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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는 남편을 무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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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는 남편을 무능(?)하게 만든다.
자구책이라고 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경우 싫던 좋던 내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편방송에서 자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이 프로그램을 잘 보면 출연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현재 인생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빌붙어 사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자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삶의 현장을 보게 된다. 좋게 말하면 자기주도적 삶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들이라 보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아니면 내 삶을 추슬러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자연인에 나오는 사람들은 마누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일반 시청자들은 상당히 궁금해 할 것이다. 방송 중에 유심히 보면 대부분 가정이 제대로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자연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린 사람이 대부분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도 보인다. 가정이 있고, 마누라도 있는데도 왜 이런 생활을 하는가에 대해서 들어보면 온갖 피치 못할 사연들이 다 부각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의 가족들이 그 프로그램을 본다고 했을 시 느끼는 감정이나 정서는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봄 즉하다.
이 세상에 악처를 대표로 하는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의 처인 크산**라 알려지고 있다. 철학자라면 주변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철학적으로 만들어도 신통치 않을 터인데 오히려 압도를 당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으니 악처 앞에서는 세계적인 철학자도 명함을 내 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본다. 그렇다면 왜 소크라**의 처인 크산**가 자기 신랑을 그렇게 달달 볶았겠는 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가정생활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 마누라가 요구하는 것을 최소한은 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안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크라**의 처를 나무라기에 앞서 소크라**가 가정생활에는 별로 매력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로 생각이 딴판인 가운데서 화목한 가정이 꾸려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으로 생각한다면 소크라**의 처가 남편에게 악역을 했기에 소크라**라는 유명한 철학가가 나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제목과 달리 악처는 남편을 유능하게 만들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는 오로지 글만 읽는 선비가 있었다. 선비정신을 발휘하여 구질구질 한 일은 거의 하지 않고 공 맹자, 대학, 논어만 읽었던 선비들이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과거에 통과하여 관리로 임용된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고 본다. 과거에 안 될 것 같으면 농사일을 하던 장사를 하던 간에 집안 살림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본다. 오로지 글만 읽다보니 가진 기술이라곤 쥐뿔도 없는 주변머리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글 읽고 마누라가 해 준 밥 먹고 애 낳고 또 글 읽는 방식으로 살다보니 죽어나는 것은 집안 살림을 하는 마누라들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관념에서 똑똑한 선비의 처들은 자구책을 구했으리라 본다. 사즉생, 생즉사의 처절한 현실을 헤처나가는 여전사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변하는 것이다. 소위 말해 무능한 남편을 둔 아내는 억척 아줌마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록에 없어서이지 당시에 성공한 여인 스토리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런 과정에서 너무 똑똑한 조선에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신사**이었다. 몇 년 전인가 판타지 신사**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기억이 나는데 썩 재미있게 본 것 같지는 않다. 걸출한 신사** 덕분에 그 남편이었던 이**는 찌질한(?)남자로 남게 된다. 실제로 이**가 무능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처보다는 객관적인 능력이 떨어졌던 관계로 남들이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추가 기우러져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똑똑한 신사**이 남편인 이**에게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녀의 남편도 남자인지라 뭔가 세상에 족적을 남기고 싶었던 욕망은 오죽했겠는가? 그러다 보니 힘 있는 사람 곁에 가서 기웃기웃 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신사임당의 한마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입니다.”라고 일갈 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잘 헤아려 살라는 마누라의 심오한 한 마디로 들었을까 아니면 자신을 무시하는 비하의 말로 들었을까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상상에 맞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라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했을 것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자답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너무 똑똑한 마누라를 데리고 사는 남자의 애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상으로 돌아와 어수룩한 마누라와 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마음 같아서는 똑똑한 마누라를 얻어서 살고 싶지만 하늘에서 점지해준 내 마누라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스스로가 자구책을 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뛰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마누라와 자식까지 굶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이 가지는 능력 이상의 초월철학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장이라면 매사에 발 벗고 나서서 자신의 가정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 유능한 남자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불공평하다해도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형평성 쪽으로 가는 것이 순리라 본다. 부족하면 채우는 것이 인생의 과정이라 했다. 부족한 것이 없으면 게을러지고 나태해 지게 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한때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면서 강남의 유행어를 만들어 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부족함을 채우는 부류가 아니라 넘치는 물질적 풍요를 어디에다 풀어야 할는지 잘 모르는 가운데서 나오는 과분한 행동이라 본다.
능력 있는 마누라를 만나면 자신의 인생은 행복할는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 있는 내 자신의 천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게 돼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은 어떤 부류에 속하고 있는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반추의 기회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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