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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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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염원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는 간절한 염원을 한 곳에 압축시켜 놓은 곳이 있다. 굳이 오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할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자기 실명까지 밝혀 가면서 자신의 염원을 대변하고 있다. 확실한 물증도 공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보통사람들은 자시의 내면세계를 좀해서 공개하지 않은데 이곳 만큼은 그와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에 염원을 순수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으니 이참에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제시한 사진을 보는 순간 금방 이해를 하리라 본다.
인간의 염원 중에 중차대하다고 생각되는 영역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좀 나리라 본다.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세계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염원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염원의 첫째는 ‘건강’이 아닐까 생각된다. 젊었다고 건강에 자신을 갖는 사람도 그 사람의 부모나 형제들의 건강은 늘 염려가 되는 부분임으로 어느 계층을 불문하고 건강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된 이슈가 되는 것 같다. ‘리비히의 최소의 법칙’에 의하면 농작물 생산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많이 들어있는 성분 비료가 아니라 가장 적은 성분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다는 이론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다른 부분이 모두 충족되어 진다하여도 건강이 신통치 않으면 결국은 신통치 않은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돈 많은 어느 분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건강은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 중에 가장 광범위하게 죽을 때 까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염원을 순위로 매긴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순간에 사랑하던 애인이 이유도 없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느끼는 가장 큰 염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 염원이 0순위로 사랑과 이별의 관계를 꼽을 것이다. 인간관계를 더 짜릿하게 묶어주는 매개체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인류의 씨가 마르지 않고 대대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성을 보고도 아무런 감동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이처럼 많은 종족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성간에 사랑은 종족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간에 우애, 이웃과의 사랑 등도 인간이 더 인간답게 사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어떤가? 세상에 행복만큼 계량화를 시키기 어려운 대상도 없을 것이다. 건강은 심신이 아프다는 징후가 있음으로 금방 알 수 있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수치가 없는 관계로 상당히 주관적인 의미를 지니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대답한 답이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아리송하고, 행복의 척도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대답 또한 명확한 것이지 자신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주구장창 행복을 염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인 행복인지 그 가치를 스스로 정립도 하지 않고 행복타령만 하는 것이 많은 인간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척도를 정해놓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돈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행복해 지기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 장본인조차 선뜻 대답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공인을 받고 투자를 하는 로또복권이 라는 것이 있다. 로또를 통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이 운이 좋게 3억 정도의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가정을 하자. 이 사람은 그 순간은 환호성을 지를지 모르지만 내심으로 다른 사람은 몇 십억에 당첨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적은 금액에 당첨되었을까 하면서 불만을 가질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이야 말로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가변성이 너무나 풍부한 영역인지도 모른다. 잣대를 느슨하게 대면 모든 것이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반면 엄하게 대면 그 행복을 쫓아다니다 결국 불행한 인생으로 종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처럼 기쁜 경우는 흔치 않으리라 본다. 바램이 많은 사람일수록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 사활을 거는 일을 종종 떠벌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소위 말해서 인생의 목표인 것이다. 내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어떤 대상에 사활을 거는 경우, 나의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꾀하는 경우 등을 이루기 위해 물질적, 정신적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세뇌성 교육도 일종의 정략적인 염원타령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소원을 노래처럼 부르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인간이 개개인 또는 집단적인 바램을 이루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부분이 소원성취가 아닐까 싶다. 딱 부러지게 어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추구하는 막연한 세계가 현실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임했을 시 과연 그것이 내 것이 될 것인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똑 부러지게 나는 이러이러한 일이 성취하길 강력히 희망한다는 식으로 접근했을 때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기에 좀 쑥스러워서 두루뭉술하게 소원성취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할 말은 없다.
사업대박이라는 표현도 상당수가 발견되었다. 급료를 타 먹는 사람은 사업을 하는 사람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봉급생활자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으레 직원들에게 주급이던 월급이던 반드시 지급해 주어야 한다는 관념에 쌓여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은 직원의 봉급을 주는 것은 물론이겠거니와 그 사업을 통하여 자신의 세계를 성취한다는 높은 이상도 실현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줌은 물론 내 자신의 존재감은 더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업가들이 높은 이상을 가지고 사업체를 개업하고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뜻대로 굴어 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운 때가 잘 맞아서 뜻대로 굴러갔는데 갑작스런 외풍이나 좋지 못한 환경에 처하면서 이상하게 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인간의 의지대로 굴러갈 수 있으면 굳이 염원이라는 굴레에 넣을 이유도 없겠지만 많은 경우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가항력의 영역을 좀 줄여보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 중 하나가 ‘사업대박’이 아닐까 생각된다. 염원도 간절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만큼 손가락만 빠는 것 보다야 적극적으로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골머리를 썪이는 부분이자 아킬레스건이 바로 대학의 진학이 아닐까 싶다. 과거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에 살다보니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고3 수험생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칭 좋은 대학의 반열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 원서를 내고 등록금만 잘 내면 다닐 수 있는 대학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염원은 대학합격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학에 대한 열망도 보통이 넘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대학이라는 것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런 문구가 아직까지 통용이 되고 있을까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간다. 전에 모 고등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학교에 모 학급에 들어갔는데 급훈(사진으로 제시하였음)의 문구가 아주 특이하기에 그 반 학생에게 살짝 물어 보았다. “얘, 저 급훈의 뜻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학생 왈 “우리 반 학생 모두 무(無) 지방대학으로 가자는 이야깁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는 학생들도 in Seoul을 해야 한다는 목표에 올인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오죽하겠는가? 갈 수 있는 대학은 넘쳐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염원이 그지없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염원이 있겠지만 기왓장에 기록된 대부분의 염원은 앞에 열거한 것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 염원이 다 충족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현실의 벽은 그저 높기만 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된다.” 군사문화의 기치 하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위에 열거한 영역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싸우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싸움질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실낱같은 영험을 얻기 위해 10,000원짜리 기왓장에 가족의 이름을 죽~ 쓰고 그 옆에 염원을 주저리주저리 써 놓은 장면들이 우리들의 진솔한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필자도 기왓장에 10,000원의 투자를 할까 하다가 마다하고 그 돈으로 막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3,000원을 남겼다. 막국수를 먹는 순간은 그야말로 행복했다. 3,000원의 낱전도 지갑에서 또 다른 행복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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