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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의 화해는 문향 강릉을 더욱 빛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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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曄은 妻家인 江陵에서 나는 特異한 맛의 샘물로 豆腐를 담가서 먹었는데, 그 맛이 사람들을 魅了시켰다. 許曄은 그 豆腐를 商品化하였고 이는 草堂豆腐의 起源이 되었다. 그러나 士大夫 家門이 事業한다는 消息이 朝廷에 알려지자 이것이 攻擊의 對象이 되었다.
許曄은 東人 ·西人의 黨爭이 始作될 때 東人의 領袖가 되었으며, 副提學을 거쳐 慶尙道觀察使가 되었으나 病으로 辭退, 1580年(宣祖 12年) 尙州에서 客死하였으니 享年 63歲였다. 許曄은 30年間 官職 生活을 하였으며 淸廉潔白하여 淸白吏에 錄選되었다.
許曄의 子息들은 모두 文章에 才能이 있어 當代에 그들을 가리켜 許氏 5文章(許曄, 許筬, 許篈, 許蘭雪軒, 許筠)이라고 하는데 모두 하나같이 最後가 좋지 못하다. 許曄은 尙州에서 客死했으며, 許篈은 流配後 父親과 마찬가지로 客死한다. 許蘭雪軒은 27歲에 子息을 잃고 夭折하였으며, 許筠은 陵遲處斬當하는 等 不運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許曄의 漢詩 箕城戱題 一首를 紹介하고자 한다.
許椽東來下界塵(허연동래하계진) 허생이 사다리 타고 동쪽 세상에 내려와
大平江上喚眞眞(대평강상환진진) 큰 강 위에서 진진이를 부르노라.
相將去作吹簫伴(상장거작취소반) 서로 이끌고 가려고 피리로 짝을 부르는데
浮碧樓高月色新(부벽루고월색신) 부벽루는 높고 달빛은 새롭다.
草堂의 著書로 草堂集, 前言往行錄 等이 있다. 德水 李氏 李栗谷 後孫과 陽川許氏 許曄 後孫들이 만나 先代의 惡緣을 풀어야 한다. 같은 江陵 出身으로 後孫들이 惡緣을 解消하는 게 先祖에 對한 孝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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