 여론독제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문난적이 되지 않고 한국사회에서 추방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폭력으로 얼룩진 유신이나 5공만이 독재가 아니라 정부가 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하고 여론이란 이름으로 지식인들을 옥조이면서 기를 펴지 못하고 숨소리를 죽이게 만드는 사회도 독재인 것입니다.
<구대열/梨大 정외과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박사(런던정치경제대/LSE 대학원)/
한국일보 기자 역임/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고성 産>
<첨언>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들 자신을 성찰해 볼만한 화두를 제시한 글이다 싶어 올린 것이오니
이 글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독자인 여러분의 몫입니다.
정치적 의도완 무관한 것임을 양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나의 사견>
민주주의 퇴보보다 더 무서운 민주주의 사상의 적은 민주의의를 가장한 불합리한 괴변과 논리로
우민을 선동 여론화 시킴으로서 괴물 같은 사상을 조장하고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인 양 몰고가는
극우 또는 극좌로 치우친 간교한 무리들이지요.
한 마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퇴보한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진화, 도장한 상태지요.
예로
한 나라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두고 입에 담지못할 묙설을 펴부어도 되는 나라.
북한의 적화통일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무리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 애국가 대신
적기가를 우렁차게 불러도 되는 나라. 등등
이보다 더 민주적인 나라 또 있을까요.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도 국회 청문회에 앞서 여론의 몰매로 자진사퇴하였고
이어 문창극 내정자 역시 청문회에 앞서 여론의 몰매로 물러나야 한다면
내정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라는 법적 절차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상황이 이러하다면 마땅히 폐기처분 되어야할 것이 국회 청문회법일 것일 것입니다.
다시말해 국회에서 만든 청문회 법을 국회의원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로 볼 수 밖에 없지요.
이와 같이 명문화 된 법의 권위보다 여론의 독재가 우선인 나라가 대한민국인지 나같은 무지랭이의 의문이구요.
민주주의 국가에선 여론의 행방이 중요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 여론이 민주주의 근간을 좌우하는 절대적 권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나만의 것일지.
웬지 요즘의 정국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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