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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장학기금과 축구발전기금으로 7,000만여원을 냈고 앞으로도 지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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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壁暖爐 작성일 2017-04-18 20:47 댓글 2건 조회 1,4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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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이사람']
장인정신이 빚어내는 맛…
하루 1천명 찾아

인천 동해막국수 홍장표 대표(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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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계양구에 위치한 `홍장표동해막국수' 전경.

철저한 준비로 오픈 첫날부터 대박 행진
250개 조각 전시 도심 속 여유 공간 꾸며
'인천서 꼭 가봐야 하는 음식점' 입소문

밀려드는 인기에 인근 교통 혼잡 부작용
주민 한사람씩 찾아가며 공존 방안 찾아

"문학적 감성·성공 계기 모두 고향서 받아"
각종 장학기금·발전기금 등 물심양면 지원


지하철을 타고 인천 계양역에서 내렸다. 택시기사에게 “동해막국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인천에서 그 집 모르면 간첩이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해막국수'는 그 정도로 유명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수백점의 조각이 전시된 공원이 펼쳐졌다. 강릉 출신 홍장표(69) 대표가 직접 꾸며놓은 `조각공원'이었다. 이곳이 왜 그리 유명한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강원도 전통의 맛은 물론 도심에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해장하다 시작한 막국수집=홍장표 대표가 동해막국수를 시작한 것은 2002년 2월. 당시 유명 재봉틀 회사 대리점을 20년 넘게 운영하다가 그만둔 후, 고향 음식을 팔아보자는 생각에 새롭게 도전한 사업이었다. 하필이면 왜 막국수였을까. “고향에서 술을 먹은 후에는 꼭 막국수로 해장을 했어요. 그런데 2001년인가, 강릉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다음 날 부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습관처럼 물막국수를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더군요.” 막국수집을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전국의 막국수집을 돌아다녔다. 특히 강원도 내 막국수집은 대부분 찾아 노트에 음식 맛은 물론 분위기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전문가도 초빙해 국수 삶는 법과 양념하는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그렇게 꼬박 1년을 준비해 문을 열었다. 오픈하던 날부터 대박을 쳤다. 주말에는 하루에 1,000여명이 몰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차들로 인근 교통이 혼잡해지기까지 했다.

그러자 인근 주민들이 반발했다. 당시만 해도 이 동네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으나 음식점이 들어선 이후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마을과 함께 공존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발전기금도 내면서 설득했다. 심각한 경우에는 법적인 절차를 밟기도 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과 합의를 했다.

■장인정신으로 빚어내는 맛=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6시40분에 육수를 만드는 아궁이 앞에 직접 선다. 음식은 `장인정신' 없이는 절대 맛을 낼 수 없다는 신조 때문이다.

손님들이 국물을 많이 남기는 것을 보고, 더 심심하면서도 단맛을 원한다는 것을 찾아내고는 이에 걸맞은 육수를 만드느라 몇 달을 고생하기도 했다.

메뉴도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 묵은 김치에 쪽파만 넣어 만든 메밀부침 이렇게 3가지로만 한정했다. 맛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약 5,100㎡(1,500여평) 규모의 부지에 직장인과 가족단위 손님들이 음식도 먹고 좀 더 여유 있게 즐기다 가도록 하기 위해 3억원을 넘게 들여 250여개에 달하는 조각작품을 모아 전시했다.

여성들을 중심으로 마니아층까지 생기고, 블로거들로부터는 `인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음식점'으로 꼽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벽면에 붙어있는 홍 대표의 시(詩)들이다. 강릉시 포남동에서 태어나 옥천초교와 강릉중, 강릉농고(현재 강릉중앙고)를 다녔던 그는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각종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기도 했다. 한때 전업시인을 꿈꾸며 2년 동안 강릉에서 글을 썼다. 신춘문예에 공모도 했지만 당선은 쉽지 않았다. 학교 다니면서도 교납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정학처분을 받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의 가정생활은 결국 문인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성공을 목표로 삼았다. 어려움을 겪는 고향 사람들을 챙겨야겠다고도 마음먹었다.

부천북부강원향우회와 계양강원향우회 등을 만들어 수년간 이끌었다. 2012년에는 1,000여명에 가까운 출향도민을 모아 인천강원연합회를 결성, 초대 회장을 맡았다.

■버선발로도 맞이하는 고향사랑=그는 올해로 4년째가 되는 재경강릉중앙고동문회장직도 맡고 있다. 특히 모교에 체육장학기금과 축구발전기금으로 7,000만여원을 냈고 앞으로도 지원할 생각이다.

`강원도 사람'이라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할 정도로 강원도에 애뜻한 애정을 갖고 있는 그는 지금도 강원도민회중앙회 부회장과 당연직 이사를 맡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홍 대표는 “지금까지 제가 시를 쓰면서 살아올 수 있는 감성을 준 곳도 강원도이고, 막국수로 성공할 수 있게 계기를 준 곳도 바로 강원도”라면서 “도민회도 그렇고 고향, 모교에 대해서는 제 능력이 다하는 날까지 도울 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유병욱기자 newybu@kwnews.co.kr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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壁暖爐님의 댓글

壁暖爐 작성일

강원일보에 크게 소개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동문회에 7,000여만원을 내셨다면 총동문회에서는 왜 홍보를 안하시나요?
동문들이 알 수있도록 널리 알려주세요.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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壁暖爐님의 댓글

壁暖爐 작성일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unners2537&logNo=220734055096

2016년 단오정기전 승리후 1,00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신다는 약속도 지키셨겠지요?
알아본 바로는 빈공약만 남발하시고 실제로는 1,000만원만 내셨다는데 사실인지?
나머지 6,000만원은 어떻게 되었는지 총동문회에서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