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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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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향연
꽃 중에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지 못하는 꽃이 있다면 아마도 밤꽃이 아닐까 싶다. 가까이 다가가보면 마치 송충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신록의 계절인 유월의 푸르름 속에 저 멀리 건넛마을 강둑에 면사포를 쓴 듯한 밤나무의 그늘은 유월 햇살을 피해 여인들의 쉼터와 꿀벌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하얗던 밤꽃은 누런색으로 변해 기다란 꽃대가 떨어지고 나면 성게가 새끼를 낳은 양 파란 가시를 나뭇잎 뒤에 숨기고 옹기종기 자라가고 있다.
밤나무에 달린 밤들은 매미의 노래를 듣고 어느새 주먹만 한 크기로 훌쩍 자라 귀뚜라미 노래에 영글어 이제는 아랫배에 금을 긋고 제왕절개수술로 세쌍둥이를 출산하려고 한다.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지역마다 밤 줍기 행사가 열린다. 공휴일을 이용하여 온 가족이 나들이 나가서 가을의 정취와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계절이다 어릴 때 소풍 가서 보물찾기를 회상하며 윤기 흐르는 밤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풀숲을 헤적거리며 한 톨을 찾아내면 그 주위에 두 톨이 더 보인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손녀와 손자들이 방법을 터득하였는지 연실 찾았다는 소리를 외쳐댄다.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 서로 만나면 아이들의 망태기가 더 크다 배고픔도 잊은 채 그저 싱글 벙글 이다.
망태기 하나씩 꼭꼭 채워 들고 논둑길을 따라 귀갓길에 오른다.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이 갈 길을 가로막아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옮기다 보면 황갈색의 메뚜기들이 후루룩거린다. 손자와 손녀는 밤 한 톨 줍는 것보다는 더 신기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살며시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잡으려 하자 메뚜기가 후룩 날아가 버리면 손을 툭툭 털면서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다. 논 복판에 외로운 허수아비는 졸음을 감추려고 밀짚모자를 얼굴이 보이지 않게 눌러쓰고 간간이 팔을 흔들어 새를 쫓는 시늉을 한다. 산등성에 메밀밭 한 뙈기 석양의 노을에 붉게 보인다.
큰길에 세워두었던 차 문을 여니 달아올랐던 차 안의 공기가 새어 나온다. 차창을 열고 들판을 지나는데 바깥바람이 시원하다. 강을 따라 펼쳐지는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들은 움돋이 풀로 배를 채우느라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하늘은 높은데 흑염소들의 몸집도 토실토실해 보인다. 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마다 가을의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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