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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진리 하평동의 하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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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於屹齋
작성일 2015-11-1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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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篈은 號가 荷谷이고 字가 美叔으로 弘文館 典翰을 지냈으며 剛直한 性格으로 임금에게 直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荷谷 許篈은 京畿道 巡撫御使로 나가 水源府武器庫의 軍紀未備를 理由로 親舊인 府使 韓邕의 罷黜을 奏請하고 當時 十萬養兵論을 主張하던 兵曹判書 李珥를 彈劾하였다.
宣祖에게 祖母 安嬪 追尊問題에 對한 反對로 미움을 받았던 許篈은 李珥 彈劾上訴로 西人들의 集中 砲火를 받아 昌原府使로 左遷됐고 얼마 안가 甲山으로 歸養갔다. 歸養 生活後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金剛山과 白雲山에서 蟄居하며 酒.讀書로 鬱憤을 달래다가 享年 38歲로 金化縣에서 客死했다.
許篈과 同生 許蘭雪軒, 許筠의 삶을 考察해보면 才勝薄德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는 許蘭雪軒보다 12歲, 許筠보다 18勢 差異가 났지만 許蘭雪軒과 許筠의 才能을 아껴주었고 切親한 親舊 蓀谷 李達에게 許蘭雪軒과 許筠의 學文 傳授를 付託한다.
歷史속에서 尊敬받는 人物들은 盲目的으로 尊敬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많은 名聲으로 尊敬을 받는 栗谷先生도, 洪吉童傳의 著者인 許筠의 兄 許篈에게 彈劾을 받는 事件이 있었다
女眞族들이 邊方의 都市인 鍾城을 攻擊해온 일이 있었는데 邊方의 都市들은 不安感에 빠져야 했고 當時 兵曹判書로 있던 栗谷先生은 "軍馬로 쓸 말이 턱없이 不足하여 말을 한 마리씩 寄贈하면 軍人에 뽑혀가도 戰爭터에는 나갈 수 없도록 免責을 준다"는 軍馬 需給 對策을 提示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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