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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원조 스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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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餘 年 前 全州에서 50餘 里 떨어진 곳 長巖里에 宋英耉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壬辰倭亂後 松江 鄭澈과 함께 書壯官으로 明나라 客舍에 머물 때 일입니다. 使臣이 머무는 客舍에서 불을 때는 下人 한 사람이 무어라 중얼중얼 읊조리는 걸 들으니 莊子에 나오는 南華經을 暗誦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요즘 말하면 旅館뽀이 主題에 하도 神通해서 宋英耉는 그 靑年을 불러 自初至終을 물어보니 자기는 南越 사람으로 科擧를 보기 爲해 몇 年 前에 北京에 올라왔는데 여러 次例 試驗에 落榜하다보니 가져온 노잣돈이 다 떨어져서 糊口之策으로 이렇게 旅館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靑年이 文章에 對한 理致는 깨쳤으나 全體的인 格式에는 未洽한 점이 있었으므로, 朝鮮의 科擧試驗에서 通用되는 模範答案 作成 要領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瓢翁 宋英耉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重要한 書籍 數篇을 筆寫하여 주고, 또 相當한 額數의 돈까지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2年後 이 靑年은 科擧에 首席 合格합니다.
이 靑年이 朱之蕃인데 朱之蕃은 黃麾, 焦宏 等과 함께 學士文章家로 이름을 떨치는데 그 중에서 朱之蕃이 第一 有名합니다. 朱之蕃이 우리나라에도 많은 足跡을 남겼는데 江陵境浦臺에 있는‘第一江山’扁額도 朱之蕃의 글이라는 說도 있습니다.
瓢翁 宋英耉가 任期를 마치고 집에 잠시 쉴 때 朱之蕃은 中國 皇孫이 때어난 慶事를 알리기 爲해 外交使節團 最高位級 正使로 朝鮮을 訪問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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