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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이씨와 양천허씨 후손끼리 화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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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於屹齋
작성일 2015-11-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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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曄은 栗谷 李珥와는 政治 性向이 달라 크게 對立했는데 鄕約의 施行을 두고 論爭을 벌이다가 論破當하는 屈辱을 當한 적도 있다. 當時 許曄은 鄕約 施行을 强力히 主張했으나, 李珥는 그보다는 民生 安定이 優先이라며 許曄의 主張을 反對한다.
許曄이 李珥를 찾아가 따졌는데, 李珥가 許曄에게 "先生 집안은 鄕約으로 집안을 다스리십니까?"라고 묻자 許曄이 "나라의 命이 없어서 안하고 있소"라고 對答했다. 이에 李珥는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日日이 나라의 命을 기다리신단 말입니까?"라고 面駁을 줬다고 하는데 許曄 立場에서는 19年 後輩에게 亡身을 當했으니 當時의 心情이야 오죽했을까?
栗谷集에는 그가 理論이 矛盾된 점이 많고 文章이나 글의 뜻에 잘 通達되지 못했다고 하고 李滉은 차라리 學識이 없었다면 善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慨歎하였다고 한다.
許曄은 李滉의 理氣二元論을 正面 否定하고 理氣一元論을 主張하는 栗谷 李珥를 가리켜 根本도 모르는 人間’이라고 거의 嫌惡에 가까운 模襲을 보였으며 李浚慶 等도 栗谷 李珥를 禮節과 根本도 모르는 人間이라고 相互 非難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非難은 서로 黨을 달리 했으므로 是非를 論하기는 歲月이 數百年이 흘렀으므로 論爭에서 除外하기로 한다. 단, 學文의 立場에서 草堂 許曄을 바라보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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