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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들의 맞선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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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병호 작성일 2016-12-20 09:21 댓글 3건 조회 1,2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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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들의 맞선보기

공 병 호

1975년 12월 22일 밤새 내린 눈은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났다.

외삼촌과 어머니, 형님 내외분, 이웃에 살고 있는 누나와 나,

이렇게 온 가족이 시내 나들이에 나섰다.

뾰족한 코에 끈 매는 구두(아버지신발)반질반질 윤기 흐르게 닦아 신고 눈길을 걷자니 미끄러워 곤두박질치기가 일수였다.

시내버스도 안 다니는 논두렁 밭두렁으로 이어진 시골길이었지만 불편함 모르고 가슴 설레는 나들이였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어머니께선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시며

당부의 말씀을 한 번도 빼놓지 않으셨다.

“처녀가 먼저 싫다고 하지 않으면 절대로 네가 싫다는 말은 하여서는 안 된다.”
 

약속의 장소는 강릉시내에 있는 <신혼다방>이었다. 30분 정도는 늦었던 모양이다 먼저와 기다리던 한 가족이 일어서서 반가이 맞아 주었다 “눈길에 오시느냐고 얼마나 고생 많으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대강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나는 다방 출입이 처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부모님들의 말씀을 귀담아들을 뿐이었다

외삼촌께서 뭐라 물으셨는지는 몰라도, “예! 저는 이 청년이

아주 믿음직스러워 보입니다.” 하 하 하 하~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 졌다. 흐뭇한 웃음소리로 다방을 한 번 흔들어 놓았을 때 긴 머리를 풀어헤친 아가씨가 커피를 가져왔다. 아주 예뻐 보였다. 나는 커피를 따르는 아가씨를 쳐다보았는데 어머니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의 허벅지를 찔렀다.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 “우리들은 자리를 저쪽으로

옮깁시다” 외삼촌이 제의했다.
 

아마도 양가의 부모님들은 승낙이 되었으니 본인 당사자끼리의 의견을 나누어보란 눈치였다. 자리를 옮긴 저쪽에서는 웃음의 꽃이 시들지 않았다. 앞자리에는 고개만 살포시 숙이고 앉아있고,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무슨 말로 의사를 물어봐야 하나 하고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금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싶어 냉수 한 잔을 시켜 마셨다 아무래도 말은 내가 먼저 꺼내야만 되는데...
 

내가 자신을 생각하기엔 말 하나만큼은 조리 있게, 유머 있게

누구보다 더 자신 있다고 믿어 왔는데 왜 이렇게 말이 궁해

졌을까? 얼굴에는 불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20분가량

지났을까 또 물을 찾았다. 그리고는 내 머릿속에서는 무슨 말을 시작으로 여자 측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고개만 숙이고 있던 앞 좌석에서 입을 열었다 “음식을 짜게 드셨나봐요?”

예..예..저~ 아침에 된장국이 너무 맛이 좋아서...

참! 된장국 좋아하세요?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잘 끓여요”

그 된장국이 침묵을 깨고 대화의 물꼬를 틀 줄이야!
 

몇 형제나 되세요? 하고 물었더니 7남매 맏이 라 했다.

공통된 점이 많네요. 저도 동생들이 많아요. 성경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사랑을 저희 동생들에게도 고루 나누어주실 수 있을는지요? “미흡하게 느끼실 줄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동생들과 똑같이 대하겠습니다.” 벙어리 냉가슴이 냉수 먹고 풀렸나 보다! 우리는 서로가 의견일치를 직감하고 그 길로 부모님들이 계신 곳으로 갔다. 부모님들은 우리의 얼굴을 두루 살피시더니 사진관으로 이끌었다. <찰 각!> 이 소리가 귀를 울린지도 어느덧 40년이 다되었다. 지금은 흑백의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입을 굳게 다물고 벙어리 시늉이라도 하듯 그날의 상황을 대변해준다. 아내는 사진첩을 볼 때마다 놀려준다. 사진에는 얼굴이 붉게 나오지 않았다고...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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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나그네님의 댓글

구름나그네 작성일

순수했던 시절이였네요
요즘 연애는 사계절을 지나봐야 한다는데
몇시간의 미팅으로 제2의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었네요
40년의 해로 ............축하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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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욱빈님의 댓글

임욱빈 작성일

공 시인님!
순진함과 순박함이 두루 퍼져있던 40년 전의 세속 주마등처럼 스치네요.
그렇게 한 순간에 백년해로의 배필을 만나 현재까지 내우가 두루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니, 천생연분이군요.
'저의 동생들과 똑같이 대하겠습니다' 멋진 명답을 하신 어부인님!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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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전님의 댓글

조규전 작성일

순수함에서 감동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세월의 격동기에만 맛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대업의 과정이 아주 특이합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현실
그래서 더 진한 감동이 와 닿을 수 있는 글이라 봅니다.
적당한 복선도 깔려 있는 이야기에서 감칠맛이 더 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