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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하게 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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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편하게 살고 싶다면
강릉에 ‘e 편한 세상’이란 아파트가 있다. 인간이 얼마나 편안함을 추구하고자 했으면 아파트의 이름에도 ‘편함’이라는 개념을 넣어서 작명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간다. 아마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남보다 상대적으로 편한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 편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일상생활에 접목한 하나의 사례라 보면 될 것이다.
아주 과거, 선사시대에 인간은 동물과 큰 차이 없이 단순한 생활을 하였다고 알려진다. 유사 이전에는 기록이 없는 관계로 그들이 남겨놓은 족적을 통하여 추상하는 수 밖에 없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요란하게 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본다. 그 당시에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장한 체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어차피 수렵이나 어로를 중심으로 생활을 했음으로 사람의 힘이 곧 능력이자 권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일생동안 일이라는 것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동물로 태어났다면 먹고 배설하고 짝짓기로 번식하고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은 정도만 하면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인간의 생활은 고전적으로 알려진 ‘의 식 주’를 제외하고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본다.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은 대형 마트에 가 보면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형마트에가 보면 오만가지의 물건들이 다 진열되어 있다. 이런 물건들의 사용처도 다 알지 못할 정도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니까 판매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동물처럼 단순하게 살 수 없는 사회로 들어 온 관계로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물건과 욕구는 무진장 많아지고 있다고 본다. 이런 물건과 다양한 욕구를 개개인이 원만하게 사용하는 것 조차도 쉽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물질적 정신적 욕구를 다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돈을 벌어야 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되면서 인간에게는 힘보다 두뇌가 더 가치를 발휘하는 세상으로 돌입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머리를 써서 더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뇌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생산을 위한 일을 하던,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일을 하던,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던 간에 머리를 써야지만 되는 시대로 들어오게 된다.
인간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육체를 편안하게 만들고자 했던 물건들이 역으로 인간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발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써서 만든 수많은 물건들이 사용할 때는 좋았는데 용도폐기가 되는 순간부터 애물단지로 전락된다는 것이다. 이런 폐기물이 쓰레기화 되면서 이를 버리고 치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은 일로 되돌아 오게 된다.
말 타고 다녔던 옛날이 있었다. 당시에 말이 지금으로 말하면 차량이라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젊고 싱싱하며 근력이 좋은 말은 지금으로 말하면 성능 좋은 신 차량에 견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말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말이 다닐 수 있는 공간 정도만 있으면 어디에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단 속도가 느려서 흠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말보다 빠른 교통수단은 없었을 터이니까 더 이상의 불만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편함이라는 것이 어느 선까지일까에 대해서는 명확한 잣대가 없으리라 본다.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처럼 등 따시고 배부르면 행복한 삶이라 느끼던 시절과 지금처럼 문명의 극치를 이루는 시절과 비교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리라 본다.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는 인간의 생활을 편하게 해 주는 대상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데 실제 삶의 현장은 고달프기만 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되는지는 정의적인 영역으로 넘어가서 판단을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편함이라 함은 아무 일도 안하고 간섭하는 놈도 없고 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의적으로 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속된 표현으로 인생을 땡땡이치는 사람이 편함의 상징이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길로 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생 땡땡이는 임시 편할지는 모르지만 인생에 가치가 실리지 않기 때문에 선호하는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의 편안함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발생되는 현상이라 보면 될 것이다. 돈을 통하여 오장육부를 움직이지 않아도 수발을 해 주는 사람을 고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고, 골치 아픈 일을 누가 대신 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 시대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생은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다. 인류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만큼 역설적으로 그 편안함이 인간에게서 점점 멀어저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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