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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오문장(許氏五文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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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종춘 작성일 2015-11-14 18:59 댓글 0건 조회 8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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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송(宋)나라 소순(蘇洵)이 아들 둘을 낳으니 맏아들을 소식(蘇軾, 蘇東坡)이라 하고
둘째아들을 소철(蘇轍)이라 했다.  고문진보에 실린 蘇洵의 명이자설(名二子說; 두 아들의
이름을 지은 글)에 보면 맏아들(蘇軾)의 식(軾)은 수레의 앞에 설치한 가로막대라는 뜻으로
이 막대는 없어도 그만이지만 없으면 수레의 품격이 떨어지는 중요한 장식이기 때문이며,
둘째아들(蘇轍)의 철(轍)은 바퀴자국으로 수레가 지나가야만 자국이 생기는 것이니 타인의
앞장에 서지않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엇다고 한다.중
중국의 시문(詩文)이 가장 활발했던 전성기가 당(唐)나라 송(宋)나라로서  이 시대를 통털어
대문장가를 여덟명으로 뽑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蘇洵, 蘇軾, 蘇轍 삼부자가 포함되어
있어 이를 지칭하여 삼소(三蘇)라 하니 참으로 부러운 집안이다.

   조선조에 이르러 강릉과 연고가 있는 허엽(許曄)의 삼남일녀(三男一女), 맏아들 허성(許筬),
둘째아들 허봉(許篈), 딸 허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 막내아들 허균(許筠)  이렇게 다섯을
지칭하여 허씨오문장(許氏五文章)이라하니 이런 영예는 권력이나 무력으로도 얻을 수 없다.

  허엽(許曄)의 아호(雅號)가 초당(草堂)이고 이들이 강릉 초당(草堂)마을에 연고가 있었으니
강릉 초당마을과 許曄의 雅號와는 어떠한 연고가 있는지 궁금하다.
許曄은 아들의 이름을 외자로 쓰는 대신 모두 대죽(竹)을 붙여 지었는데 청절(靑節)을 뜻하는
대나무를 닮았는지 자녀들 모두가 올곧은 성품이었음이 문장에 남아있다. 許筬은 임진왜란전
일본의 동정을 살피러 일본을 다녀와서 자기의 직속상관과 다른 보고서를 제출하는 소신으로
후세에 높은 평사를 받았고 許篈은 이율곡(李栗谷)의 처벌을 상소하다가 임금(宣祖)의 미움을
받아 귀약가서 일찍 사망하였고 許筠과 許蘭雪軒은 설명을 생략한다.

 조선인물고(朝鮮人物考)에 한가족 모두의 이름과 행적이 적힌 기록을 보면서 참으로 부러운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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