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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농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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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05-28 23:11 댓글 0건 조회 1,2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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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에 농상전


  아주 예전에는 지금처럼 볼거리 즐길거리 느낄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켜 줄 각종 거리들이 개발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땟거리를 걱정해야 하던 시절에 인간의 감각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와중에 스포츠와 응원문화를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걸작품이 과거에 강릉농고와 강릉상고였을 것이다. 양교 모두 일제 강점기에 개교를 하면서 우리 지역사회에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면서 중등교육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고 본다. 물론 인재양성에도 심혈을 기우렸지만 훗날 양교가 이 지역사회에 던져준 큰 선물이 있었으니 그게 다름 아닌 농상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예전에는 농상전을 1년에 두 번씩 했었다. 봄 가을에 거처서 한 번씩 하는 바람에 재학생의 응원도 덩달아 두 번씩 이루어졌다. 응원이 시작되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을 꼬박 매 달려있어야 할 정도였다. 오후 수업은 거의 빼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오 무렵의 오후 날씨는 예나 지금이나 만만찮이 더웠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점심을 급식형태로 주는 것이 아닌 도시락으로 때우던 시절이 었다. 보통은 점심 전에 다 먹어 치운터라 학창시절의 오후는 늘 배가 고팠던 기억도 생생하다.

 

  말이 쉬워 응원이지 실제는 거의 중노동 수준이었다. 특히 저학년 시절에는 선배들의 등쌀(?)도 만만찮은 스트레스로 다가 왔다. 처음 하는 동작인데다가 카드섹션까지 겹쳐서 들어가면 여간 눈썰미가 있어도 틀리게 돼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가르쳐주어도 주눅이 드는 판인데 서슬 퍼렇런 간섭의 상황에서 재미있는 연습이 될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하였던 농고 3년을 다니면서 매년 두 번씩 응원연습을 하는데 소모된 시간이 장장 6개월이 된 셈이다. 결국 고등학교 시절 중 거의 1년은 응원을 하다가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부를 그렇게 악착같이 가르쳐주었으면 큰 인물이 엄청나왔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기사 응원이라도 제대로 했으니 졸업한지 몇 십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고등학교에 대한 추억은 또렷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농상전이 많은 사람들의 화자에 오르락거리는 것은 게임의 승패도 승패거니와 경기 종료 후 일어났던 각종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 단오문화관에 있었던 공설운동장에서 경기가 있을라치면 강릉의 치안은 운동장쪽에 집중이 되게끔 되어 있었다. 경기 도중에 선수들끼리 과격한 장면이 있으면 응원단에서도 덩달아 과격한 행동이 나오는 것은 비일비재 하였다. 경기가 끝나고 승패가 갈라지면 이 또한 갈등의 표시가 양교 응원단에서 나오는 것은 다반사였다.

 

  적당히 열을 받는 것은 운동경기에서 당연지사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정도를 넘으면 이는 폭력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 치루어지는 운동장은 서로가 과격한 장면을 일으키기에는 적절치 않는 구조로 되어 있음으로 운동장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되기 어려우리라 본다. 하지만 과거 노암공설운동장 시절에는 운동장 안이나 밖이나 분쟁이 발생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해서 이긴팀이 먼저 빠지는 과정에서도 양교 교사나 경찰들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농상전이 벌어질 때 마다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면서 관중들은 게임에서 양교간 불꽃튀기는 장면을 즐기고 끝나고 난 다음에 양교 학생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까지 볼 수 있었음으로 은근히 기대가 더 컸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트랜드로 썩 좋은 방향의 흥행거리는 아니었지만 당시에 양교의 축구경기가 대단한 이슈가 된 것 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더 흥미진진한 것은 양교가 늘 상 경기를 해 왔으면 그저 그렇거니 하겠는데 오로지 농상전에서만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신비스러운 맛도 가미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직까지도 강릉시민들의 뇌리에 농상전이 남아있다는 것은 이것을 강릉 축구의 한 역사로 계승 발전시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선배들이 어렵게 구축해 놓은 우리 고장 만이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축구의 문화를 더 아름답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를 해 나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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