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자유 게시판

혓바닥으로 책장을 넘겼으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 오 원 작성일 2010-12-26 08:55 댓글 0건 조회 1,404회

본문

혓바닥으로 책장을 넘겼으니

                                                    2010년 12월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고등하교 2-3학년이였던 어느 몹씨 추운 겨울날 국어시간에 너무 너무 추워서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고 머리를 앞으로 숙여서 선생님의 수업 진도에 맞춰 책장을 혓바닥으로 넘기다가 선생님 두 눈과 내 두 눈이 딱 마주쳤으니… (그 시절 겨울은 참 유난히도 추웠다는 기억인데, 나무를 때는 난로가 교실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 있기는 했어도 죽은 놈 콧김나오듯 煖房이라고는 그저 시늉 뿐이였으니, 언 발에 오줌누기였었다는 기억) “지금 자네 뭐 하고있나? 엉, 아니, 그렇게 게을러터져서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를 하겠다는거야, 엉” 정도의 야단은 들었지만 다행히 체벌은 받지 않고 넘어갔었는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수업시간 중에 옆의 동무와 장난질을 치다가 선생님한테 딱 들켰는데, 두 녀석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마주보고 서게 하고는 서로 따귀를 때리라고 하더군. 한 녀석이 때리면 다른 녀석이 때리고를 반복하는데, 한 녀석이 좀 세게 때렸다는 생각이 들면 맞은 녀석은 더 세게 때리려고 노력하고… 이렇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때리고 맞고, 맞고 때리며를 반복했으니… 집에 갈 때 쯤에는 두 녀석의 왼쪽 볼은 벌겋게 붓고 달아 올랐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새까만 먹물을 빈틈없이 칠한 것 처럼 얼굴 반쪽은 완전히 칠흑색으로 변해 있었다네. 1949년에 겪었던 일이였으니 벌써 61년이나 지난 일이네만 지금 이 나이에도 그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體罰치고는 엄청난 체벌로 그 어린 나이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지 않았나 하는 짐작. 내가 학교 생활 16년 동안에 받았던 가장 기억에 남는 체벌인데, 그 선생님의 성함은 기억에 없고 그저 땅딸박한 키에 다부지다는 인상이였다는 것이 기억이 전부라네.

“해바라기 그림자 울 넘어 지고/초저녁 별 영창에 졸고 앉았네/자장 자장 자아장 우리 아가야/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잠 잘 자거라”의 자장자는 지금 이 나이까지 살면서 歌詞를 기억하는 유일한 자장가인데, 바로 이 자장가를 위의 선생님한테서 배웠다네! 지금도 가끔씩 흥얼거리지만 흥얼거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노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어떻게 그처럼 고약한 평생토록 지워지지않을 체벌을 가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라네.

선거에서 투표로 당선된 모든 당선자들은 선거기간에 자기가 내 세웠던 선거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우선순위이겠지만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세금 같은 것을 감안하지 않았더라도 무리한 공약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니 당선후에는 자기의 공약을 다시 한번 점검하여 무리한 공약은 시대의 흐름이나 세금의 씀씀이에 맞게 수정보완해서 시행하던가 아니면 아예 폐기하던가 이런 유연성이 있어야 할텐데 무조건적인 시행은 어느모로보나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인데, 예를들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실시하고저하는 학교내 전면 체벌금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학교내 체벌금지가 가장 이상적인 교육방법인지는 몰라도 지금 우리 현실에는 전혀 맞이 않는다는 생각인 것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 가정이 한 두 자녀가 전부가 아닌가. 이 자녀들마저도 학교 공부외에 각종 과외에, 학원에, 이런 저런 사교육에 하루 해를 다 바치기 때문에 친구없이 지나는 게 일상생활인데 이런 생활이 몸에 배다 보니 자연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때에 하는 게 또한 이들의 일반적인 性情으로 이런 성정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 또한 인터넷문화인데, 인터넷은 클릭 한번으로 자기가 원하는 해답이 순간적으로 바로 코 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서양과 우리의 아이들을 기르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서양에서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집 밖에 내 보내지 않고 집 안에 가두어둔다고 하는데, 이는 밖에 나가서 이웃이나 친구들과 놀면서 세상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하는 기회를 빼앗는 행위이니 아이들에게는 실로 무서운 형벌이나 다름이 없다고 하는 반면 우리들은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 쫓으니 이는 “그래, 네 놈들이 밖에 나가서 어디 고생 한번 해 보거라. 지금까지 부모들이 네놈들을 얼마나 위하고 잘 해 주었는지 알게 될거다” 뭐 대강 이런 마음 가짐이라고 하니… 우리는 자식들의 자립을 부모의 몫으로 하는 반면에 서양은 자식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부모들은 단지 도와주는 선에서 그치니, 사실, 집 밖에서 친구들과 치고 받고 얻어터지면서 크고, 이웃들과 이런 저런 일에 부딪치며 자라야 나중에 어른이 된 후에 다른 사람을 배려함은 물론 세상살이의 기본을 터득하여 옳바른 한 인간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하는데…)

샤오황디<小皇帝>란 한 자녀 갖기가 법으로 정해진 중국에서 시작된 新造語로 親家와 外家의 어른들이 한 자녀를 위하고 또 위해서 버르장머리가 없어진 자녀를 이르는 말로 이는 이웃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한데, 이렇게 자라는 한국의 샤오황디들이 매일 학교에서 節制를 모르고 저지르는 행위를 단 몇 마듸의 말로 다스려지겠는가. 우리의 옛 그림에 보면 書堂 풍경에는 어김없이 訓長선생님이 회초리로 學童의 종아리를 때린다거나 회초리가 훈장 선생님 옆에 늘 있는 걸 보는데, 회초리는 제대로 된 교육에는 꼭 필요하다는 實證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制度敎育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 서양에도 매를 아끼면 학생들을 못 쓰게 만든다는<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라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동서양에는 시대의 구분없이 적절한 체벌이 훌륭한 인간으로 키우는데 꼭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체벌이나 매가 善敎育의 일환으로 본다면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선별적인 시행이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학생 모두에게 훨씬 더 유익한 게 아닐까.

현재의 北半球가 위로 한 地區儀를 보노라면 한반도는 절벽에 사람이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듯이 대륙에 매 달린 형상이고, 반대로 남반구를 위로 하고 꺼꾸로 보면 대륙에 서 있기는 해도 머리위로는 日本列島가 가로막고 있는 아주 답답한 형상인데 이런 太古的인 지리적 앉음새로 중국은 조선조가 끝날 때 까지 朝貢을 받았음은 물론 나라를 호령하다시피 했고 일본은 근현대사에서 우리에게 씻을 수 없은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는데 근래에 중국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경제력에 힘입어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餘勢를 계속 몰아가서 중국 공산당 창단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미국과 동등하거나 앞지르려는 속셈이라고 하고, 중국<中華人民共和國>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명실상부한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되겠다는 포부라 하지 않는가.

이런 중국이 西北工程에 힘입어 펼치고 있는 東北工程은 종국적으로는 한반도를 염두에 둔 영토확장의 음모가 아니겠는가. 나아가 저들이 昨今에 저지르고 있는 힘을 앞세운 온갖 못된 짓거리는 조선조로 되돌아간 作態가 아닌가 할 정도로 眼下無人이 아닌가? 예를 들면 한국의 排他經濟水域<EEZ>내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적발된 중국어선의 행패를 우리는 매일 보고 듣고 지나지 않는가? 또 主敵이 우리나라 영해에서 저지른 천안함 爆沈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서 중국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태도는 무엇을 말함인가?

다행이 우리는 지난 50여년 동안 헐벗음에서 벗어나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할만큼 지혜와 슬기와 용기와 힘과 추진력과 경쟁력을 갖추었는데 이를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기회있을 때마다 늘 강조하는 점이지만 우리는 밖에서 벌어서 안에서 살림을 해야 하는 타고난 팔자이므로 한 사람이라도 자기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더 갖춘 인재를 더 많이 길러야 할 게 아닌가?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그 해결책이 아닌가. 교육은 흔히 百年大計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체벌을 전면금지해서 무질서가 판치는 교실에서 어떻게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기를 수 있겠는가? ㄴㅁㅇㅁㅌㅂ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