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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정성이 지긋하면 바위도 열린다" -최돈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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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 2016-12-29 09:53 댓글 0건 조회 1,0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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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역사책 `사기'를 보면 이광(李廣)이라는 유명한 장수 일화가 나온다. `이광이 어느 날 어두운 밤길을 가다가, 무성한 수풀 가운데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황급히 활을 당겨 호랑이를 명중시켰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뜻밖에도 바위덩어리였다. 놀랍게도 화살이 바위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광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화살을 쏘아 보았지만, 몇 번을 쏘아도 화살은 바위에 꽂히지 않고 튕겨져 나오기만 했다.' 훗날 어떤 사람이 대학자 양웅(楊雄)에게 가서 이에 관해 가르침을 청하자 `정성소지 금석위개(精誠所至 石爲開) 즉,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린다'는 답을 주었다. 그렇다. `지극한 정성으로 어떤 일을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에서는 아무런 욕심 없이 무심코 활을 쏘았을 때 바위가 뚫리는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이광의 상태가 무아의 경지이고 몰입의 상태다. 하지만 바위를 뚫어 이름을 높이려는 욕심이 들어가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욕심보다 사심 없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일의 중요도나 크기보다, 그 일에 정성을 담아 일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셈이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48세에 생식기를 뿌리째 절단하는 궁형(宮刑)을 받는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돼 억울하게 벌을 받은 것이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참형을 받았지만, `사기'를 완성하기까지는 쉽게 목숨을 버릴 수 없었다. 당시 자신의 억울한 심경은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 나와 있다. `인고유일사 혹중어태산 혹경어홍모(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즉,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그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운 이도 있고, 기러기 깃털보다 가벼운 이도 있다.' 결국 `사기'는 오늘날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며 그의 무거운 삶의 가치를 정성으로 증명하고 있다.

사마천뿐만 아니라 인류 문화사에 남을 명작은 인생의 고난을 이겨낸 정성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사마천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옛날 주 문왕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주역'을 만들었고, 공자는 진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춘추'를 만들었다. 굴원은 초에서 추방되자 `이소경'을 지었다. 좌구명은 장님이 돼 `국어'를 만들었고, 손자는 다리가 끊기고서 `병법'을 만들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 했듯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맞고, 그것을 이겨나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절망에 사로잡혀 쉽게 무너지기도 했고, 누군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당히 맞서 자신의 삶을 정성으로 완성하기도 했다.

벌써 올 한 해를 정산하는 세모(歲暮)를 앞두고 있다. 나라 전체가 국정농단 일로 시끄럽고, 지역 역시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은원(恩怨)과 인정, 승패와 무상, 갈등과 곡직(曲直)이 파란만장한 `사기'를 읽고 있노라면, 어지러운 세상에 생강 씹으며 제자를 가르치던 공자의 모습도 보이고, 천도(天道)가 과연 있는 것인가 하던 사마천의 장탄식도 들려온다. 새해에는 모든 분께서 `정신의 서늘함'을 잃지 않고, 추상(秋霜)같은 엄정한 사색과 지극한 정성으로 하시는 일마다 잘 되는 닭띠의 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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