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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비석을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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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於屹齋 작성일 2015-11-05 21:08 댓글 0건 조회 8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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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筠 死後 그의 가 끊긴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그의 後孫들 중 一部가 다른 他 門中養子로 가거나 他人後孫인 것처럼 變姓名을 하고 後孫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1980年代許筠奇蹟的으로 살아남은 아들 許宏直系 子孫들이 家牒許筠直系 後孫임을 主張하여 오다가, 1995年 陽川許氏 蛟山公派로 숨겨 진 血統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의 作品洪吉童傳仁祖反正 直前 柳夢寅 等自身들의 文集書信 等洪吉童傳著者許筠이라는 記錄을 남김으로써 後代洪吉童傳著者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一部 學者들 사이에서 肅宗 때의 張吉山 內容이 있는 것을 問題 삼아 許筠作品이 아니라고 主張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後世加筆된 것으로 보고 있다.

 

仁祖反正 以後에도 그가 北人大北黨員이었던 탓에 復權되지 못하였다. 正祖 때와 高宗 때에도 그에 復權 輿論이 나타났으나 霧散되었고, 그는 大韓帝國滅亡할 때까지 復權되지 못한다.

 

그는 嫡庶差別不當함과 腐敗官僚糾彈하는 글을 남겨 社會批判的意識을 보여주었다. 그는 嫡子庶子 모두에게 公平하고 均等機會附與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스승 蓀谷 李達庶子로서 出世하지 못한 것이 理由라고도 하고, 許筠 自身再娶夫人所生으로 庶子들과 다를 바 없는 不遇處地라서 이에 共感했다는 도 있다.

 

許筠儒敎집안에서 태어나 儒學工夫儒家로서 學文基本儒學에 두고 있으나 當時異端으로 指目되던 佛敎, 道敎老莊思想들에 하여 思想的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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