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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줄 노인의 주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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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줄 노인의 주특기
지난 번 추석 전후에 모 방송에서 우리나라 전통의 장인을 찾아서 그 스토리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였던 전통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단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주특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보통사람이 추구하는 삶은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면서 많은 급여를 받는 사람이 이 시대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도 골을 싸매고 공부를 하는 것에 궁극적인 종착지는 펜대를 굴리는 직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필자의 직업이 그와 가장 어울리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간다. 실제 필자는 펜대가 아니고 분필을 굴리는 직업에 종사를 하고 있으니 펜대와는 거리가 약간 있는 직업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분필은 아무리 굴려봐야 도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인정해 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키는 새내기 학부모들은 분필을 아주 많이 굴린 담임을 아주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이 시대의 화두로 떠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분필을 굴려서 밥 먹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씁쓸한 면도 있고 반성을 해야 할 면도 많다는 것을 늘상 생각하고 있다.
이야기를 다시 전통으로 돌려서 그 당시 방송에서 다루었던 전통은 어느 나이 많은 경상도 안동 근처에 사는 시골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이도 많고 기력도 많이 떨어진 할머니가 가진 기술은 다름 아닌 길쌈의 과정에서 삼베 실을 빼 내는 전문가였다.
삼베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 입었던 옷의 근간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망자들이 입고 저승으로 가는 옷이지만 예전에는 일상복으로 이 옷을 입었다고 한다. 이 삼베를 만들기 위해서 베의 원료가 되는 대마를 심는 과정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지방에서도 얼마 전까지 삼척 하장 같은 곳에서 대마를 심었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삼베를 짜 내고 있는 곳은 안동이 유일하다고 하는데 그 명성은 안동포라는 것을 통하여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삼베는 기계화가 쉽지 않기에 아직까지도 물레를 통하여 직조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서 짜 낸 베의 가격이 만만치는 않지만 타 산업에 비하여 소득이 높지 않음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거나 인조 삼베를 대용으로 사용하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젊어서부터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오로지 삼베의 실만 생산한 아낙네의 이야기가 나의 가슴을 울렸다. 이 아낙은 삼베 실만 중점적으로 만드는 그야말로 그 분야에 장인이었다. 대마를 베어 찐 후 껍질을 벗겨 말린 후 삼 실을 만드는 데까지가 이 분이 하는 전문적인 업무라고 한다. 삼 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이 분만이 넣는 독특한 물질이 있다고 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무엇이라 적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몇 십 년 동안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남들보다 더 생각하고 많은 경험을 한 산 증인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의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이런 장인이 가진 기술을 전수할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삼베가 이 시대와 걸맞지 않은 의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것을 전통으로 살려서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면 이것을 발판으로 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본다. 실례로 중국의 비단 기술을 살펴보자. 비단은 옛날 왕이나 사대부가 걸치고 다녔던 최고급의 직물류였다. 그러던 것이 인조 직물이 나오면서 사양산업으로 빠질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 여전히 비단은 최고급 직물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매고 있는 쓸만한 넥타이는 죄다 비단으로 짰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양산업이라 모두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겠지만 이것을 더 새로운 세계로 만들 수 있는 혜안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몇 천 년을 이어온 삼베 산업이 중국산 삼베와 인조 삼베에 눌려서 사라진다면 그 많은 기간을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삼베 문화가 그냥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방송국에서 그런 장인을 찾아서 소개시켜 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고, 그 삼베 장인도 방송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자신만이 가지는 주특기를 천하에 알릴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주특기는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펜대를 굴리는 것은 굴리는 순간은 그럴싸할는지 모르지만 그 굴림이 끝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남이 하지 못하는 주특기야 말로 나의 인생 말년을 지켜줄 훌륭한 보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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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휘영님의 댓글
휘영 작성일
내면의 재산을 외면으로 끌어내 여러사람에게 알리고저함 이게 바로 값진 배려가 아닌가를
생각하니,박식하신 필자의 글을 읽고 그냥 가기엔 너무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마음의 귀환을 맞이하고 있다. 그 앞에서 어서 근대적 집단화,
획일화 자기만(이기주의)의 것을 벗는 것이 우리의 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며 ,그 길은 혼자서가 아닌 앞장서 우리의 공존의 세상으로 그리고 인류 역사상
정신적 역사가 바라왔던 자아의 완성으로 인도해 가야 하지않겠나를 생각해 보며
자아와 관계와 공존에 우리는 높은 가치를 부여 해야 함은
바로 세상은 나혼자 만이 아니기에, 그리고 서로 함께라는 것이기 때문이며
공존 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글 자주 부탁 드리며 감사를 남기고 갑니다.안녕을..!!