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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레에 걱정 마를 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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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레에 걱정 마를 날 없다.
인간이 철든다는 것은 걱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과 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유년시절에는 매사가 긍정적이고 행복하다는 것을 표정을 통해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도 잠깐이면 끝나고 그 다음 세계부터는 걱정이라는 고약한 대상이 인간의 머릿속에 들어오게 된다. 걱정이라는 것은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 인간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마치 인생 수레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가장 골 아픈 존재가 아닐까 싶다.
천진난만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주로 어린 아이가 해맑게 성장하는 한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천진난만한 시절도 과거에는 좀 길었었는데 요즘은 점점 짧아진다고 한다. 각종 매체가 발달하다보니 쥐방울만 한 아이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알 수 있을 정도의 세상으로 들어 온 것이다. 조그마한 아이는 몰라도 되는 것을 사회와 부모가 자꾸 알게끔 한다는 것이다. 낳자마자 조기학습을 시킨다면서 숫자에 문자에 영어까지 강제로 가르치려고 대 든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을 어른들이 강요하는 것이다. 싫어도 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천진난만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한 오락은 또 어떤가. 혹 식당에 가 보면 젖 떨어질 정도의 나이가 된 아기도 스마트폰 오락 삼매경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귀중한 가치를 어른들이 망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학교라는 곳에 가야지만 세상 물정 돌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었으나 요즘은 태어나자마자 험한 세상 물정과 마주쳐야 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이 겪게 되는 내면의 고민은 걱정일 것이라 본다. 여기서 걱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덜 하리라 볼 것 같아서 이것을 살짝 돌려서 스트레스와 상통한다고 생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더 먹으면 걱정이라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겠지만 어린 아이들은 사리판단이 덜 되었기에 더 심각한 지경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사를 많이 알면 알수록 걱정거리는 더 많아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어나자마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날의 걱정거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한다. 세수나 화장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남과 만나야 함으로 어쩔 수 없이 씻게 된다. 하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걱정인 것이다. 물론 세수하고 화장하는데 걱정을 하는 사람은 크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샴푸나 비누가 떨어졌다고 하면 그것을 구입해야 한다는 관념이 쌓일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세면장에 비누나 샴푸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물론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고 세안을 한다면 큰 문제는 안 되겠지만 우리 주변에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걱정거리가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라고 배웠다. 옛날 중국의 기 나라에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을 하여 식음을 전폐하였다는 설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 한다. 실제 기우가 현실화 된 경우가 최근 경주나 포항에서 났던 지진이 아닐까 싶다. 나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 나의 생활에 큰 걱정거리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지역은 아직 큰 지진은 없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걱정거리가 없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 걱정을 담아두어야 할 공간이 비면 안 되게끔 장치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걱정거리는 얼마나 많은가? 걱정의 강도나 크기, 대상은 사람마다 다 다르리라 본다. 어떤 사람은 자식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할 것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자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보면 남의 일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민이나 걱정은 인간마다 다 다르기에 뭐라고 단정지어 이야기 할 수 없는 영역이라 본다. 어떤 고민의 대상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상반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나의 편이 지지를 많이 받아 승리한다면 좋겠지만 타인의 편이 승리한다면 골이 아프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편이 승리하면 보따리 싸서 이민을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걱정을 줄이자면 걱정거리를 해소시키면 되리라 본다. 아무리 발버둥 처도 해소가 되지 않는 원초적인 걱정거리도 있다. 예를 들어 내 자신이 점점 늙어서 거동이 어려워진다면 이와 같은 걱정은 죽었다 깨어나도 해소가 될 일이 아니라본다. 싫던 좋던 자신이 안고 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일들 중에서 해결이 제대로 안되면서 걱정거리로 쌓이게 된다. 문제는 그런 걱정거리가 해소되면 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있는 것이다. 큰 걱정거리를 억지로 해결해 놓으면 그 바로 밑에 있던 걱정거리가 크게 부각되면서 여전히 걱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를 해결하면 여유가 좀 생겨야 하는데 그 공간에 다른 걱정이 쏙 들어와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걱정을 해소해 나가다 보면 걱정거리 같지도 않은 것이 부각되면서 큰 걱정으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걱정이라는 것은 죽는 날까지도 이어지리라 본다. 이승에서 못 처리한 걱정 때문에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는 사람도 많다고 본다. 죽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처리하고 죽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걱정은 인간의 생명과 의식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대상이라 본다. 걱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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