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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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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규전 작성일 2017-10-16 14:49 댓글 0건 조회 7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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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의 추억


   수능 점수에 의해서 인생의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은 나라가 우리가 아닌가 싶다
. 하루 시험에 수험생들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과정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수능이라는 올가미에 씌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라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수능에 올인하고 있는가. 학벌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수능이 우리교육에 이바지한 긍정적인 면도 있겠지만 그 이면 부분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사람은 많고 대학은 한정되었던 시절에 성적에 따라 한 번 걸러주는 기능도 있었다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학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잣대는 있었을 것이다.

 

   국가에서 획일적으로 수능이라는 틀을 만들어 교육을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이 제도를 계속 고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제는 대학 정원보다 대학 입학예정자가 점점 적어지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막말로 원서만 내고 등록금만 착실히 낼 수 있는 학생이 유수한 학생으로 자리매김 되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본다. 대학에서 자신들이 만든 입학기준을 가지고 학생들을 뽑아도 큰 문제가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 국가가 대학입시까지 책임지고 거들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국가에서 모든 자료를 다 제공해 주는바 자신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성적순서만 정해서 뽑아주면 되는 식으로 운영된다고 본다. 물론 요즘은 수시라는 입시제도를 통하여 대학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선발은 하지만 그 제도의 근본에는 엄연히 대학수능이 꿰 차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다 보니 대학이라는 것이 특성화 되지 못하고 서열화만 되어가는 형국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실제로 일부 특성화 된 대학도 결국은 서열화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합류하는 결과를 초래한 경우도 있었다고 본다. 결국 대학의 경쟁력은 그 대학만이 가지는 고유한 학풍이라던가 특화된 교육방법 등을 통하여 나름대로 입지를 굳혀야 되는데 현실은 성적 줄 세우기에 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서열화된 순서에 의해서 수능 고득점자들이 채워지는 식으로 변질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나라 대학의 서열화를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교육당국이 아닐까 생각된다. 학생들의 선발권의 근본을 왜 교육당국이 쥐고 있어야 하는가 이 말씀이다. 교육의 최상위 역할을 하는 대학이 나름대로 자신들의 교육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조력 정도 해 주어야 하는데 교육당국은 아직도 주역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 고등학교의 교육은 오로지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인문계고등학교에 가보면 칠판과 백묵, 교사가 교과서와 EBS방송프로그램을 가지고 지지고 볶느라고 여념이 없다. 인생에서 뇌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군 사회보다 더 엄격한 틀에서 주입식 교육에 푹빠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배운 학생들이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간다 했을 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는지 저의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빌리지 않는다 하여도 쓰면 쓸수록 더 발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두뇌의 발달에 가장 좋은 방법이 교육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증이 된 제도라 본다. 그렇다면 그 교육의 세부적인 방법에서도 어떤 것이 그래도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것도 가닥이 잡혀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처럼 강제 주입식 교육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의 머리와 생각을 경직되게 만들 수 밖에 없으리라 본다.

 

   궁여지책으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자유학기제라는 틈새의 정책을 하나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시기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일제고사(생활기록부에 점수 기록이 되는 중간이나 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수행평가나 과정평가만 보고 이수를 할 수 있게끔 한 제도이다. 이 시기에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계발시켜보고자 체험학습이나 실험실습 등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시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대입수능에 올인해야 함으로 그 취지는 한시적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신생아 출산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가임 시기에 있는 남녀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낳아봐야 그 아기가 행복하게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괜히 낳아서 부모고생, 자식고생을 동시에 할 필요가 없다고 인식할 것이다. 이런 것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을 통하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모르겠으나 지금 같은 교육의 틀로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란 어려울 것 같다.

 

   비싼 비용을 들여서 교육이라는 것을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교육 수요자들이 교육을 받는 순간은 물론 미래까지 매력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리라 본다. 옛날처럼 낳아 놓으면 제 밥그릇은 자기들이 챙긴다는 고리타분한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막말로 애쓰게 애를 낳아 고생고생하면서 키워 놓았는데 변변한 직장도 못 가지고 시집장가도 제대로 못간다 했을 시 누가 선뜻 애를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본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벌써부터 노벨상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 우리처럼 교육열이 강한 나라에서 노벨상이라곤 김대중 전 대통령 한 면밖에 없는데 그 또한 연구의 업적이 아닌 평화의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존중받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공부는 죽어라 하고 하는데 결과가 지리멸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현재의 교육방법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준엄한 메시지가 아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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