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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 볕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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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 볕들 날
우리민족은 신명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시사철이 뚜렷한 관계로 계절계절 기후적인 특징과 함께 농경을 바탕으로 많은 유 무형문화를 창출하였다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농경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고 고달픔으로 인하여 이를 조금이나마 달래보려는 심정에서 신명문화가 자연적으로 발전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소개되고 도입됨으로서 우리 고유의 문화는 점점 뒷켠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문화를 리드하는 계층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은 좀더 액트브하고 다이나믹한 방향으로 문화의 흐름을 가져가고 있는 것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본다. 많은 사람들이 더 신나는 세상을 강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뒤돌아보자. 학교 시절에 가장 억압적이고 통제적이면서 획일적인 교육과정 중 하나가 교련이 아니었나 싶다. 이를 통하여 한창 젊은 나이의 학생들을 그 당시에 일부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추어 엄격하게 관리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 학생들은 신이 날 겨를이 없었다. 아니 기라는 것을 펼 상황이 아니었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래도 신명의 장을 만들어 줄 수 있었던 순간이 소풍이 아니었던가 싶다.
일전에 경포대 주변을 걸으면서 허난설헌 생가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호수와 장엄하게 자란 소나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밑을 거니는 순간 옛날 초당 솔밭에 소풍을 왔던 기억이 생생히 떠 올랐다. 선생님 모르게 꼬불처 온 소주를 몰래 마시고 이동식 전축을 틀어놓고 마음껏 스텝을 밟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당시 한 학급당 인원이 지금처럼 20~30명 수준이 아닌 적어도 50여명 수준이었던 관계로 이들이 한 번 스텝을 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자라났던 풀들은 온데 간데 없고 먼지만 풀풀 날렸던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억압과 통제 그리고 획일적인 방향은 인간의 심신을 경직되게 만든다.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집단이 현재 북한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들은 엄격한 통제하에 그들의 기득권이 추구하는 틀에 맞추어 인간 이하의 강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게 과연 인간이 살아가야 할 본연의 모습인가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간의 창의성이나 감성이 제대로 나올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북한 만 가지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렇게 통제와 억압을 통하여 기득권층의 이익을 독식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가정에는 가장이 있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할아버지가 가장인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정점으로 가장의 역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가장인 아버지가 신나게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고 엉뚱한데 에너지를 쏟는다고 하면 그 집구석은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가장 만 신나는 집구석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집안이 되자면 아버지는 좀 괴롭겠지만 자식들이 신 나도록 하는 가장이 결국 자신도 신나는 세상에 살아갈 수 있으리라 본다.
조직이나 기관도 마찬가지라 본다. 조직이나 기관의 관리자나 기관장만 신나는 곳은 제대로 굴어가기 어려우리라 본다. 관리자이나 기관장은 조직 운영에 고심하면서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애쓰고 노력한다면 그 곳은 저절로 잘 굴러가리라 본다. 관리자나 기관장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하여 조직원들을 수하의 똘마니 정도로 생각하고 획일적으로 운영하면서 자신만 신나는 조직을 만들어 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물며 국가는 어떻겠는가? 위에 있는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고 아집과 전횡으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자신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면 그 국가는 망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신명나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해도 신통치 않은 판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자신들의 권력 손아귀에서 꼼짝을 못하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지도자의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현실에서 드라마처럼 생생히 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닦아주는 지도자가 결국에는 성공하는 지도자로 남을 것이라 본다.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찾아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을 지키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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